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삶의 원형을 찾아서 (102)
빛으로 그린 세상
- 경기 용인 한터조랑말농장 덜컹덜컹 흔들리는 소달구지를 타고 가면서 까르르르 아이들이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소가 걸을 때마다 ‘똥꼬’가 보인다나요. 시골길에 핀 개나리도 활짝 웃는 눈부신 봄날, 소달구지 덜컹거리고 올챙이 꼬물거리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신록이 싱그러운 5월의 봄을 닮아갑니다. # 생동하는 봄을 닮은 아이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입니다. 민들레며 냉이 쑥 등 온갖 풀들이 길섶을 푸르게 뒤덮고 나무마다 새끼손톱만한 신록이 돋아 있습니다. 양지바른 비탈 밭에는 농부들이 무언가를 심느라 분주합니다. 그야말로 만물이 생동하는 봄입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나 달렸을까요. 공기 좋고 한적한 시골 동네에 자리 잡은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널찍한 우리에 염소, 산양, 강아지, 토끼들이 뛰놀고, 마구간에는 조..
- 충남 논산 이곳은 그야말로 봄이 한창입니다. 흰 꽃 사이로 벌들이 붕붕거리고 달콤새콤한 딸기향이 진동합니다. 잘 익은 딸기를 한입 베어 물면 봄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서로 먹여주면서 봄은 사랑이 되어 들어옵니다.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달려온 이곳에서, 우리 가족의 봄은 그렇게 딸기향으로 피어났습니다. # 기차는 봄빛으로 부풀고 “철커덩 철커덩” 소리를 내며 기차는 달립니다. 산과 들과 마을이 느릿느릿 스쳐 지나갑니다. 창밖은 아직 황량한 풍경이지만 금새 터질 듯 봄빛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부풀어 있는 건 기차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닐곱의 아줌마들이 의자를 맞대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 아빠와 나들이 나온 꼬마는 창에 착 달라붙어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복지사..
- 전북 전주 한옥마을 마른 나뭇가지위에 매화꽃이 붉게 피어납니다. 한 송이 한 송이씩 부채 위에서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고물고물 한지를 찢어 붙이는 손길마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피어납니다. 느긋하게 걷다가 곳곳에서 체험을 만나고, 구구절절한 판소리 한 대목에 취하고, 뜨끈한 구들장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이곳에는 전통의 멋과 아름다움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골목을 기웃거리다 지도 한 장을 들고 낯선 거리를 두리번거립니다.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이 즐비하고 나지막한 담장이 도란도란 이어집니다. 길은 다시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날렵한 처마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마다 문풍지를 발라놓은 곁문과 툇마루, 햇볕 잘 드는 안마당과 항아리 가득한 장독대 등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안 풍경이 정겹습니다. ..
- 경기도 양평군 보릿고개마을 땅도 개울도 하늘도 꽁꽁 얼어 있습니다. 텅 빈 들판에는 드문드문 눈이 쌓여있고 나지막한 돌담이 이어지는 한적한 마을 골목에는 찬바람만 불어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올망졸망한 아이들 털신이 한가득입니다. 그 곳에서는 도시의 아이들과 시골 할아버지가 만들어 내는 훈훈한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젊었을 적에 아이들이 종알거리는 소리와 떡 반죽 냄새가 마을회관 안을 가득 메웁니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커다란 쟁반을 앞에 두고 빙 둘러앉아 떡을 빚느라 열심입니다. “여러분, 개떡이 왜 개떡인 줄 알아요? 옛날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에는 먹을 게 없어서 보릿겨로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겨떡’ ‘겨떡’하다가 ‘개떡’이 된..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눈꽃마을 “우와! 눈이다!” “야호! 신난다!” 눈이 수북이 쌓인 작은 산골 동네에 아이들 환호가 울려 퍼집니다. 한 번 눈이 오면 온 산과 들이 한순간에 순백이 되는 곳, 일 년의 반이 겨울이고 겨울 내내 눈이 내리는 곳, 그리고 쌓인 눈의 무게만큼이나 적막이 내려앉던 작은 산골 마을에 온종일 동심의 재잘거림이 설원 가득 퍼져갑니다. 요즘처럼 눈이 천덕꾸러기인 적이 또 있을까요. 흔하게 내리기도 하지만 내렸다하면 뉴스에서는 교통대란이니 사고니 떠들어대고, 사람들은 눈을 치우느라 북새통을 치르지요. 하지만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늘 있는 일이라 뉴스조차 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 마을이 눈에 푹 파묻힌 채 겨울을 나는 강원도 대관령 일대의 마을입니다. 그곳에 눈을 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남단 갯벌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구상, #강화의 갯벌을 만나다 하늘이 새파랗게 얼어 있다. 모처럼 맑은 휴일, 아이들 점심을 차려놓고 집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아줌마에서 길 위를 걷는 여행자가 된다. 매일 보는 동네도 여행자의 눈에는 그윽한 풍경이 된다. 강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강화도의 노을이 보고 싶었다. 강화터미널은 세월이 멈추어 선 듯한 느낌이다. 버스는 크고 신식이지만 버스 운행 간격이 보통 한두 시간이다. 노인들이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풍경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해안도로를 순환하..
