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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공원 돌계단을 오르다 발밑에서 반짝이는 노란 민들레. 보랏빛 제비꽃도 그 옆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점심을 마치고 산책하던 직장인들, 혹여 밟을까 발걸음을 주춤하다 이내 미소 짓는다. 그 어느 곳이든 한 줌의 흙을 움켜쥐고 당당하게 피어나 온몸으로 봄을 노래하는 들꽃들. 척박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었기에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시름하며 회색 겨울이 머물러 있던 우리 마음속에도 희망의 봄이 오고 있다. ■ 촬영노트 모든 생명체는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삶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길을 가다 콘크리트 바닥의 작은 틈새로부터 빛을 찾아 나오는 노란 민들레를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길에서 마주하는 들꽃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 보자..
겨울의 그림자가 아직 가시지 않은 깊은 산속. 찬바람에 여린 솜털을 떨면서도 봄소식을 전해주려 언 땅 비집고 나온 가냘픈 노루귀.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다만 자기 자신으로 피어나서 최선을 다해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삶. 이런 노루귀를 닮은 민초들이 이 땅의 곳곳에서 말없이 피고 지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봄봄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노루귀라는 정다운 이름은 꽃이 지고 새로 나온 잎 모양이 노루의 귀와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봄은 고양이를 닮았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날카롭게 시나브로 다가온다. 코로나 확진으로 집콕 생활 일주일째, 무감각해진 시간 속에 허우적거리는 틈으로 따사한 햇살 한 줌이 거실에 스며든다. 나른한 눈으로 졸고 있던 고양이. 어느새 자기보다 커진 그림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 노려본다. 입춘은 지났지만 발코니 밖은 아직 꽁꽁 얼어 있다.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는 듯하지만, 고양이처럼 봄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날카롭게 우리 곁에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먼 산에 동이 트자 밤새 잠들었던 대자연이 기지개를 켭니다. 투명한 아침 햇살이 굽이굽이 산자락을 어루만지고 이슬 머금은 신록에도 햇살이 고루 퍼집니다. 이른 아침부터 백구 세 마리가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제 마음도 강아지처럼 뛰놀던 유년시절로 돌아갑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 강아지들처럼 마스크 없이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물이 꿈틀거리는 이 신록의 계절에 마스크로 동심을 가리고 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아이들아 조금만 더 힘내. 잘 견뎌주는 너희들이 참 대견하고 고맙다. 사진·글 = 김선규 선임기자
까치 한 마리가 긴 나무가지를 입에 물고 자동차 사이를 깡충깡충 뛰어 다닙니다. 까치가 집을 지으려면 나뭇가지가 적어도 천 개는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심의 까치에게는 마음에 드는 자리를 정하는 것도, 집 지을 재료를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새끼를 낳고 기를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닙니다. 집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요즘, 도심에서 마음껏 자기 집을 짓고 있는 까치가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기대해 봅니다. 사진,글=김선규 선임기자
사랑채 복원 넷째날 화창한 봄날, 어머니가 음식을 잔뜩 싸들고 격려차 오셨습니다. 모처럼 맛있게 점심을 먹고 힘을 내봅니다. 오늘 미션은 구들 틈새 메우기와 황토 몰탈로 구들덮기. 구들 해체할 때 함께 나온 작은 돌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구들장을 단단히 고정되고 틈새를 메우는데 제격입니다. 작은 돌들이 큰 구들을 받치고 있어 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찮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있어 세상이 존재하고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사랑방 문턱에서 구들장 마무리 작업을 지켜보던 정남이가 감수를 합니다.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OK 사인을 보냅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아픈 팔로 수고한 나를 위해 연태고량주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
잔설이 남은 산 한 모퉁이에 작고 여린 싹들이 얼굴을 내민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자신의 온기로 눈을 녹이고 있다. 산도 개울도 아직은 꽁꽁 얼어 모든 것이 숨죽인 듯하지만, 봄은 우리 곁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여린 싹을 보니 코로나19로 잔뜩 얼어붙은 우리네 가슴속에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듯하다.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기지개를 켜본다.
아기 손 같은 신록들이 기지개를 켠다. 분홍색 앵초, 보랏빛 팥꽃나무, 노란 산괴불주머니가 저마다 자신의 색을 뽐내고 있다. 연못가에 동이나물이 노란 꽃을 피웠고 그 사이로 갓 깨어난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헤엄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봄의 절정에 경기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만난 풍경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지요.” 모란작약원에서 만난 이택주(80) 원장이 새로 돋아난 신록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반평생 식물원을 가꾸고 지켜온 그의 모습에는 할아버지 같은 자상함과 부드러움이 배어 있다. 경제 논리가 앞서던 1970년대 그는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리 산, 우리 강의 작은 풀꽃들에 젊음과 열정을 바쳤다. ‘제대로 된’ 식물원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국내 최..
살몃, 살몃 가만히 들여다보니, 도토리 싹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두근, 두근, 가만히 귀 귀울여보니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용케 다람쥐나 사람의 손을 피해 겨우내 낙엽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난 녀석입니다.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키듯 어린 도토리도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자라겠지요. 장차 숲의 새 주인이 될 어린 도토리가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튼튼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며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덕구야, 날이 찬데 어디 쏘댕니다 왔어“ “…….” “어쿠야, 몸 젖은 거 봐라, 눈밭을 뒹굴다 왔구나야“ “…….” “고뿔 걸리면 약도 없슨게, 어여 이리와 몸 좀 노게“ “…….” 강원도에서 산이 깊어 가장 봄이 늦게 찾아온다는 정선군 남면 광덕리. 봄이 오는 길목에 겨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산이 높아 앞산과 뒷산을 이어 빨래 줄을 건다는 두메산골 외딴 농가에 정겨운 풍경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시던 할머니는 천방지축 눈밭에서 뛰놀던 덕구를 불 가까이 오게 합니다. 할머니의 말에 아무 말 없는 덕구지만 따듯한 시선과 손길에 숨결이 부드러워집니다. 아름다움은 모두 과거에 존재한다고 하지요. 덕구와 할머니의 평화로운 모습에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의 기억이 미소 지으며 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