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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중에 떠올린 지리산의 별밤… “그동안 참 힘들었구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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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중에 떠올린 지리산의 별밤… “그동안 참 힘들었구나”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9. 5. 09:26

자가격리 8일째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방과 화장실 거실 일부가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다. ‘삼시세끼’ 받아먹으며 방구석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답답한 마음에 촛불을 켜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들으며 108배를 시작한다.

피아노의 장엄한 선율이 흐르고 절 횟수가 늘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물방울처럼 굵어진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다가 방석 위에 떨어진다. 1악장 알레그로가 폭풍이 몰아치듯 끝나가면서 100배를 넘어섰다. 방 안의 열기는 더해가고 숨결은 거칠어졌다. 2악장 아다지오가 시작되면서 촛불을 끄고 바로 앉는다. 속삭이는 듯한 2악장을 듣고 있으면 과거로 아득히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음표들 사이에 아름답게 흐르는 선율을 타고 내가 도착한 곳은 별들이 자수를 놓은 것처럼 총총하게 박혀 있는 지리산 둘레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없이 막막했던 시절, 발이 너덜거릴 때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또 걸었다. 밤이 찾아들고 너무 지쳐서 주저앉으려는 순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주변을 둘러보니 키다리 수숫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순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많았다. 가장이라 장남이라 투정도 못 하고 애만 태우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밤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가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2악장이 끝나고 3악장 론도로 넘어가면서 피아노 독주는 맹렬해지고 그것을 받은 관현악이 힘차게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40분간의 연주가 끝나고 사위(四圍)가 고요해졌다.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아닌 척했는데 많이 힘들고 불안했었나 보다. 베란다 창 너머로 별 하나가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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