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2-4 조리개< “배경을 단순화 하라.”> 본문

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2-4 조리개< “배경을 단순화 하라.”>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2. 20:35

<준우>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특정한 길목을 지날 때 마다 향기로운 꽃 냄새가 난다. 아빠한테 이게 무슨 냄새냐고 물었더니, 이건 라일락 꽃 향기라고 대답해주셨다. 옆으로 조금 가서 보니 분홍빛을 띄는 꽃들이 냄새를 풍기며 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얀색, 분홍색으로 얼룩진 라일락 꽃은 청순하고 참 예뻤다. 꽃이 너무 예뻐서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나올 것 같았다. 아빠는 어느새 이문세가 빙의되어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 라고 흥겨운 노랫말을 부르며 저만치 가고 계셨다. 멋진 사진을 찍어서 아빠를 놀래켜 드리고 싶었다. 나는 카메라를 얼른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한참 꽃을 찍고 디스플레이로 사진을 봤는데 꽃이 예쁘게 나오긴 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진이 그냥 “이건 라일락 꽃입니다”라고 마치 설명문처럼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찍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싶은데, 사진은 계속 어딘가 난잡하고 라일락 꽃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 대고 다시 시도하려는데, 아빠가 어느새 뒤에서 “잘 안찍히니?” 라고 물으셨다. 멋진 꽃 사진을 찍어서 아빠를 놀래켜 드리려는 계획은 수포가 되어 버렸다. 나는 체념하고, 아빠에게 사진이 어딘가 자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배경을 단조롭고 어두운 것으로 잡고 찍어 봐라” 라고 한마디 하신 후 아버지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셨다. 배경을 단조롭게? 어둡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감이 잡히질 않았지만, 일단은 카메라에 눈을 대고 이리저리 각도를 다르게 해보았다. 이렇게 보고, 쭈그려 앉아서도 보고 이리저리 각도를 움직인 후에야 나는 마침내 아빠가 말했던 ‘배경을 단순화’한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라일락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으니 꽃 주변의 배경은 모두 어둡고 평평하게 나왔고 그 가운데 새하얀 라일락 꽃이 돋보였다. 그 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니, 그 전 사진 안에는 라일락 꽃 옆에 다른 나무, 벽, 보도 블록 등 별에 별게 다 들어와 있어서 ‘라일락 꽃이 있다’ 라는 설명문의 느낌만 받았지만, 방금 찍은 사진은 마치 소설책을 읽듯 라일락 꽃의 줄기와 잎에 달린 솜털 하나하나부터 라일락 꽃의 색깔의 우아함까지 사소한 디테일이 보였고, 사진 한 가운데 하나만 그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배경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단조롭고 난잡한 ‘그냥 사진’이 소설책 같은 ‘라일락 꽃의 사진’이 될 수 있음이 너무 신기했다.

 

 

 

<아빠가>

“라이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준우야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나 열애에 빠졌을 때도 라이락 꽃 향기가 가득했었지. 아빠는 그 때 사랑하는 연인에게 잘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그중 아빠가 제일 공들인 것이 직접 만든 사진카드였지. 당시 교정에 만발하던 라이락꽃을 정성껏 찍어 카드로 만들어 보내곤 했단다. 그때 아빠는 그 향기까지 사진에 담아 보내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야 말이지.
라이락꽃 향기에 푹 빠진 준우를 보니 옛날 추억이 떠오르고 준우사진에도 향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ㅎ ㅎ

일반적으로 배경을 잘 처리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피사체의 인상, 그리고 사진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어. 화면 구석에 쓸데없는 것이 들어가면 시선을 빼앗기 되는데 사진을 찍고자 하는 대상(피사체)을 강조할 때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배경을 단순화 하는 거지. 카메라를 이용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조리개를 활짝 열어 배경을 흐릿하게 하면 찍고자 하는 대상이 강조가 될 수 있어. 만약 이것이 용이 하지 않으면 뒷 배경을 최대한 단순화 시키면 되지. 일반적으로 어두운 배경에서는 피사체가 돋보이게 되는 사실을 사진을 찍는 동안 알 수 있을 거야. 

 

준우야 렌즈와 마찬가지로 조리개도 사람의 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거야. 사람의 눈이 여러 가지 시신경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렌즈의 조리개에 해당하는 부위가 바로 ‘동공’이야.
동공을 통해 들어온 빛은 수정체(렌즈알)를 통과하여 카메라의 필름이나 CCD에 해당하는 망막에 그 상이 맺히게 되지.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동공은 빛이 밝을때는 조여져 있다가 반대로 어두운 곳에서는 확 열려져 있지. 카메라의 렌즈도 어두울때는 빛에 담겨있는 색상정보를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조리개를 활짝 열게 되지. 

아빠가 말한 조리개를 활짝 연다는 것은 무엇일까. 렌즈에 내장된 밝기 조절 기구인 조리개는 보통 ‘F값’이라 부르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밝고 클수록 어둡게 되지. F값을 작게 설정하면 조리개의 개방 구경이 커지고 이를 조리개를 연다고 말하지. 반대로 F값을 크게 설정하면 개방 구경이 작아지고 이를 조리개를 조인다고 하지. 그러니까 렌즈의 조리개를 활짝 연다는 말은 조리개를 최대한 열어서 앞에 있는 것은 뚜렷하게 보이지만 뒤에 부분은 희미하게 보이게 되지.

F2.8  조리개 개방하여 뒷배경이 희미하다

F11   조리개를 조여 배경도 잘 뚜렷하다

 

그러므로 보통 촬영하는데 있어 심도가 얕다라는 말은 주피사체를 제외하고는 그정보가 흐릿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통 아웃포커스가 됐다고 말하지. 반대로 심도가 높다는 말은 주피사체이외에 다른 것들도 그 정보가 비교적 뚜렷하게 되어 보통 넓은 풍경사진을 담을 때 사용하게 되지.  


그럼 이런 조리개는 왜 필요한 걸까?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는 색깔이나 형태에 따라 그 빛을 반사시키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형태를 인식할 수 있지. 셔터와 마찬가지로 조리개는 적정노출을 위해 빛을 조절하는 기계적 장치야. 셔터가 빛이 통과하는 ‘시간’을 가지고 빛의 양을 조절한다면 조리개는 빛이 통과하는 ‘공간’을 가지고 빛의 양을 조절한다고 할 수 있지. 3차원 공간과 4차원적 시간의 만남으로 무한에 가까운 노출 조정이 가능하지.

 

준우야 좀 어렵지. 아빠도 이 대목에서 어려움이 많았어. 인간의 눈처럼 렌즈도 어느 한 곳에 초점을 맞추면 앞뒤로 상이 흐릿하게 되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3차원인데 이것을 2차원 평면에 다시 빛으로 담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지. 그러나 너무 걱정할 것 없어. 그저 카메라를 들고 여러번 찍다보면 준우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이 나올거야. 그것이 가장 좋은 사진이고 그 사진에는 준우가 의도가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차츰 준우의 의도가 어떤 기계적 매커니즘에 의해 표현되는 가를 알게 될거야. 처음부터 기계적 매커니즘에 몰입하게 되면 창작에 방해가 될 수 있지. 개그 프로에서 16년만 열심히 하면 달인이 된다고 했는데 아빠는 20년을 넘게 사진을 직업으로 했으면서도 표현의 절대적인 요소인 피사계 심도를 활용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게 돼.  아빠가 달인이 되기에는 아직 먼 것 같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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