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2-1. 빛에 대하여 본문

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2-1. 빛에 대하여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8. 16:00

 

사방이 어둡고 고요하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조용하다. 정적이 흐르는 고요함을 헤쳐 나가며 마침내 연꽃으로 덮여있는 호수에 도착하였다. 그 넓은 호수가 다 연꽃으로 덮여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는 카메라를 빨리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확인해 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해가 뜨기 직전 호수의 멋진 광경을 계속 찍었다. 나는 사진을 확인하고 내가 찍은 사진들이 다 한결같이 공통점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또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왜 사진들이 다 푸르딩딩하지?” 분명히 눈으로 본 호수는 그러지 않았는데, 내가 찍은 호수의 풍경 사진들에는 모두 선한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혹시 카메라가 고장 났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들며, 내 얼굴도 푸르딩딩하게 질렸다 ㅠㅠ. 아빠에겐 비밀로 하기로 했다. ㅋㅋ

어둡던 하늘 한 자락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나오며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들을 모두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가뜩이나 겁에 질려있던 나는 갑자기 광활한 하늘이 붉은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더 겁에 질렸다. 마치 구름들이 활활 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도 잠시, 나는 좀 전까지만 해도 고요하던 호수가 분주해지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잠자던 오리들도 눈을 비비고 하나 둘 나오며 호수 위를 유유히 헤엄치며 산책을 하고, 봉우리를 꼭 닫고 있는 연꽃들도 하나 둘 걸어 잠근 꽃잎들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놓일 세라,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호수의 분주한 모습을 보니 마치 새벽같이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나 또한 자연의 일부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공감을 하였다. 사진들을 찍은 후 거의 습관처럼 나는 카메라 디스플레이에 비친 사진들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이다!” 내 카메라는 망가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는 푸른 빛은 온데 간데 없고 약간 붉은 빛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빛을 띠는 호수의 모습은 이전에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같은 위치, 같은 구도의 호수였지만 해가 뜨기 전, 그리고 해가 뜬 직후의 그 모습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단순히 색감이 다른 것이 아닌, 그 광경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해는 어느 덧 제법 높게 떴고, 붉은 빛으로 물들여진 하늘 또한 이제는 투명한 색으로 바뀌었다. 호수 위에 아침 햇살이 쫘악 내리 쬐며, 오리 들은 멱을 감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채비를 마쳤고, 호수 위를 날라 다니던 실잠자리 역시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연꽃들은 어느새 아침 화장(?)을 마쳤는지, 그 하얗고 분홍빛을 띄는 예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새벽에 자주 산책을 나와 보았지만, 잠자던 모든 생명들이 눈을 뜨는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불과 1시간 안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생동하는 연꽃 덮인 호수의 풍경에 나는 정말 놀랐고 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하나 둘 풍경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침 호수의 풍경이 정말 멋지다고 감탄을 하며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풍경이 다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에 와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던 나는 내 자신도 이게 정말 똑 같은 장소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사진들이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더라. 내 카메라가 재주라도 부린 걸까? 아니면 이 연꽃 덮인 호수가 신비로운 걸까? 앞으로의 새벽 산책이 기대가 된다.  

 

 

<아빠가>

준우야 태풍이 지나간 뒤 아빠와 함께 한 새벽 산책길 아주 멋졌지. 아빠는 아직도 그날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음미하고 있단다. 아빠 경험으로 비온 후에 특히 태풍이 지난간 뒤 일출, 일몰은 아주 진한 감동을 선사하지. 산 사진을 하는 분들이 고생을 무릅쓰고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는(雨中入山) 이유도 궂은 날씨 뒤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장엄한 풍경을 담기 위해서지.

오늘 준우가 새벽 산책을 통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빛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구나. 사진이란 ‘빛이 내리 쬐는 어떤 풍경을 렌즈에 담는 행위’라는 말처럼 빛이 있고 렌즈를 통해 이 빛을 조절하고 카메라로 빛을 저장하는 것을 사진의 정의로 볼 수 있지. 따라서 사진은 빛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어. 빛이 없으면 사진도 태어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빛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빛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빛은 무엇이며 색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지.

