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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호이∼’ 삶 건져올리는 소리… “힘들어도 사는 일잉께”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6. 29. 08:12

콧등에 땀이 솟아나고 숨이 차오른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버스는 더디기만 하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차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숨 막히는 일상이 5개월째 되풀이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걸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차에서 내려 잠깐 마스크를 벗고 숨을 몰아쉬자 ‘휘이’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랜 잠수 끝에 물 위로 얼굴을

내민 해녀들의 숨비소리 같다.

한 번 더 긴 숨을 내쉬니 ‘하아~’ 소리와 함께 해녀 할머니 한 분이 해삼, 멍게가 가득 든 망사리를 짊어지고 내 기억 저편에서

걸어오신다. 제주 추자도 옆 작은 섬 횡간도의 고정심 할머니다.

‘휘호이~ 하아~’

오랜 물질 끝에 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 표정에 괴로움이 역력하다. 처녀 시절부터 한 물질이라 이골이 났지만,

주름이 늘어날수록 호흡도 가빠진다. 섬에서 나고 자라 섬에서 결혼까지 한 할머니는 남편이 허리를 다쳐 홀로 물질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섬을 떠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지만 자식들을 모두 대처로 내보내는 것으로 소원을 대신했다.

“50년 넘게 물질했더니 몸이 성한 디가 없어, 그려도 안 헐 수는 없지.”

칠십이 넘도록 물질을 하고 계신 할머니는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족이 때론 무겁기도 하지만 저승 같은 물속에 들어가면

그래도 이승의 가족들이 그립다고 한다.

“허고 잡다고 허고, 안 허고 잡다고 안 헐 수는 없지. 사람 사는 일잉께…….”

사람 사는 일이라는 할머니의 말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다시 마스크를 고쳐 쓰고 일터로 발걸음을 내딛는 등 뒤에서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삶을 건져 올리라고, 힘내라고……. 휘호이~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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