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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는 황톳길… “아빠와 아들 발바닥이 닮았네”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6. 22. 11:18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다. 신발에 갇혀 잠자고 있던 감각이 일제히 깨어나는 듯 온 신경이 발아래로 쏠린다. 물기를 머금은 황토가 반죽이 잘된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서늘하고 미끄러운 감촉이 감싸자 발이 자유를 얻었다. 맨발이 더 자연스러운 대전의 계족산 황톳길이다.

“아빠, 흙이 자꾸 방귀를 뀌어~”

재인(7)이가 형 재이(8)와 신나게 흙을 밟고 있다. 아이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황토가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찌걱찌걱 소리를 낸다. 재인이는 이 소리가 흙이 방귀 뀌는 소리로 들렸나 보다.

“맨 처음에는 엄청 간지러웠어요. 그런데 점점 좋아졌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재이는 제법 의젓하게 흙 밟은 소감을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빨리 보고 싶다고 한다.

“가족이 더 끈끈해진 느낌이에요.”

남양주에서 왔다는 임원묵(38) 씨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꿈만 같다. 엄마는 어린 두 아이와 차에 있고, 아빠는 첫째인 재이와 둘째인 재인이의 손을 잡고 황톳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지난 1월에 막내가 태어나서 육아휴직을 했는데 코로나19로 계속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30대 초반, 회사일로 바쁘게 살다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몰랐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넷째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불렀고 첫걸음마도 직접 볼 수 있었다며 활짝 웃는다. 한껏 들어 올린 아빠와 두 아들의 발 모양이 붕어빵처럼 닮았다.



발을 씻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수많은 발 모양이 황톳길 위에 새겨졌다. 엄마 발, 아빠 발, 아이 발, 할아버지 발, 할머니 발,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걸었던 발까지 무수한 발의 사연이 황톳길 위에 오롯하게 남겨졌다. 길 위에 새겨진 발들이 속삭인다. 함께해서 행복했고 함께여서 힘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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