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겨울 (10)
빛으로 그린 세상

겨울의 그림자가 아직 가시지 않은 깊은 산속. 찬바람에 여린 솜털을 떨면서도 봄소식을 전해주려 언 땅 비집고 나온 가냘픈 노루귀.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다만 자기 자신으로 피어나서 최선을 다해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삶. 이런 노루귀를 닮은 민초들이 이 땅의 곳곳에서 말없이 피고 지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봄봄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노루귀라는 정다운 이름은 꽃이 지고 새로 나온 잎 모양이 노루의 귀와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키다리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뜨개옷을 입고 있다. 찬바람이 불고 거리에는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계절이지만 가로수들이 알록달록 옷을 입고 있는 경기 과천시 문원동 도로는 나무들의 축제가 벌어진 듯하다. “너무 예뻐요.” 30년 경력의 야쿠르트 아줌마 이영옥(70) 씨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분홍색 옷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나무들이 입은 뜨개옷과 잘 어울린다. 나무들이 입고 있는 옷을 만져보니 한 코 한 코 정성껏 뜨개질한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정성들이 연결돼 나무가 따뜻해지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훈훈해졌나 보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에 겨울나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 촬영노트 뜨개질로 나무에 옷을 입히는 ‘트리니팅(trees knitti..

꽁꽁 언 논바닥에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썰매에 태워 빙판을 달리고, 젊은 아빠는 아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얼음을 지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예약한 세 팀만 이용할 수 있지만, 만국기가 휘날리는 얼음판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꽁꽁 싸맨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마스크 밖으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는 경쾌하다. 경기 양평 강상초 앞 논썰매장 풍경이다. “삼시 세끼 아이들 밥 해먹인 보람이 있네요. 호호호.” 어린 두 딸이 밀어주는 썰매를 타고 엄마는 마냥 신이 났다. 작은 의자 두 개를 이어 만든 썰매에 앉은 이 순간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이 둘을 태우고 열심히 밀어줬다. 그렇게 몇 바퀴 돌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 엄마가 힘들어하자, 이..

‘저리도 좋으실까.’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가 아들을 보자 반갑게 맞아주신다. 최근 넘어져 발을 다치셨다는 말을 듣고 근심스러운 마음에 시골집으로 향한 길이었다. 오른쪽 발목에 깁스를 하고도 무와 함께 춤이라도 추실 기세다. 언제 심어 놓으셨는지 밭에는 배추와 무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머니의 걱정이 하나 늘어난다. 김장 때문이다. 집안 연례행사 중 김장은 상위권에 속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날짜가 정해지면 그날은 애·어른 할 것 없이 가족들이 총동원돼 시골집에서 김장을 했다.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그 이상의 의미가 가족들에게 있었다. 자식들은 추석 이후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됐고, 어머니에게는 당신이 힘써 지은 배추농사로 자식과 이웃에게 김장김치를 나눌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형형색색의 뜨개옷을 입고 있다. 모양도 무늬도 각양각색이다. 초록 바탕 뜨개물 위에 별들이 반짝이고 아기 곰과 산타가 동심의 나래를 펼친다. 연꽃 모양을 수십 장 이어붙인 뜨개옷도 있다. 찬바람이 불고 거리에는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계절이지만 가로수들이 알록달록 옷을 입고 있는 인천 새말초 앞 도로는 나무들의 축제가 벌어진 듯하다. “손뜨개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요.” 교문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경훈(45) 씨가 나무의 뜨개옷을 매만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을 찾아 고민하던 정 씨는 평소 취미로 하던 뜨개질로 나무에 옷을 입히는 ‘트리니팅(trees knitting)’을 기획했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
돌돌돌돌... 겨우내 꿈적 않던 얼음장 속에서 봄의 교향악이 흐른다. 종종종종... 겨우내 목말랐던 물까마귀 겨울을 오가며 부지런히 봄을 전해 나른다. 겨울이 깊을수록 어느덧 봄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오대산에서 봄을 그리며...
무서리가 내린 아침, 화려했던 잎사귀들을 떨어뜨리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나무사이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찾아듭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운 나무들을 보면서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움켜쥔 채 또 한 해를 보내는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그들을 닮고 싶어 한동안 나무 곁에 서 있어봅니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자, 겨울 철새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머물던 자리에는 따뜻한 남풍을 타고 날아온 여름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겠지요. 때가 되면 자리를 비워주고 미련 없이 떠나는 철새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네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 삶은 떠남의 연속입니다. 떠남이 아름다움 삶……. 먼 여행을 준비하는 기러기들 곁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가”라고 우포늪에서 겨울철새들을 배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