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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공쳤지만… 농담 건네는 ‘Mr. 남대문 콩글리시’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8. 29. 10:11

일상이 또 멈췄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텅 비었다. 거리는 한산하고 식당에도 시장에도 인적이 드물다. 생존의 위험 속에 사람들은 움츠러들었고 생계의 위협 속에 누군가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600년 전통의 서울 남대문시장도 활기를 잃고 깊은 적막감 속에 빠져들었다.

“하늘이 너무 무심해…….”

올해처럼 장사가 안된 것은 평생 처음이라며 리어카에서 과일주스를 팔고 있는 주재만(75) 씨가 한숨을 쉬고 있다. 무더위 속에 하루 종일 넉 잔밖에 못 팔았다며 신문지를 말아 남의 속도 모르고 날아드는 파리를 쫓고 있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본전이라도 해볼까 해서 나왔다는 주 씨는 야채 그릇과 핫바, 과일주스 등 업종을 바꿔가며 50년째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을 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시장 큰길에 머리만 동동 떠다닐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어쩌다 몸이 아파 하루 안 나오면 안부를 묻고 걱정해 주는 동료 상인들도 있었다. 이제는 안부는커녕 안 보이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 참 착해. 나오지 말란다고 이렇게 안 나올 수 있나…….”

마수걸이도 아직 못 했다며 옆 옷가게 아주머니가 한숨 쉬며 말한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주 씨 노점 앞으로 다가온다. “Where are you come from?” 주 씨의 입에서 갑자기 영어가 유창하게 튀어나온다. 외국인은 그냥 지나가고 주 씨는 아쉬운 듯 다시 신문지를 돌돌 말아 파리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영어를 잘하신다는 말에 못 배워서 그렇지 이 근처에서 길거리 생존영어인 ‘남대문 콩글리시’는 자신이 제일이라며 씩 웃는다.

잠깐이지만 농담 한마디로 멋진 카우보이모자를 쓴 주 씨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당당함을 지켜내는 유머는 힘이 세다. 착잡했던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무지갯빛 파라솔 위로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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