- 충남 보은군 속리산에서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 - 나희덕의 중에서 지도도 없이 길을 나섰다. 법주사를 지나고 저수지를 지나는 내내 속리산의 가을빛은 푸근하고 따사로웠다. 탐방안내판을 보면서 문장대로 가는 길 대신 사람들 발길이 덜한 천황봉 길로 코스를 잡았다. 세심정을 지나 오른쪽 길로 오르는데 다리 건너편에서 단풍이 눈부신 돌계단길을 스님 한분이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물든 나뭇잎 몇 장이 빈 지게를 타고 있었다. 그 풍경에 이끌려 발길을 옮겼다. “스님, 이 길로 가도 천황봉이 나오나요?”, “네,..
경북 영주시 안남마을에서 나무들이 붉은 등불을 주렁주렁 달고 서있습니다. 일제히 불을 밝히고 즐비하게 늘어선 사과나무들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같아 황홀합니다. 유난했던 날씨로 많이 힘들었지만, 나무들은 한바탕 가을 축제를 벌입니다. 가을 들녘을 걸어갑니다. 벼이삭들이 누렇게 영글어가는 논배미를 지나갈 때면 구수한 벼 냄새가 풍겨옵니다. 사과나무 밭에는 나무들이 탐스런 열매를 달고 서있습니다. 그 곁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사과 익어가는 소리가 사그락 사그락 들릴 것만 같습니다. 자연의 풍요로움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때면 가을 들판으로 달려가곤 하지요. 하지만 지난여름의 유난했던 날씨 때문일까요. 태풍과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낸 아픔이 저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
- 경기 가평군 코스모피아 천문대에서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밤하늘의 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소년은 평생 별을 사랑하는 별지기가 되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세상에는 적막과 고요만이 가득하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만이 살아 숨을 쉰다. 싱싱하게 펄떡펄떡 거리는 별들, 저마다의 밝기와 저마다의 빛깔로 제각각 반짝이는 별들,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들이 떨어지는 그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온통 드넓은 하늘에 수많은 별뿐이다. 이토록 많은 별이 있었던가, 우주는 얼마나 드넓은 것인가, 이 우주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따금씩 떨어지는 별똥별까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 제주 한림읍 비양도에서 손에 잡힐 듯 그림처럼 떠 있는 섬, 남루한 일상이나 고단한 세상일은 모른다는 듯, 무심히 떠 있는 섬, 바다에 가로막혀 꿈결처럼 아련한 그 섬에 가고 싶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배는 바다로 나아간다. 짭짤한 바람이 온몸에 휘감긴다.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가는 배를 탔다. 고기잡이배만큼이나 작은 배이지만 휴가철이라 사람들은 제법 많은 편이었다. 제주에 살면서 비양도로 피서를 간다는 가족들도 많았다. 처음 가보는 비양도는 제주 사람들에게도 미지의 세계이고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 속의 섬이리라. 봉긋한 오름을 품은 섬이 조금씩 다가온다. 오름 위에 흰 등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늘 손짓하던 신비의 섬, 사람들이 마음으로 그리던 미지의 세계는 불과 15분 만에 모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