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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공원 돌계단을 오르다 발밑에서 반짝이는 노란 민들레. 보랏빛 제비꽃도 그 옆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점심을 마치고 산책하던 직장인들, 혹여 밟을까 발걸음을 주춤하다 이내 미소 짓는다. 그 어느 곳이든 한 줌의 흙을 움켜쥐고 당당하게 피어나 온몸으로 봄을 노래하는 들꽃들. 척박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었기에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시름하며 회색 겨울이 머물러 있던 우리 마음속에도 희망의 봄이 오고 있다. ■ 촬영노트 모든 생명체는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삶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길을 가다 콘크리트 바닥의 작은 틈새로부터 빛을 찾아 나오는 노란 민들레를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길에서 마주하는 들꽃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 보자..

경황이 없어 끼니를 놓쳤다. 어머니가 시골집 마당에서 쓰러지셔서 병원 응급실까지 내달리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입원까지 마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하루해가 다 갔다.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몰려왔다. 병원 근처 식당 구석에서 혼자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뜨거운 국물이 타들어 가던 속을 채워주었다. 몇 숟갈 뜨다가 국물 위에 떠오른 하트 모양 파 두 조각에 눈길이 머물렀다. 한동안 그 모습을 보는데 뜨거운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며 묵묵히 견뎌왔는데…. “얘야, 괜찮다. 어서 먹어.”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도 도리어 자식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키다리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뜨개옷을 입고 있다. 찬바람이 불고 거리에는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계절이지만 가로수들이 알록달록 옷을 입고 있는 경기 과천시 문원동 도로는 나무들의 축제가 벌어진 듯하다. “너무 예뻐요.” 30년 경력의 야쿠르트 아줌마 이영옥(70) 씨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분홍색 옷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나무들이 입은 뜨개옷과 잘 어울린다. 나무들이 입고 있는 옷을 만져보니 한 코 한 코 정성껏 뜨개질한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정성들이 연결돼 나무가 따뜻해지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훈훈해졌나 보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에 겨울나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 촬영노트 뜨개질로 나무에 옷을 입히는 ‘트리니팅(trees knitti..

가는 여름이 아쉬웠나봅니다. 공원 주변을 신나게 뛰어다니던 다람쥐가 ‘득템’한 아이스크림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인기척도 아랑곳 않고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과 눈을 맞추고 앙증맞은 혀를 내밀며 먹는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녀석의 꿀맛 같은 순간을 방해 할까봐 가만히 숨죽이며 바라봅니다. 새끼들 걱정, 도토리 모을 걱정……. 다람쥐라고 근심이 없을까마는 그래도 우연히 찾아든 행운을 즐기는 이 순간, 다람쥐는 행복해 보입니다. 녀석 입맛 변할까 괜한 걱정도 되지만 힘겨운 우리의 일상에도 문득 다가올 달달한 순간들을 그려보며 혼자 미소 짓습니다.

삶의 에너지가 바닥날 때면 회사에서 가까운 남대문시장을 찾는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새 의욕이 조금씩 생겨난다. 특히 시장 한가운데 있는 꽃상가는 늘 그윽한 향기로 나를 반겨준다. 그리고 이곳을 나설 때는 꽃 한 다발과 함께 미소가 배어나곤 했다. 코로나로 꽃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단골 꽃집 아주머니가 계시는 남대문 꽃상가를 찾았다. “얘는 어떻게 해요?” “걔들 참 예쁘지요.” 수북이 쌓인 꽃들을 앞에 두고 꽃집 아주머니가 모처럼 찾은 손님과 나누는 대화가 정겹다. 마치 어린아이들 보듯이 사랑스러운 눈빛이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꽃도매를 하는 최명숙(69) 씨다. 코로나로 졸업과 입학 시즌마저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

아름드리나무들이 형형색색의 뜨개옷을 입고 있다. 모양도 무늬도 각양각색이다. 초록 바탕 뜨개물 위에 별들이 반짝이고 아기 곰과 산타가 동심의 나래를 펼친다. 연꽃 모양을 수십 장 이어붙인 뜨개옷도 있다. 찬바람이 불고 거리에는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계절이지만 가로수들이 알록달록 옷을 입고 있는 인천 새말초 앞 도로는 나무들의 축제가 벌어진 듯하다. “손뜨개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요.” 교문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경훈(45) 씨가 나무의 뜨개옷을 매만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을 찾아 고민하던 정 씨는 평소 취미로 하던 뜨개질로 나무에 옷을 입히는 ‘트리니팅(trees knitting)’을 기획했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주춤거리는 사이 공원산책을 나왔습니다. 목말랐던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재잘거리던 새들도 집으로 갔는지 북적이던 공원길이 고요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하는데 문득 풍경 하나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방울방울 맺혀있는 개망초 꽃잎 위에 알알이 보석들이 피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노라니 메마른 내 마음에도 물기 가득 머금은 미소 꽃들이 피어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 속 얼굴과 마주한다. 복잡한 일상과 삶 속에서 주름은 늘고 표정은 나날이 굳어간다. 100세 시대라는데 이대로 늙어 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은근히 걱정되던 중 오래전 TV에서 해맑게 웃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났다. 수소문 끝에 올해 100살을 맞으신 김순택 할머니를 만나러 인천 옹진군 신도를 찾았다. 마을 이장님 안내로 과수원 한가운데 있는 집에 들어서자 햇살 아래 바느질을 하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백발의 온화한 미소가 온 집 안을 환하게 밝히는 것 같다. 천천히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긴 할머니는 이장님의 만류에도 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서 저어 주신다. 주름진 손을 보니 백 번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보내며 모진 세월을 지냈을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