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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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2-2 렌즈(스나이퍼)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8. 16:25

<준우>

 “바스락, 바스락” 놈이 또 나타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혹시 놈이 들을 세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으며 놈에게 접근을 하였다. 드디어 잡았다 이놈!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저격 라이플 같은 망원 렌즈를 착용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놈과 사투(?)를 벌인 지 30분 후에야 드디어 놈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평소에 산책을 다니며 수많은 참새, 까치 그리고 청설모를 발견하여 사진기에 담으려고 해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 대면, 이미 저만치 도망가 있거나, 알아채지 못하게 멀리서 찍으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점처럼 나와서 나는 그 역동적인 동물들을 찍을 생각을 일찍이 단념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빠가 망원 렌즈를 빌려주었다. 내 18-55m 렌즈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한 렌즈를 아담한 내 카메라 바디에 끼우니, 마치 배보다 배꼽이 큰 모습이 연출되어 되게 웃겼다. 그 모습이 웃길 뿐 만 아니라, 렌즈 또한 엄청 크고 무거워서 왼손은 렌즈를, 오른손은 바디를 잡고 산책을 나가야 했다. 우스꽝스럽고 무거운 이 중장비를 들고 산책을 하려니 시작부터 힘이 빠지고 땀이 삐질 삐질 났다.

그렇게 산책을 하던 중 저 멀리 나무들이 보여서 쭈그려 앉아서 자세를 잡고 눈을 카메라에 대보았다. 헐. 눈으로 볼 때 그 어렴풋이 형태 밖에 안 보이던 나무들이 바로 내 눈앞에, 손으로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저격수가 된 듯 한 생각이 들었다. 노련한 저격수가 자세를 잡고 스코프에 눈을 대며,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이, 내가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쭈그려 앉아 셔터를 누르는 모습과 같아 보였다.

“혹시 이거라면 그토록 찍기 어려웠던 그 놈들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작은 호수공원을 누볐다.

“이놈들, 이제 나는 창만 던지는 원시인이 아니라 저격총을 든 저격수다! 긴장 빨아라!ㅋㅋㅋ”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연신 해대며 돌던 중 위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서 쳐다보았더니, 찍기 힘들다는 놈 중 제일 힘든 놈, 청설모가 머리만 빼꼼 내민 체 나를 약 올리고 있었다. 분명히 속으로 “저 멍청이 또 왔네. 넌 날 절대 못 찍어.”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카메라를 들자 청설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 위로 쏜살같이 올라가서 다시 머리만 내밀고 나를 약 올렸다. 평소 같았으면 단념하고 그냥 갈 길을 갔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숨을 참아 자세를 잡고, 거대한 망원 렌즈를 치켜 올리고 셔터를 눌렀다. 경쾌한 셔터음과 함께 놈은 드디어 내 카메라 안에 담겼다. 나는 카메라 앨범을 보고 고소하다는 듯이 낄낄대며 뿌듯해 하였다.

 

이에 나는 자신감이 막 붙어서, 눈에 뵈는 동물은 죄다 추적하며 카메라에 담으려고 뛰어 다녔다. 하지만 그 후로 내 카메라에 담긴 것은 뿌연 나무 사진, 초점이 안 맞은 새, 역광으로 새까맣게 나온 새의 모습들 밖에 없었다. 장비 하나만 믿고 ‘나대서’ 그런 것이었을까? 갑자기 가까이 튀어나온 청설모, 해를 등지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새를 찍을 찍으려고 그 무거운 장비를 움직여 대며 초점을 맞추려니 어깨는 빠질 듯이 아프고, 지칠 대로 지쳐서 나는 오늘 찍은 ‘청설모’ 사진 하나로 내 자신을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준우야, 오늘 많이 힘들었지. 모처럼 쉬는 일요일, 새벽 5시부터 아빠가 사진 산책을 가자고 흔들어 깨웠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너의 몸과 마음이 오죽이나 힘들었겠니. 그래도 싫다는 내색 않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을 나서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어.

그동안 청설모를 찍기 위해 짧은 렌즈를 들고 애 많이 썼지. 사진산책을 나서면 언제 나타났는지 멀리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나무위로 도망가고, 돌아서면 또 다가오고……. 그래서 오늘은 아빠가 준우를 위해 특별히 망원렌즈를 준비했지.

망원렌즈는 먼 곳에서 좁은 범위를 보기 위한 것으로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내고 보기에 실제보다 크게 볼 수 가 있지. 구도나 주위 풍경을 의식하기 보다는 피사체의 표정 변화에 집중할 수가 있기에 나의 눈길을 그대로 사진에 옮긴다고 볼 수 있어. 

준우가 사용하는 렌즈는 화각이 우리 눈이 보는 것과 비숫 하다고 해서 흔히 표준렌즈라고 부르는데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 표준렌즈로 훈련을 하지. 가까이 찍고 싶으면 다가서고 멀어지고 싶으면 한발 물러나며 피사체와의 거리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망원렌즈의 반대가 광각렌즈데 과장된 원근감이 재미있게 표현되지. 하지만 처음부터 광각렌즈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내가 직접 보았을 때의 인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렌즈효과에 의한 인상만 남아버려 장난 같은 사진이 만들어지게 되지. 아빠도 처음 사진을 했을 때 1년 정도는 표준렌즈 하나로 거리감을 느끼는 훈련을 했단다. 

