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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동녘하늘이 붉게 물든다 깊은 어둠속에 잠겨 있던 세상이 서서히 깨어난다. 남산타워를 시작으로 도심의 마천루가 본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습으로 돌아오며 생기를 얻는다. 동이 트는 장엄한 모습을 보며 빛은 언제나 우리를 비춰주고 지켜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빛은 늘 우리와 함께 했음을... 오늘도 세상은 햇살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김선규 선임기자 지난 35년의 사진기자 생활은 빛을 찾는 여정이었다. 펄떡이는 날것의 현장을 빛으로 낚아 올릴 때 그 짜릿한 손맛은 그 어느 것 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빛으로 기록한 사진들이 지면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돌이켜볼 때 사진기자로써 지난..
이곳은 강원도 민둥산 정상입니다. 온 산자락에 은빛 물결로 출렁이던 억새들이 해가 저물어가면서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지나온 길은 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요? 돌아보면, 아름다운 그 길에서 향기도 맡아보고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마음껏 누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 빨리 오르려는 욕심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그 걸음들은 비단 이곳만은 아니었겠지요. 어쩌면 제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 걸음걸음도 그와 같았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내려 가야할 시간입니다. 어둠이 밀려오면서 억새가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이제서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유로운 내 자신을 만납니다. 서툴렀지만 열심히 달려온 저에게 억새들이 온몸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은퇴 후 꿈꾸는 삶은 좀 더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고향집을 찾아 일을 벌일 때 이 느낌에 한발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 고향집으로 달려가 아담한 서재를 위해 작은 사랑방 공사를 계속 했습니다. 이틀 동안 황토몰탈과 핸디코트로 미장을 하고 전통 문과 통창 작업을 했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서 순창에서 농촌필사기 교육을 함께 받은 형님 한분이 도와주러 오셨고 친구이자 대부인 대학동창도 함께 땀을 흘렸습니다. 이틀간의 작업을 마친 후의 제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몸은 지쳤지만 눈이 맑아졌고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표정입니다. 상량문을 대신해 미장을 마친 황토벽에 난을 처 오늘의 이 기쁨을 기념했습니다. ^^
밤 10시, 서울 을지로 한복판.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코로나 시대 같았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풍경이다. 얼굴 마주 보며 먹는 음식, 술 한 잔….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들이 새삼 감동으로 와 닿는다. 아버지 세대들이 고단한 하루의 삶을 풀어냈던 그 자리를 지금은 스마트폰 세대들이 대신하고 있다. 잔과 잔이 부딪치며 웃음소리가 커져 간다. 누군가 건배제안을 하면 다 같이 잔을 부딪치며 합창이라도 할 것 같다. 어느덧 나도, 이 후끈한 분위기 속에 스며들어 근심 잊고 시원한 생맥주 사이를 유영하는 한 마리 노가리가 되었다. ■ 촬영노트 일명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1970년대 주머니 가벼운 인쇄노동자, 건축자재 공구상들의 하루 피로를 달래 줬던 곳이었다, 당시 맥주 500㏄에 ..
가을 들녘을 걸어갑니다. 누렇게 영글어가는 벼 이삭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 옵니다. 논배미 옆 사과밭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빨간 등을 켜고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것 같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진 가뭄과 무더위 그리고 태풍까지 저 열매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들뜬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저 사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닥친 시련을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단맛이 나고 무르익는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주말 내내 작은 사랑방 서까래 샌딩 작업을 마쳤습니다. 시원한 날씨덕에 방진복을 입고 작업을 해도 별로 지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베토벤 형님이 응원의 합창을 보냈습니다. 왜 고생을 사서 하는 지 혼자 되묻습니다. 글쎄요... 작업을 하는 동안 이곳까지 쫒아온 잡념들이 하나 둘 사라집니다. 서까래의 묵은 때가 벗겨질 때 마음의 때도 벗겨집니다. 이제는 삶을 옥죄이던 헛것들을 덜어내고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기를 때 좀처럼 보기 힘든 ‘호야’ 꽃이 시골집 마당에서 아름답게 피웠습니다. 삼신할미가 60년 만에 깨어나 미소 지을 것 같습니다. ^^
삼복더위에 맞은 휴가, 에어컨과 TV를 벗 삼아 하루 종일 집콕이다. ‘우당탕탕’ 요란한 빗소리가 베란다 창을 두드린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먹구름을 몰고 다니던 하늘이 요란하게 소낙비를 토해낸다. 무더위 속에 목말라하던 가로수들이 싱그럽다. ‘왈왈’ 어디서 나타났는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먹구름 사이를 헤치고 하늘 위를 뛰어 다니며 라이브 공연을 펼친다. 물가는 치솟고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먹구름 몰려오듯 피어나던 근심걱정들이 강아지 닮은 구름 재롱에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여름이 준 선물에 어느덧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자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를 날마다 제공해준다. 태풍이 오가는 여름 하늘은 어느 계절보다 변화무쌍하다. 가끔 하늘멍(하늘을 바라보며 멍때림..
EBS ‘건축탐구 집’이란 프로를 즐겨봅니다. 하동에서 유럽식 스타일로 집을 꾸미고 사는 분이 출연하셨는데 바로 필이 꽂혀 휴가를 내고 시골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땅을 다지고 현무암 판석 한파렛트를 사서 증조모께서 쓰시던 맷돌을 응용하여 흙집 옆에 ‘돌꽃’을 만들어 봤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한 짓 한다고 하시던 마을 분들도 꽃처럼 피어난 돌 작품을 보더니 ‘멋지다’고 하십니다. 삼복더위에 땀 서 말 흘린 보람이 있습니다. ^^ 22.6.22
공원 산책길에서 자작나무 옹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내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듯 선명한 눈빛이다. “너 많이 힘들구나.” 상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열대야로 잠을 설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괜히 집고양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나선 길이었다. “응 지금 좀 힘드네.” 주절주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말을 하자 자작나무 눈이 반짝였다. “이 상처는 내가 아팠던 흔적이야”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의 상처가 세상을 보는 눈이 되었어.” 돌처럼 단단해진 옹이를 어루만져주자 자작나무도 축 처진 내 어께를 다독인다. “힘내”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이 통하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수국, 수련, 원추리… 서울역 고가공원에 여름 꽃들이 활짝 피었다. 하늘에는 비를 잔뜩 머금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땅에는 장난감 같은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고가공원에서 제일 높은 수국전망대에 오르자 소담스러운 수국들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토양성분으로 색이 변하는 수국들이 발밑을 오가는 버스들처럼 붉고 파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자 고가공원 여름 꽃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고 생기를 되찾는다. 도로에서 공원으로 변신하여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는 서울역 고가공원에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촬영노트 ‘서울로 7017’은 서울역을 중심으로 동서부를 이어주는 고가도로였으나 안전등급d를 받고 철거 위기에 놓였다. 여러 논의 끝에 철거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공중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