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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동녘하늘이 붉게 물든다 깊은 어둠속에 잠겨 있던 세상이 서서히 깨어난다. 남산타워를 시작으로 도심의 마천루가 본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습으로 돌아오며 생기를 얻는다. 동이 트는 장엄한 모습을 보며 빛은 언제나 우리를 비춰주고 지켜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빛은 늘 우리와 함께 했음을... 오늘도 세상은 햇살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김선규 선임기자 지난 35년의 사진기자 생활은 빛을 찾는 여정이었다. 펄떡이는 날것의 현장을 빛으로 낚아 올릴 때 그 짜릿한 손맛은 그 어느 것 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빛으로 기록한 사진들이 지면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때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돌이켜볼 때 사진기자로써 지난..

가을 들녘을 걸어갑니다. 누렇게 영글어가는 벼 이삭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 옵니다. 논배미 옆 사과밭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빨간 등을 켜고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것 같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진 가뭄과 무더위 그리고 태풍까지 저 열매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들뜬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저 사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닥친 시련을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단맛이 나고 무르익는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EBS ‘건축탐구 집’이란 프로를 즐겨봅니다. 하동에서 유럽식 스타일로 집을 꾸미고 사는 분이 출연하셨는데 바로 필이 꽂혀 휴가를 내고 시골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땅을 다지고 현무암 판석 한파렛트를 사서 증조모께서 쓰시던 맷돌을 응용하여 흙집 옆에 ‘돌꽃’을 만들어 봤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한 짓 한다고 하시던 마을 분들도 꽃처럼 피어난 돌 작품을 보더니 ‘멋지다’고 하십니다. 삼복더위에 땀 서 말 흘린 보람이 있습니다. ^^ 22.6.22

공원 산책길에서 자작나무 옹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내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듯 선명한 눈빛이다. “너 많이 힘들구나.” 상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열대야로 잠을 설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괜히 집고양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나선 길이었다. “응 지금 좀 힘드네.” 주절주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말을 하자 자작나무 눈이 반짝였다. “이 상처는 내가 아팠던 흔적이야”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의 상처가 세상을 보는 눈이 되었어.” 돌처럼 단단해진 옹이를 어루만져주자 자작나무도 축 처진 내 어께를 다독인다. “힘내”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이 통하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 해부턴가 아버지 무덤가에 하나둘 피어나던 구절초가 올해는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참 좋다.” 밭에서 일하다 고단한 허리를 펴시고는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며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키가 크신 아버지처럼 아홉 마디 훌쩍 자란 구절초가 하늘을 우러르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구절초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은은한 구절초 향기가 아버지 넋이 되어 헛헛한 내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냐아~옹 야옹.” 사뿐사뿐 돌다리 난간을 걷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까만색 망토를 두르고 흰 구두를 신은 듯한 매혹적인 자태에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스마트폰에 담기 바쁘다. 그 모습을 한 남자가 자전거에 걸터앉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 삼봉이가 산책을 좋아해요.” 청계천으로 반려묘와 산책을 나온 윤미식(43) 씨가 ‘삼봉아!’ 하고 부르자 고양이가 특유의 민첩함으로 윤 씨의 어깨 위로 사뿐 올라선다. 원래 한 몸인 것처럼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4년 전 버려진 냥이를 친구가 데려다 키워 새끼를 낳고 그중 한 마리가 윤 씨 곁에 오게 됐다. “이 아이를 만나기 전에 방황을 많이 했어요.” 크로스핏 트레이너인 윤 씨는 텅 빈 집에 오면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하루 ..

기린, 쥐, 강아지, 오리, 곰, …. 지루한 장마 틈에 하늘에 ‘동물의 왕국’이 펼쳐졌다. 바람이 부는 대로 뭉쳤다 사라지며 구름은 다양한 동물들을 만들며 잊고 있던 동심을 깨운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이 구름처럼 일순간 뭉쳤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동심으로 돌아간 이 순간 기자도, 아빠도, 그 누구도 아닌 난 밀림의 왕자.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다. 화려한 곳에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타도 있고 누군가를 대신해 온몸을 날리고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흙먼지를 툴툴 털고 일어서는 삶도 있다. 장마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날, 사극 세트장에서 밤샘 촬영 작업을 마치고 문경 단산에 오른 스턴트맨을 만났다. “제 몸속에 저를 지탱해주는 쇠붙이가 7개 있어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싱겁게 웃으며 박근석(47)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릴 적 청룽(成龍)이 출연한 영화에 반해 30여 년을 촬영 현장에서 ‘레디∼ 액션’에 몸을 던졌다. ‘괴물’ ‘쉬리’ ‘올드보이’ 등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역 연기라 주목받지 못했지만 뜨거운 현장의 열기에 늘 행복했다. 몸에 상처가 늘어나면서 진통제로 버티는 날도 많아졌다. 험한 대역..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주춤거리는 사이 공원산책을 나왔습니다. 목말랐던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재잘거리던 새들도 집으로 갔는지 북적이던 공원길이 고요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하는데 문득 풍경 하나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방울방울 맺혀있는 개망초 꽃잎 위에 알알이 보석들이 피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노라니 메마른 내 마음에도 물기 가득 머금은 미소 꽃들이 피어납니다.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다. 신발에 갇혀 잠자고 있던 감각이 일제히 깨어나는 듯 온 신경이 발아래로 쏠린다. 물기를 머금은 황토가 반죽이 잘된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서늘하고 미끄러운 감촉이 감싸자 발이 자유를 얻었다. 맨발이 더 자연스러운 대전의 계족산 황톳길이다. “아빠, 흙이 자꾸 방귀를 뀌어~” 재인(7)이가 형 재이(8)와 신나게 흙을 밟고 있다. 아이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황토가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찌걱찌걱 소리를 낸다. 재인이는 이 소리가 흙이 방귀 뀌는 소리로 들렸나 보다. “맨 처음에는 엄청 간지러웠어요. 그런데 점점 좋아졌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재이는 제법 의젓하게 흙 밟은 소감을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