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2-3 셔터(“찰나의 공간과 시간을 담는 소리: 찰칵!”) 본문

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2-3 셔터(“찰나의 공간과 시간을 담는 소리: 찰칵!”)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2. 20:30

<준우>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카메라 화면에 떠있는 “1/125, 1/250” 이 뭔지 항상 의아했었다. 설명서에 셔터 속도라고 명시가 되어 있었지만, 셔터에 한번 “깜빡!” 하면 사진이 찍히는 것이지, 무엇 하러 그 “깜빡!” 거리는 속도까지 조절을 해야 하나 싶었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에 산책길에 오른 나는, 아마도 날씨가 많이 포근해 져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유유히 순회하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낯선 사람들이, 오늘 따라 자전거 타는 아저씨의 종아리 근육이 돋보였고, 한 발 한발 내딛으실 때 마다 씰룩씰룩 거리는 조깅하는 할아버지의 “노쇠하신 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팔 근육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변태적인 동기가 아닌, 순수하게 일요일 아침의 생동감과 강한 생명력을 사진기에 담고 싶어서, 나는 벤치에 앉아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연신 셔터를 누르고 숨도 돌릴 겸, 사진 앨범을 본 나는 당혹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내가 찍어 놓은 사진에 있는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를 잘 안 지워지는 지우개로 빡빡 문지른 것 같은 사진만 잔뜩 쌓여있던 것이 아닌가! 잔뜩 찍었던 모든 사진의 조깅하시는 할아버지, 마라톤 하시는 분들, 싸이클링을 하시는 아줌마들의 모습들이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였다. “내 카메라의 성능이 썩 좋지 못해서 그런 것일 거야”라며 내 자신을 위로하고 단념하며 자리를 일어서려는 나에게 아빠가 해답을 주셨다. “셔터 속도를 높이는 것이 어때?”

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보니 1/30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1/30초도 엄청 빠른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빠가 시키는 대로 1/125로 높이고 다시 셔터를 눌러보았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의 모습이 약간 흐릿하긴 했지만 이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1/500으로 셔터 속도를 높이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의 멋진 종아리 근육이 이제야 선명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시간이 흘러간 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시간이 흘러간 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는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면 영화를 촬영하고 상영하는 원리랑 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필름에 촬영이 된 영화는 원하는 장면으로 돌려 볼 수 있고, 되감기를 할 수 있지만 ‘인생의 영화’는 아쉽게도 그런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이 ‘인생의 영화’ 속에서 살다 보면 되감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고, 가끔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일시 정지버튼 대신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누른다.
찰칵! 셔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빠르게 흘러가는 장면 중 하나가 내 카메라에 담긴다. 나는 다시는 ‘돌려보기’를 눌러 돌아 볼 수 없는 그 장면을 간직한다.       

 

<아빠가>

ㅎㅎ 준우가 드디어 시간이라는 사진의 궁극적인 경지에 까지 오르게 되었네. 준우야 이번 산책에서 느꼈겠지만 사진과 시간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사진은 결국 빛과 시간으로 빚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준우의 카메라는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적정한 노출을 위해 이른 아침 셔터속도가 30분의 1초로 떨어졌을 거야. 그래서 준우 카메라에 찍힌 운동하는 분들의 모습이 흐르는 강물처럼 나왔던 거야. 보통 우리가 어느 물체를 흔들림 없이 찍으려면 최소 셔터스피드가 60분의 1초 이상은 되야 하거든. 셔터는 조리개와 함께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구로, 이미지 센서에 빛이 닿는 시간을 조절해주는 장치야. 셔터가 열리고 닫히기까지의 시간을 ‘셔터 속도’또는 ‘셔터 스피드’라고 부르는데 1/500초, 1/60초로 설정되지. 카메라에서는 몇 분의 1이라는 단위가 생략되고 그냥 500, 125 등으로 표시되지. 

아빠가 60분의 1초 하니까 실감이 안 나지. 125분의 1초, 500분의 1초의 속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 할거야. 아빠가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사진 강의를 할 때 제일 먼저 시간을 느껴보라고 하지. 눈을 감게 하고 카메라 셔터의 1초를 느껴보게 하는 거야. 너도 눈을 감고 1초라는 시간을 느껴보았지. 평소의 1초는 눈 깜짝할 사이지만 ‘찰칵’하는 카메라의 셔터소리의 1초는 상당히 긴 시간으로 느껴 질 거야. 우리가 보통 찍는 사진의 속도가 125분의 1초라고 할 때 1초를 125로 쪼갠 시간이니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알 수 있을 거야. 특히 스포츠 사진은 보통 500분에 1초 혹은 1000분의 1초 동안 만들어지는 사진이니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준우야 이세상의 모든 사물은 순간순간 그 의미를 가지며 변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순간의 예술’이라고 말하며 ‘순간에서 영원으로’라고 표현하기고 해. 사진을 찍는 그 순간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다시 현재를 통해 부활되지. 우리는 어느 한 인상적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다시 보기를 원하지. 그래서 여행을 하거나 의미 있는 행사가 있을 때 반드시 카메라가 동행하기 마련이지. 기념촬영을 그날의 사진일기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야.. 준우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많은 기념촬영을 했을 거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당시 졸업앨범을 꺼내 다시 보면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의 친구들의 모습과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를 거야.

사진이 기록이라는 특성을 가지게 된 건 바로 시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야. 시간이 흐르고, 그 순간이 사라져가기에 사진의 의미가 생긴다고 볼 수 있지. 사진에 찍힌 것은 카메라 앞에 그 것이 존재했음을 의미하지. 그래서 결혼식사진 같은 단체사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기념촬영이고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평생 변치 않는 일종의 출석부와 같은 것이지. 아빠가 속해 있는 한국사진기자협회에서는 매년 보도사진연감을 발행하는데 그 해에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 사고를 사진으로 기록한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준우야 ‘찰칵’하는 카메라 셔터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어떠했니? 아마 준우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에는 찍고자 하는 대상과 준우의 마음이 ‘찰칵’하는 소리를 통해 일치하는 느낌이 들었을 거야. 번개불에 콩 구워 먹는 듯한 짧은 순간에 준우의 마음과 찍고자 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었던 거지. 바로 이것이 사진의 즐거움이자 묘미지. 지금도 설레임을 가득한 준우의 밝은 눈빛이 생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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