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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DNA'를 깨워 고향 집 사랑채를 다시 세우다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흙집이야기

'집 짓는 DNA'를 깨워 고향 집 사랑채를 다시 세우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21. 11. 15. 15:00

그냥 헐고 새로 짓지

100년 가까이 된 고향집 사랑채를 그것도 10년 이상 방치된 사랑방을 직접 복원한다고 했을 때 마을 분들이 보인 한결같은 반응이다.

요즘 귀뚜라미(보일러) 좋은데 뭐 하러 고생해~”

구들장을 걷어내고 하루 종일 벽돌과 씨름하는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지나가던 이웃집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가에 생생하다.

그냥 좋아서요.”라며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구들을 드러내고 무너진 고래둑을 쌓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이른 봄부터 시작된 고향집 사랑채 복원작업이 찬바람이 불어서야 어느 정도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주말을 이용해 작업하다 보니 일은 더디었고 모든 공정 하나하나가 간단치 않았다. 8개월간의 여정이었다.

 

코로나19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블루를 앓았다. 성당과 경로당을 오가며 삶의 기쁨을 찾으시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답답함과 우울함을 호소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작년 이맘때 고향집 사랑마루에 앉아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 소풍 나온 소녀처럼 기뻐하신 어머니는 이 자리에서 신방을 차리고 누애를 키우던 사랑방과 얽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수많은 사연과 추억이 녹아있는 시골집 사랑채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싹트기 시작했고 손수 복원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했다. 낡고 오랜 된 것에 자꾸 마음이 갔다. 집수리와 관련된 자료를 찾고 유튜브를 보면서 의욕은 점점 불타올라 마침내 출사표를 던지고 일을 강행했다. 6년 전 흙집학교 동기들과 헛간을 허물고 황토방을 지으며 붙은 자신감도 한몫했다.

 

지난 3월초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고 일을 시작하였다. 방바닥을 걷어내자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사랑방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허물어져 있었다. 호기롭게 사랑채를 복원하겠다고 출사표까지 던졌는데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구들을 들어내니 고래(불과 연기가 지나는 통로)둑은 무너져 있었고 베니어합판으로 덮은 천장도 검게 그을리고 수십 년 먼지에 쌓인 채 곳곳이 무너져 있었다. 해체한 구들을 마당 한가득 쌓아 놓으니 하루해가 다갔다.

 

제일 큰 이맛돌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밤을 맞았다. 고향집에서 자란 어릴 적 추억들이 하나 둘 스쳐지나갔다. 흙집에서 태어나 흙과 함께 놀았기에 고향집 곳곳에 유년의 추억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한잔 걸치고 별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원주흙집학교 교장선생님의 말이 맴돌았다.

 

"인간도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는 DNA가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건축업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서 스스로 집을 짓는 즐거움과 능력을 잃어버렸죠."

당시 흙집학교 교장의 강의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직업을 가지셨던 조상님들의 DNA가 우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DNA의 잠재력을 0.1%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에게도 분명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고 6년 전 원형흙집을 학교 동기들과 지으면서 그 믿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고래둑을 세우고 구들장을 다시 놓는 일은 해체보다 어려웠다. 해체할 때 나온 수많은 작은 돌들을 별생각 없이 버렸는데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작은 돌들이 큰 구들을 받쳐야 구들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구들을 다시 놓으며 새삼 세상에는 하찮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간의 구들 공정을 마치고 한동안 일에 쫓겨 시골집을 찾지 못했다. 일을 벌려놓다 보니 마음은 늘 고향집에 가 있었다. 여름이 다 되어 일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벽체와 천장까지 긴 공정의 공사가 주말마다 이어졌다. 3M 마스크에 고글로 무장한 후 나무에 묵은 때를 벗겨내는 그라인딩 작업은 묘한 쾌감이 일었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먼지가 벗겨지면서 소나무 특유의 결과 광이 날 때면 오랜 전 고향집을 지으신 증조부의 마음이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라인딩 작업을 마치고 대들보와 서까래에 오일스텐을 바르고 벽과 천장에 핸디코트 작업을 했다. 유튜브 영상을 봤을 때는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작업요령이 하나둘 늘어갔다. 무엇보다도 주말을 마다않고 찾아와 도와준 벗들이 있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다.

 

사랑방 복원의 마지막 작업은 방바닥 한지장판도배다. 문창호와 도배까지 마치니 제법 그럴듯하게 사랑방으로 되었다. 얼떨결에 구들 해체부터 시작해 고래등 세우기, 구들 다시 놓기, 기둥과 서까래 그라인딩, 오일스탠 바르기, 핸드코트 작업, 전기 작업, 도색, 문풍지 작업, 바닥 초배지 도배등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기자양반이 노가다 다됐네."

동네 아주머니가 매주말 고향집에 와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더니 한 말씀 하신다. 그런데 그 노가다란 말이 싫지 않다. 노가다 체질인 것도 있지만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간데 없고 오로지 나에 집중할 수 있다. 노동을 통해 가장 나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집을 짓고 수리하는 일은 노동을 바탕으로 매순간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다. 조그만 못 하나부터 모든 자재를 선택하고 현장상황에 맞게 응용해야했다. 머릿속 생각이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화 되면서 자신감도 커져갔다. 두 손과 두 발은 물론 온몸이 구석구석 깨어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 에너지가 고스란히 집속에 담겨졌다. 일을 마치고 결과물을 바라보면 마치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짓기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일종의 수행같았다.

 

주말이 가까워 오면 또 몸이 근질거린다. 가장 나다움을 그리워하는 신호다. 혹여 몸이 근질거리는 동료들 있으면 지구보다 큰 생각, 화성’(화성시 슬로건)으로 오시라.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뜨끈한 구들에서 삼겹살과 화성막걸리로 우정을 나눠보자.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기쁨을 찾아보자. 혹시 아는가 UFO가 찾아와 그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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