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하늘 (7)
빛으로 그린 세상
삼복더위에 맞은 휴가, 에어컨과 TV를 벗 삼아 하루 종일 집콕이다. ‘우당탕탕’ 요란한 빗소리가 베란다 창을 두드린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먹구름을 몰고 다니던 하늘이 요란하게 소낙비를 토해낸다. 무더위 속에 목말라하던 가로수들이 싱그럽다. ‘왈왈’ 어디서 나타났는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먹구름 사이를 헤치고 하늘 위를 뛰어 다니며 라이브 공연을 펼친다. 물가는 치솟고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먹구름 몰려오듯 피어나던 근심걱정들이 강아지 닮은 구름 재롱에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여름이 준 선물에 어느덧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자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를 날마다 제공해준다. 태풍이 오가는 여름 하늘은 어느 계절보다 변화무쌍하다. 가끔 하늘멍(하늘을 바라보며 멍때림..
돌돌 말려 있던 금계국 꽃봉오리가 찻잔 속에서 활짝 피어난다. 따뜻한 차 한 모금에 추위에 웅크렸던 몸이 살살 녹는 느낌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로 날아갈 듯 고개를 쳐든 작고 앙증맞은 솟대들이 작업실에 가득하다. 추위를 피해 전국의 새들이 여기에 다 모인 것만 같다. 웃음을 솟대에 실어 보내는 웃음치료사 송상소(60) 씨의 작업실이다. 방금 제작한 솟대를 보여주는 송 씨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가녀린 나뭇가지에 앉은 새 모양에 화사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5년 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솟대에 마음이 끌려서 하나둘 만들어 보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만든 솟대를 이웃에게 선물했더니 하나같이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때부터 솟대를 받는 이에게 항상 웃는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
어느 해부턴가 아버지 무덤가에 하나둘 피어나던 구절초가 올해는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참 좋다.” 밭에서 일하다 고단한 허리를 펴시고는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며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키가 크신 아버지처럼 아홉 마디 훌쩍 자란 구절초가 하늘을 우러르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구절초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은은한 구절초 향기가 아버지 넋이 되어 헛헛한 내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가을 들녘에 시름이 깊다. 가장 길었던 장마와 연이은 태풍에 멍든 농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그 어느 해보다 맑고 푸르다. 두 차례 태풍이 지나간 후 사과농사를 짓는 지인을 찾아 경북 영주 안남마을로 가는 중이었다.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니 늘 아름답던 가을 풍광은 찾아볼 수 없다. 매년 이맘때면 마을 입구부터 사과나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같이 붉은 열매를 달고 한바탕 가을 축제를 벌이던 곳이다. “하늘이 우리를 버린 기라예∼.” 25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노홍석(55) 씨가 낙과를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나무에 달려 있어야 할 붉은 사과들이 땅에서 뒹굴고 있었다. 가지에 듬성듬성 달려 있는 사과들도 생기가 없다. 소백산이 큰바람을 막아주고 맑은 날이 많아서 이곳 사과는 웬만한 태풍에도 끄떡없..
장맛비가 그쳤다. 신기록도 갈아치운 긴 장마였다. 오랜만에 갠 하늘은 맑고 푸르고 또 습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수재민들은 무너진 보금자리를 복구하고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세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연천 수해현장을 지나 임진강변을 달리다 언덕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붙잡는다. 허리에서 몸을 뒤틀어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이 의연하다. 하늘의 뭉게구름과 함께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왁자지껄한 소리가 고요한 풍경의 정적을 깨운다. “아빠, 달고나 냄새가 나.” 앞서가던 민준(9)이가 뒤에서 오는 가족을 향해 소리친다. 아빠 박정호(43) 씨가 방아깨비를 잡고 있던 민준이 동생들 손을 잡고 민준에게 다가간다. ..
기린, 쥐, 강아지, 오리, 곰, …. 지루한 장마 틈에 하늘에 ‘동물의 왕국’이 펼쳐졌다. 바람이 부는 대로 뭉쳤다 사라지며 구름은 다양한 동물들을 만들며 잊고 있던 동심을 깨운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이 구름처럼 일순간 뭉쳤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동심으로 돌아간 이 순간 기자도, 아빠도, 그 누구도 아닌 난 밀림의 왕자.
하나, 둘, 셋. 줄을 꼭 잡고 바람보다 더 빨리 달렸다. 이내 두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리더니 푸른 물결이 발아래 펼쳐진다. 잔뜩 긴장한 얼굴을 부드러운 바람이 어루만져 준다. 마침내 새처럼 날고 싶다는 꿈이 이뤄졌다. 문경새재가 한눈에 보이는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아찔했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 줄기인 조령산, 백화산, 월악산 등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저 멀리 한발 앞서 비행한 이철호(50) 씨의 모습도 보인다. 처음 하늘을 날아본다는 그도 나와 같은 심정이리라. 비행을 위해 활공장으로 올라오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 터였다. “세상이 이래 바뀌는구나 싶었지요.” 대구에서 삶의 기반을 잡은 이 씨는 그동안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