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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아빠다!” 엄마와 놀던 아기 비오리 두 마리가 쏜살같이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먹음직한 물고기를 입에 물고 가족에게 달려가는 아빠 비오리의 발놀림이 경쾌합니다. 어린 시절, 퇴근하시는 아버지께 인사를 하면서도 눈길은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꾸러미에 먼저 가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늘 기다림과 설렘의 존재였습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둥지를 떠났지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퇴근길 제 손에는 봉지 하나 덩그러니 들려있습니다.
“이랴∼ 이랴∼ 이랴∼” 정겨운 소리가 고요한 첩첩산중에 메아리친다. 비탈밭에서 소의 고삐를 밀고 당기며 쟁기질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소는 늙은 농부의 호령에 뚜벅뚜벅 장단을 잘도 맞춘다. 경사진 밭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농부와 소를 자세히 보니 소가 농부의 말을 척척 알아듣는다. “이랴∼” 하면 가고, “워” 하면 멈춰 선다. 고랑 끝에서 “워워∼” 하니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두 고랑을 갈고 나니 소도 농부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이 밭이 6천 평이래요∼, 소 없으면 일을 못 해요.” 고삐를 내려놓고 자신의 고달픈 삶을 막걸리 한잔에 풀어내는 우광국(79) 어르신은 평생 소와 더불어 살아왔다. 저 소도 일을 시키기 위해 어미젖을 떼고 4개월 때부터 나뭇등걸을 씌워 길들였다고 한다. 어릴 때..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비탈 다랭이밭, 오랜만에 밭 갈러 나온 소는 농부의 호령에도 아랑곳없이 딴청입니다. “허어 이놈이~” 화가 날만도 하건만, 늙은 농부는 고삐를 늦추고 한동안 기다려줍니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남녘 끝자락, 봄은 농부의 넉넉한 마음에서 먼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남해 가천마을에서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를 가만히 가슴 속에 담아본다. 누구나 외롭고, 절망할 때가 있는 법. 그럴 때 저 등대지기의 심정으로 마음 속 어둠을 밝히는 등댓불 하나 켜두어야겠다. 서해의 외로운 섬 어청도에서...
아름다운 가을빛을 모아 봤습니다. ^ ^ 가을날/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던져 주시고 들판녘에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남은 열매가 무르익도록 하명하여 주시고 남국의 날씨를 이틀만 더 베풀어 주소서. 무르익어라 이들을 재촉하여 주시고 마지막 남은 단 맛이 포도주에 듬뿍 베이게 하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제 고독한 사람은 오래오래 고독을 누릴 것입니다. 밤을 밝혀 책을 읽으며 긴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에 잠기면 가로수 길을 마냥 헤매일 것입니다. 잎이 휘날리는 날엔... . 그냥 돌아가지 못하고 시를 적는 무례함도 가을날의 서정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오려나 저제 오려나 하여없이 동구밖을 바라보는 어머니 바람이 찹니다. 들어가 게세요. 일 마치고 곧 달려갈께요...
그리움이 컸던 만큼 내리는 비가 반갑습니다. 들녘 스케치를 마치고 바삐 회사로 돌아오던 길, 금계국 꽃대에 데롱데롱 매달린 물방울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풀잎마다 주렁주렁 꽃보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컸던 만큼 한방울 한방울 보석처럼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물길 열려 바다로 일 나갔던 두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젊은 할머니는 양손에 묵직한 바구니를 들고 앞장서고, 꼬부랑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부지런히 그 뒤를 따라갑니다. 갯것을 캐며 늙어가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입니다. 긴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발자국을 보면서, 반평생을 함께 하셨던 내 어머니와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억척스럽게 헤치고 온 두 여인의 고단한 삶이 연민과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2003/충남 태안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잠깐 들렀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신 어머니는 최근에 허리수술을 받아 아직 불편하신 몸인데도 호미를 들고 밭두렁으로 나가셨습니다. 들판은 꽃샘추위로 스산했습니다. 허리에 무리가 가니 가만히 계시라는 자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기어코 소쿠리 가득 냉이를 캐서 바리바리 싸주셨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나온 냉이처럼 모질게 살아오신 어머니. 당신 몸 부서지는 것 생각 않고 자식들 하나라도 더 먹이시려고……. 아내가 끓여준 냉이 된장국을 먹으며, 냉이보다 더 질긴 어머니의 사랑에 목이 메었습니다. 2004/ 경기 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