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따따따 탕---″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굶주린 이리와도 같은 임채성 일병과 외딴 골목에서 마주쳤다.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있는 필자에 비해 K1자동 소총과 수류탄으로 중무장한 그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살벌했다. 결투가 시작되었다. 하나, 둘, 셋, 넷, 미처 다섯을 세기도 전에 또 다른 중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난사하자 임 일병이 쓰러졌다.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온 임일병은 피거품을 문 채 총기를 난사하며 수류탄을 정신없이 던지고 있었다. 필자의 온몸은 산산조각 부서졌다.--- 꿈이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지난(1993년) 4월 19일 있었던 무장탈영병 도심 총기난동사건 취재를 마친 뒤 매일 이와 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날은 4.19혁명 33돌을 맞은 아침이었다..
장맛비가 숨고르기를 하는 사이 물방울이 맺힌 풀잎 위를 달팽이 한마리가 천천히 걸어갑니다. 너무 오래 걸린다고, 등에 짐이 무겁다고 투정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갑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빨라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세상입니다. 잠시 달팽이의 발걸음에 호흡을 마쳐보며 그 느림의 여유를 즐겨봅니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 나무 밑동 철사 줄에 앉아 참새들이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평소엔 조그만 먹을 것을 가지고도 아등바등 싸우던 녀석들입니다. 온몸이 젖고 날씨가 음산해지자 서로에게 기대며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비 내리는 날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건 비단 참새만은 아니겠지요. 서울숲
농부인 아버지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쇠비름. 예초기로 베어버리고 비닐을 덮어놓아도 며칠이면 온 밭을 뒤덮는 쇠비름을 보며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 “허 고놈들 참 질기다!” 비가 와서 며칠째 작업을 쉬고 있는 공사장, 포클레인 위에 나란히 고개를 내민 쇠비름. 흙 한 줌 없는 쇠붙이에 발을 딛고 서서도 천진난만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나온 한마디, “허 고놈들 참 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