 

아빠가 조그만 준우 카메라에 어른 팔뚝만한 200mm 망원렌즈를 껴주니 너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눈 동그랗게 뜨고 공원 구석구석을 누볐지. 하지만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청설모는커녕 그 많던 까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니…….

지친 발걸음을 집으로 옮기던 중 작은 호수공원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청설모 한 마리를 발견했었지. 그 녀석은 높은 나뭇가지에서 우리 보면서 ‘나 잡아 봐라’하며 웃고 있는듯했어. 이때부터 준우와 청설모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지. 전에 같으면 청설모가 나무위로 올라가버리면 그냥 돌아섰을 텐데 신형무기(?)로 무장한 준우는 포기를 몰랐지. 약 30여 분간의 청설모를 쫒던 네가 만족한 사진을 찍었는지 환한 웃음으로 아빠에게 화답했지. “아빠, 청설모 눈이 참 예뻐요!” 카메라속에는 예쁜 청설모가 앙증맞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어. 

청설모를 망원렌즈로 당겨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틀렸을 거야. 장난감 같은 카메라로 잠시 사진 한 장 찍고 가던 친구가 오늘은 대포 같은 장비를 들고 끈질기게 쫒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청설모도 많이 놀랐걸. ㅎㅎ  “준우가 오늘 찍은 청설모 사진 참 좋았어.” 청설모의 눈을 통해 준우의 마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거든.

준우야, 인물사진을 찍을 때 눈에 초점을 맞추어야 좋은 사진이 되듯이 동물사진도 눈에 초점이 맞는 것이 좋단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동물마음도 그 눈을 통해 헤아릴 수 있거든. 아마 망원렌즈를 통해 준우의 눈과 청설모 눈이 마주쳤을 때 깊은 공감대가 흘렀을 거야. 그리고 동물의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순간 우리 인간의 마음을 잊는 것이 좋아. 청설모를 찍을 때는 너도  청설모가 되고 까치를 찍을 때는 까치가 되어 사진을 찍으면 더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 청설모를 따라 다니던 준우의 모습도 영락없는 청설모 같았거든. 그래서 오늘 준우가 좋은 청설모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거야. ㅎㅎ

 

****렌즈에 대하여****

사진을 찍을 때 왜 많은 렌즈가 필요할까?

준우야 사람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렌즈는 곧 카메라의 눈이라 할 수 있어. 우리 눈은 최첨단이라 가까운 곳과 먼 곳을 순식간에 볼 수 있지만 렌즈는 주어진 범위내에서 사물을 담아낼 수 있기에 오랜 개발 끝에 다양한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의 개발이 이루어졌단다. 따라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그 특성과 기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단다.

빛의 굴절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선명한 상을 맺게 하는 기능을 갖기에 사진을 질을 결정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렌즈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사진하는 분들은 많은 돈을 들여 좋은 렌즈를 구입하곤 하지. 

렌즈는 크게 광각(20~35mm), 표준(50~70mm), 망원(80~200mm)로 나누는데 넓은 범위를 또렷하게 찍을 때는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멀리 있는 물체를 크게 나타낼 때는 망원렌즈를 사용하지. 스포츠나 야생동물등 피사체에 다가가기 힘든 촬영에는 초망원렌즈(300mm이상)를 사용하는데 생태 사진을 주로 찍는 600mm는 일명 대포렌즈라고도 하지. 아빠가 다니는 신문사에도 스포츠나 생태촬영을 위해 600mm는 물론 1000mm렌즈등 다양한 렌즈가 있단다. 아빠도 올림픽 취재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때와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때 대포렌즈를 들고 그라운드를 누빈적이 있었지. 그때 대포렌즈를 두 개를 어께에 메고도 힘든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300mm 렌즈하나도 무겁게 느껴지니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표준렌즈는 인간의 시각에 가장 가까운 렌즈라고 할 수 있는데 일상적 시각을 중시하는 사진가들이 주로 쓴단다. 흔히 초보자 사이에서 표준만 가지고는 사진 창작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망원이나 광각이 있으면 표현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초보자들은 표준렌즈를 마스터해야 해야 어떤 경우에 망원이 필요하고, 광각은 또 어떻게 써야 할는지를 확실히 알 수가 있단다. 알맞은 곳에 알맞은 렌즈를 쓸 줄 안다는 것은 올바른 창작을 함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본요령이지.

화각은 사진으로 찍히는 범위를 말하는데 렌즈의 초점거리(렌즈에 들어온 빛이 한곳에 모이는데 렌즈 중심에서 빛이 모이는 곳까지 거리)가 짧아질수록 즉 광각일수록 화각이 넓어진단다. 반대로 렌즈의 초점 거리가 길어질수록 즉 망원일수록 화각이 좁아지는데 쉽게 비유를 들자면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놓고 좀 떨어져 보면 망원렌즈, 눈을 가깝게 대고 보면 광각렌즈이고, 창호지에서 눈까지가 초점거리라고 보면 돼. 어때 쉽지 ^ ^

준우가 호수공원에서 가을 단풍을 담는 모습을 같은 거리에서 24mm부터 200mm렌즈까지 6단계로 나누어 담아봤어. 즉 카메라에서 피사체(준우)까지의 거리는 모두 일정한데, 광각일수록 범위는 넓어지지만 준우는 작아지고, 망원일수록 범위는 좁아지지만 준우는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단다.


 

                                           24mm

                                          35mm
                     

                                          50mm

                                          70mm

                                          100mm


                                          2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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