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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오랫동안 새벽 출근을 하다 보니 아침밥을 거를 때가 많다. 일터로 허겁지겁 가는 대로변 가로수에 흰 눈이 소복이 내린 듯 새하얀 꽃들이 만개했다.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 꽃이다. 밤새 숙취와 허기로 배 속이 요란하다. 차는 막혀 꼼짝을 안 하고 멍하니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며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5월은 보릿고개가 절정이었다. 식구는 많았고 먹을 것은 귀했다. 허기는 늘 공기처럼 친근했고 흰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 꽃을 보기만 해도 배 속이 요란해졌다. 누군가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누군가에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출근길 이팝나무 꽃이 수많은 사연을 안고 무성히도 피었다. ■ 촬영노트 요즘 전국을 흰 물결로 수놓은 나무가 이팝나무와 아까시나무다. 나무 꽃이 밥알(이밥)을 닮았다고 부른 이팝나무는 예로부터 꽃이 많..
책갈피에 끼워두었던 단풍잎들이 사랑방 창호문 위에서 오후 햇살에 다시 피어납니다. 두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평화가 찾아듭니다.
파란 하늘아래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산책길을 따라 심어진 스크렁들은 바람결에 덩실덩실 춤을 춘다. 서울 이촌한강공원 풍경이다. 어깨동무 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아슴아슴 추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 아이들만 한 때 였나보다.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던 길에는 논두렁을 따라 키 큰 미루나무들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 미루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면서 몰래 맛보던 그 막걸리 맛이 얼마나 맛있던지... 그 달콤했던 유년의 추억에 동요 한 자락이 입안에서 맴돌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서울시는 2017년부터 한강 동서를 잇는 약 40km 길이의 ‘미루나무 백리길’을 조성했다. 시원하게 뻗은 미루나무 길을 걷다보면 추억의 한 자락을 길어 올릴 수 있..
구들석탑을 쌓았습니다. 작은사랑방 해체할때 나온 구들장과 조각돌들입니다. 기둥위에 구들장을 올리고 탑을 쌓듯이 올려 세계최초(?)의 ' 삼층구들돌탑'이 완성되었습니다. 재미삼아 했는데 검게 그을린 돌하나하나에서 고단한 허리를 지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
“뻥이오~.” 시장 한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걸쭉한 소리에 왁자지껄하던 장터가 숨을 죽인다.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면 ‘펑’ 하는 대포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오색 파라솔이 출렁인다. 취나물, 고사리 등을 가지고 나온 아낙들과 이것저것 구경하는 사람들로 모처럼 장터에 생기가 돈다. 경기 양평 5일장 풍경이다. “이영애가 여기 단골이여.” 구수한 향기와 함께 뻥튀기 장수의 자랑이 이어진다. “문주란도 자주 오는데 우리 ‘강냉이’를 아주 좋아해.” 그냥 웃자고 하는 ‘뻥’인 줄 알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거든다. 왕년의 스타들이 양수리 근처에 많이 살고 있어 이곳 오일장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네.” 코로나19 여파로 열고 닫기를 반복하던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신바람이 난 ..
사그락 사그락∼ 까칠까칠한 수염을 하늘로 치켜세운 청보리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몸을 비벼댄다. 익어가는 보리밭 위로 화들짝 놀란 비둘기들이 푸드덕 날아가고 키다리 미루나무도 바람에 몸을 뒤척인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등지고 캠핑장 앞에 조성된 ‘난지 한강공원’의 청보리밭이다. “이맘때면 어머니 생각이 문득문득 나요.” 추억에 잠긴 듯 두 손으로 보리를 쓰다듬고 있던 윤모(69) 씨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했지만 보리가 영그는 이맘때면 특히 먹을 것이 없었다. 보따리 채소장사를 하시는 어머니는 채소가 안 팔리는 날에는 밤늦게 오셨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면 늦은 밤에 오신 어머니는 꽁보리밥을 지어주셨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자신의 어머니 같아 집에 ..
“아빠다!” 엄마와 놀던 아기 비오리 두 마리가 쏜살같이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먹음직한 물고기를 입에 물고 가족에게 달려가는 아빠 비오리의 발놀림이 경쾌합니다. 어린 시절, 퇴근하시는 아버지께 인사를 하면서도 눈길은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꾸러미에 먼저 가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늘 기다림과 설렘의 존재였습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둥지를 떠났지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퇴근길 제 손에는 봉지 하나 덩그러니 들려있습니다.
이제 오려나 저제 오려나 하여없이 동구밖을 바라보는 어머니 바람이 찹니다. 들어가 게세요. 일 마치고 곧 달려갈께요...
어린 막내가 길바닥에다 실례를 했네요. 냄새가 심하지 누나랑 형은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리며 야단을 떱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가는 곳마다 잠겨 있는 도심의 화장실이 떠올랐습니다. 볼일이 급해 하늘이 노래져본 사람은 그때의 심정이 어떤지 잘 알 것입니다. 누가 똥을 훔쳐간다고 그렇게도 야박한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