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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한몸되어… 가장이라는 무게를 지고 인생의 밭을 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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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한몸되어… 가장이라는 무게를 지고 인생의 밭을 갈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4. 16. 16:09

“이랴∼ 이랴∼ 이랴∼”

정겨운 소리가 고요한 첩첩산중에 메아리친다. 비탈밭에서 소의 고삐를 밀고 당기며 쟁기질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소는 늙은 농부의 호령에 뚜벅뚜벅 장단을 잘도 맞춘다. 경사진 밭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농부와 소를 자세히 보니 소가 농부의 말을 척척 알아듣는다. “이랴∼” 하면 가고, “워” 하면 멈춰 선다. 고랑 끝에서 “워워∼” 하니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두 고랑을 갈고 나니 소도 농부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이 밭이 6천 평이래요∼, 소 없으면 일을 못 해요.”

고삐를 내려놓고 자신의 고달픈 삶을 막걸리 한잔에 풀어내는 우광국(79) 어르신은 평생 소와 더불어 살아왔다. 저 소도 일을 시키기 위해 어미젖을 떼고 4개월 때부터 나뭇등걸을 씌워 길들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멍에가 씌워진 것이다. 측은한 마음에 소를 보니 눈만 껌벅이고 있다. 맑고 고요한 눈이다.

“사람도 그렇고 소도 그렇고 죽지 못해 하는 거래요.”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밭을 갈았다는 어르신.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이제는 집에서 쉴 법도 한데 아직도 자식걱정에 일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문득 땅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이 멍에가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다시 쟁기질이 시작됐다. 넓은 비탈밭은 늙은 농부와 소의 힘으로 숨골이 생겼고 땅은 물러졌다. 쟁기가 지나간 자리의 흙들이 겨우내 단단해진 속살을 드러내며 봄볕을 쬐고 있다. 생기를 얻은 강원도 산골의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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