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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코로나를 잘 이겨낸 두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동해바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들은 오래간만의 여행으로 사돈을 떠나 친구처럼 좋아하십니다. 시리도록 맑고 푸른 하늘이 어머니들의 여행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행이란 단어를 잊고 사셨던 어머니들이 무척 설렜나 봅니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염색을 해서 한층 젊어 보이십니다. 장모님은 옷을 새로 사고 파마도 하셨습니다. 내색은 안했지만 오래 전 부터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다시는 바다를 못 볼 줄 알았는데..." 아흔이 넘으신 장모님이 바다를 바라보며 감격해 하십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시던 어머니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지금은 돌봄 대상이 된 두 분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텅 빈 해변에 구름만 가득하다. 드넓은 모래사장 너머로 바다와 맞닿은 하늘에 구름이 물결친다. 할매바위 앞 외로운 등대는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겨울 바다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모든 모임은 취소됐고 어느 때보다 분주했을 송년의 거리는 적막하기만 하다. ‘감염’이라는 공포가 찬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면서 사람들은 더욱 움츠러들고 마스크 속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내 기억 속에 일몰이 가장 아름다웠던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을 찾았다. “날씨도 코로나랑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코로나가 극성이니 하늘마저 우울해하는 것 같다며 문화관광해설사 홍경자(67) 씨가 인사를 건넨다. 관광객이 많이 와 가장 바쁘고 보람찰 때지만 올해는 그런 희망을 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을 때 잠시..

콧등에 땀이 솟아나고 숨이 차오른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버스는 더디기만 하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차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숨 막히는 일상이 5개월째 되풀이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걸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차에서 내려 잠깐 마스크를 벗고 숨을 몰아쉬자 ‘휘이’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랜 잠수 끝에 물 위로 얼굴을 내민 해녀들의 숨비소리 같다. 한 번 더 긴 숨을 내쉬니 ‘하아~’ 소리와 함께 해녀 할머니 한 분이 해삼, 멍게가 가득 든 망사리를 짊어지고 내 기억 저편에서 걸어오신다. 제주 추자도 옆 작은 섬 횡간도의 고정심 할머니다. ‘휘호이~ 하아~’ 오랜 물질 끝에 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는..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비탈 다랭이밭, 오랜만에 밭 갈러 나온 소는 농부의 호령에도 아랑곳없이 딴청입니다. “허어 이놈이~” 화가 날만도 하건만, 늙은 농부는 고삐를 늦추고 한동안 기다려줍니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남녘 끝자락, 봄은 농부의 넉넉한 마음에서 먼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남해 가천마을에서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를 가만히 가슴 속에 담아본다. 누구나 외롭고, 절망할 때가 있는 법. 그럴 때 저 등대지기의 심정으로 마음 속 어둠을 밝히는 등댓불 하나 켜두어야겠다. 서해의 외로운 섬 어청도에서...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현장에서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피사체를 요리하며 셔터를 눌러왔건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뉴칼레도니아에서 나는 첫 순간부터 당혹스러웠다. 누군가 말했다. 죽기 전에 딱 한번의 여행이 허락된다면 남태평양의 천국, 뉴칼레도니아를 가고 싶다고. 하지만 난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적도도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기 전까지는. 뉴칼레도니아는 네게 생소한 곳이었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기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에 열광한 사람들이 그곳에 간다는 사실 하나로 온갖 부러움을 표시할 때도 그저 무덤덤하게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출장 가는 ..
피부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바닷가 염전을 달굽니다. 열기가 이글거리는 염전에는 윗옷을 벗어 던진 채 외발 손수레로 소금을 실어나르는 염부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집니다. 파란 하늘과 하얀소금, 그리고 구릿빛 피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남들은 더워 죽겄다구 난리지만, 우리는 더위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지유” 그의 몸에 여름내내 쌓인 햇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소금과 땀으로 늘 절여져 있지요. 하지만 후끈거리는 열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위에 감사하는 마음이 은근히 전해집니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 소금밭에서 얻은 소금같은 지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