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들이댄 렌즈엔 겨눠진 총끝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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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댄 렌즈엔 겨눠진 총끝이---

빛으로 그린 세상 2016. 7. 7. 12:45

″따따따 탕---″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굶주린 이리와도 같은 임채성 일병과 외딴 골목에서 마주쳤다.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있는 필자에 비해 K1자동 소총과 수류탄으로 중무장한 그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살벌했다.
결투가 시작되었다. 하나, 둘, 셋, 넷, 미처 다섯을 세기도 전에 또 다른 중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난사하자 임 일병이 쓰러졌다.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온 임일병은 피거품을 문 채 총기를 난사하며 수류탄을 정신없이 던지고 있었다. 필자의 온몸은 산산조각 부서졌다.---
꿈이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지난(1993년) 4월 19일 있었던 무장탈영병 도심 총기난동사건 취재를 마친 뒤 매일 이와 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날은 4.19혁명 33돌을 맞은 아침이었다.
″여보, 어서 일어나세요.″ 7시 뉴스를 들은 아내가 그날따라 호들갑을 떨며 잠자리를 뒤 흔들었다.
″정신병원에 큰불이 나서 아이들이 모두 죽었대요.″
회사에 전화해 보니 야근자를 찾을 수 없었다. 서둘러 회사에 도착하니 야근하던 진정영 선배가 이미 새벽에 논산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었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광릉에 사는 테스크가 오늘따라 광릉내 검문소에서 검문검색을 유별나게 하는 탓에 늦었다고 투덜대며 편집회의에 들어 갔다.

얼마되지 않아 테스크가 회의실에서 뛰어나오자. 무장탈영병이 시내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테스크의 눈이 번쩍이며 무슨 감을 잡은 듯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있는 부원들을 살펴봤다. 잠시 후 테스크와 내 눈이 마주쳤다.
″반드시 잡아야 돼″라는 무언의 압력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한준수 전연기군수 강제구인,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사고등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큰 힘이 되어준 변재성 기자가 망원렌즈을 챙기며 따라나섰다. 오전 10시 50분께였다.
동대문으로 향하는 취재차 안에서 카메라에 필름을 넣으며 변재성 기자가 말을 걸었다.
″김 선배 몸조심해요. 목숨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씨익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87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이래 취재현장에서 코뼈가 부러지는등 유달리 병원신세를 많이 졌던 필자에세 변기자는 친동생 같은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차량전화로 동대문경찰서 상황실 등에 탈영병의 상황을 점검해 봤지만 이렇다할 대답을 얻지 못하였다.
11시 10분께 동대문 이스턴호텔에 도착하니 환전 무장한 군인들이 호텔을 에워싸며 근처 지하도 부근까지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저리 비켜요.″ 권총을 허리에 찬 군인 하나가 호기심에 몰려든 시민들을 쫓기에 바빴다.
″탈영병은 어디에 있습니까?″ 되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범인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어요.″ 어떤 군인이 귀띔을 해주었다. 사실 이스턴호텔에 탈영병이 아직까지 있으리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달아났다는 말에 오기가 발동했다.
″도대체 어느 쪽으로 달아났어요?″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때 한 경찰 간부가 들고 있던 무전기가 칙칙거리며 혜화동 쪽에 탈영병이 나타났다는 무전연락이 들렸다. 순간 삼엄한 경계를 펼치던 군인들과 경찰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타격대 차량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수많은 차량을 헤치고 이화동 쪽으로 향하였다.
″형님! 저 친구들을 따라잡아야 돼요.″
사내 축구시합 때 물찬 제비와도 같던 수송팀 김정수씨가 오케이 손짓을 보내며 180도 차를 돌려 타격대 차량을 쫓기 시작했다.
완전무장한 군과 경찰이 미친 듯 차를 몰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어리중절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속력을 더 내기를 바랐지만 완전무장한 군인들에게 놀란 일반차량들이 취재차와 서로 뒤엉켜 이화동 근처에서 놓치고 말았다.
경적소리를 추적해 혜화동 로터리까지 왔지만 네 갈래 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답답하였다. 주요소 근처 경찰들에게 물어봐도 모두 당혹스런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이때 사십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가 잔뜩 겁에 질린 채 과학고등학교 쪽에서 울부짓으며 뛰쳐나왔다.

