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세상의 노란색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듯, 온통 노란 산수유꽃 천지입니다. 매화가 질 무렵이면, 골짜기, 농가, 마당 할 것 없이 마을은 수백 년 묵은 산수유나무로 노란 꽃대궐에 파묻히지요. 자연이 준비한 봄의 향연이 가장 먼저 열리는 이곳에서는 나무와 숲과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집니다. 그 속에서는 나 또한 풍경이 되어 봄으로 물들어갑니다. 2005/ 구례 산동마을
누구보다도 먼저 피어나 봄을 깨우는 할미꽃. 자줏빛 벨벳 꽃잎과 노란 꽃술이 화려하기 그지없건만, 뜨거운 정열 가슴에 품고도 부스스한 솜털 속에 몸을 감춘 채 하염없이 땅만 바라보는 그 애잔한 아름다움이여……. 2004/ 전남 장흥
푸른 바다가 내려 보이는 산비탈 다랭이밭, 오랜만에 밭 갈러 나온 소는 농부의 호령에도 아랑곳없이 딴청입니다. “허어 이놈이~” 화가 날만도 하건만, 늙은 농부는 고삐를 늦추고 한동안 기다려줍니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남녘 끝자락, 봄은 농부의 넉넉한 마음에서 먼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2003/ 남해도
까치가 집을 지으려면 나뭇가지가 적어도 천 개는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심의 까치에게는 마음에 드는 자리를 정하는 것도, 집 지을 재료를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새끼를 길러낸다는 생각에 까치는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를 부지런히 누비고 다닙니다. 2006/여의도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잠깐 들렀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신 어머니는 최근에 허리수술을 받아 아직 불편하신 몸인데도 호미를 들고 밭두렁으로 나가셨습니다. 들판은 꽃샘추위로 스산했습니다. 허리에 무리가 가니 가만히 계시라는 자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기어코 소쿠리 가득 냉이를 캐서 바리바리 싸주셨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나온 냉이처럼 모질게 살아오신 어머니. 당신 몸 부서지는 것 생각 않고 자식들 하나라도 더 먹이시려고……. 아내가 끓여준 냉이 된장국을 먹으며, 냉이보다 더 질긴 어머니의 사랑에 목이 메었습니다. 2004/ 경기 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