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격포에서 본문

자료실/시와 사진의 만남

격포에서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6. 10:32

격포에서 /  이문재

더 나아갈 수 없는 어스름과
다시는 돌아가기 어려운 아침
문자 메세지를 보내려다 만다
채석장 앞에서 기우뚱 미끌어진다
얼마 전부터 낯설어진
생애의 단층이 한쪽으로 기운다
목에 걸려 있는 휴대폰을 들어
파도의 이마를 향해 던진다
늦가을 격포는 제대로 어두워져 있다
땅 끝 여기는 해발 제로
선(線)에서 점으로
내가 먼저 와 있다
천년 저쪽에서 달려온 별빛들이
다시 천년 저쪽으로 달려나간다
격포에서 격포로 망명한다
나의 근황은 이제 나만의 근황이다
내가 먼저 와 있는 것이다
                ('격포에서' 일부, 시집 '제국호텔'. 문학동네)

'자료실 > 시와 사진의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가 여자를 위로하네  (0) 2017.06.26
나무와 아이들  (0) 2017.06.26
에미  (0) 2017.06.26
난초 잎 닦으며  (0) 2017.06.26
선운사에서  (0) 2017.06.2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