″시람이 죽었어요.″
″아주머니, 어느 쪽이예요.″
사회부 기자 몇 명이 달려들어 물었지만 이미 아주머니는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이 공포에 질려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쭈뼛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후배에게 주변스케치를 당부하고 아주머니가 온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여기저기 경찰들이 허술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1백여m를 내달았을 때 앞유리가 박살나고 운전자 옆좌석에 붉은 피가 흥건하게 소형트럭이 보였다. 주변에는 수류탄 파편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수류탄과 총탄이 취재차를 향해 날아올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가면 위험해.″ 수송팀의 김정수씨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탈영병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비상 사이렌을 끄고 차에서 내려 뛰었다. 성균관대로 향하는 길이 마치 쥐죽은 듯이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50m를 미친 듯 뛰었을 때 오토바이 옆에 흥건한 피가 고여있는 게 보였다. 그 옆 담벽에 몇몇 사람이 쓰러진 사람의 머리 부위에 수건을 두르며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나중에 지상보도를 통해 그 사람이 야채가게를 경영하며 1남 4녀를 키우던 고성주 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 씨는 이날 아침부터 밀어닥친 주문에 응하느라 식사도 거른 채 명륜동 근처에 있는 단골거래처로 배달을 나섰다 한다. 고씨는 사고 지점에서 임 일병이 탄 승합차 뒤에 멈쳐 서는 순간 총이 보여 재빨리 오토바이에서 내려 차 뒤에 숨었느나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임 일별이 고씨의 왼쪽머리를 정조준해 방아쇠를 당기는 바람에 숨졌던 것이다.
고씨의 주검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다. 분노도 감깐, 콩볶는 듯한 총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몸을 던졌다. 몇몇 사람이 몸을 웅크리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중 총을 든 경찰도 눈에 띄었다.
″이봐요 경찰아저씨, 탈영병은 어딨죠.″
대답대신 경찰관은 손가락 끝으로 언덕 위쪽을 가리켰다. 이어 집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폭음이 들렸다. 수류탄을 던진 모양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첩에서 아들 사진을 꺼내 보았다. 백일 때 찍은 사진이다. 아들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방긋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주일미사에 참석하라고 간곡히 타이르시던 말이 떠올랐다. 후회가 되었다. 89년 백골단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전민련 집회에서 중상을 입었을 때도 별 두려움이 없었는 데---. 왠지 진한 두려움과 고독이 밀려왔다.

″신문사의 사진기자는 역사의 목격자야! 사진기자는 언제나 사건의 현장에, 그것도 가장 가까이 있어야 돼. 그라고 그 현장을 가장 생생하고 충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진기자야.″
며칠 전 테스크와 술자리에서 주고 받던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더구나 자기의 눈으로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수많은 독자들은 사진기자의 사진기를 통해 그 현장을 들여다 보고 직접적인 경험을 얻은 듯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거야!″
누군가 취재일지에 적어놓은 글귀도 불현 듯 떠올랐다.
″우리가 눈뜨고 있음을 증명하자. 카메라가 있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카메라 끈을 바짝 움켜쥐었다. 탈영병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오르막길에 오르자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정보성출판사 건물벽에 바짝 기대어 광란하는 탈영병과 대치중이었다.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군인들과 동시에 골목으로 황급히 내달았다. 골목 가득히 피비린내와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광란의 현장 그 자체였다. 운동복을 입은 임 일병은 검붉은 피를 흘린 채 봉고차 사이 좁은 길에 널브러져 있었다.
좁은 카메라 렌즈에 임 일병의 모습이 빨려 들어왔다. 파르르 온몸을 떨던 임일병이 축 늘어졌다.

군인들이 달려들어 임 일병의 손과 배를 짖눌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임일병이 순간 몸을 뒤척이자 놀란 군인들이 총구를 임 일병 머리에 바짝 겨누었다. 임 일병은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임 일병이 순찰차에 실려간 뒤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타사 기자들이 몰려 들었다. 다리가 휘청이며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겼다. 타는 듯 목이 말랐다. 한시라도 빨리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멀리서 후배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김 선배 다행이예요.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가운 소주 생각이 간절했다. 밤새도록 마셔도 악몽같은 30분간의 기억을 씻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날 동료들과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러나 술을 마실수록 허탈한 감정만 밀려들었다. K1소총과 1백30발의 실탄, 22발의 수류탄으로 중무장하고 탈영한 임일병,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상식 이하의 치안 대처 능력, 그로 인해 열심히 일을 하다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불구가 되어 슬픔에 잠긴 시민들---.
이후 기자는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칠 때면 명륜동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 전의 끔찍스런 상황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여전히 사람들은 제갈길이 바빴고 로터리의 분수가 뿜어 올린 수많은 물방울은 햇살에 부딪쳐 영롱한 무지개를 그려내고 있었다.


<저널리즘 1993년 여름호>


ps) 이사진은 나에게 첫번째 한국기자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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