오늘 준우가 해가 뜨기 전 사진을 찍었을 때 모든 장면들이 다 푸르딩딩하게 나와서 혹시 카메라가 잘못 되었나 걱정했지. 하지만 걱정할 것 하나 없어. 해가 지고 나면 모든 사물들은 자기의 색깔을 버리고 어둠속에서 하나의 색(검정)이 되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지. 새벽녘 이 어둠에 태양빛이 닿아 색이 탄생하는데 그때 처음으로 태어나는 색이 청색이야. 따라서 준우의 사진에 찍힌 푸르딩딩한 사물들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빛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해가 떠오르며 빛을 받아들인 사물들은 본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모습과 색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지.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태양빛을 원동력으로 날마다 새롭게 생명을 얻는 다고 볼 수 있어.

그런데 준우야 태양빛은 새벽에 청색으로 시작해서 점차 빛이 많아짐에 따라 빨강, 주황, 노랑과 같은 다양한 색조로 변하게 되고 한낮의 밝은 태양광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가시광선) 일곱가지 색깔의 빛이 동일한 양으로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간대의 풍경은 대개 하얀 빛을 띠고 있지. 다시 일몰시에는 금빛을 뛰며 그늘이 길어져 질감이 강조되고 따뜻한 느낌을 주며 해가 지고 나면 붉은 빛의 특이한 색이 나오게 되지. 아빠가 일산으로 이사를 온 이유 중에 하나가 시시각각 변하는 일몰의 아름다움 때문이야. 회사일로 바빠서 날마다 볼 수 없지만 휴일이나 집에 일찍 들어온 날 베란다에서 펼쳐지는 일몰의 황홀한 광경은 하루의 고단함을 잊게 하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길을 뒤돌아보게 하지.

 

우리가 빛을 이해하는데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빛은 변화무쌍하다는 거야. 태양은 하늘에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고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하기에 계절마다 다른 느낌을 만들어 주지. 봄빛은 눈이 부시게 화려해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여름은 광량이 많고 콘트라스트가 강해 강한 느낌을 가을은 차분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그리고 겨울은 빛의 양이 적어 투명한 느낌을 갖게 하지.

빛이 얼마나 빠른지는 준우도 학교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초속 30만km로 1초에 지구를 7반퀴 반을 도는 빛을 받아서 반사되어 나오는 형체를 보는 것이고 이런 빛을 받아서 반사되어 나오는 형체를 기록한 것이 사진이라는 생각하면 사진은 과학을 넘어 철학적인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어. 또 빛은 날씨에 따라 대기의 상태에 따라 우리 눈의 각도에 따라 사물을 다르게 보이게 하니 이 세상에 같은 사진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앞으로 준우가 사진의 영역에 조금 더 깊게 들어오게 되면 ‘노출’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될텐데 이는 기본적으로 카메라에서 받아들이는 빛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거야. 빛이 양이 부족하면 다시 말해 노출부족이면 대상이 어둡게 나오고 빛이 많으면(노출과다) 너무 밝아 대상이 제대로 색감을 내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지. 요즘 나오는 카메라에는 대부분 적정노출을 잡아주는 기능이 있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준우야 지금의 너는 새벽녘에 찍었던 사진처럼 푸릇푸릇한 모습일거야. 그래서 청(靑)소년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구나. 어둠속에 있던 사물들이 햇볕을 받아 자신의 색깔과 모양을 찾아가듯이 준우도 조금 있으면 미완성의 청소년기를 벗어나 늠름한 대학생이 되겠구나.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19금(禁)영화를 볼 수 있는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밝은 빛에 그대로 드러내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냉정한 현실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동이 트면서 펼쳐진 호수공원의 아침 모습보다도 더 멋진 모습으로 준우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리라 믿어. 그 앞과 뒤에는 항상 준우를 믿어주고 지지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준우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밝은 빛이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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