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삶의 원형을 찾아서 (102)
빛으로 그린 세상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 남녘의 봄은 꽃들의 이어달리기로 시작된다. 섬에서 출발한 동백꽃이 바다를 건너 뭍의 동백에게 바톤을 넘기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음주자들이 계속 이어서 달린다. 봄바람을 따라 순조롭게 북으로 이어지던 꽃행진이 지리산 자락에 막혀 섬진강 주변을 맴돌면 강자락의 광양,하동,일대가 마법에 걸린듯 일제히 겨울 옷을 벗고 현란한 색조의 매화와 앵두꽃이 강변마을을 화사하게 수놓는다. 남도의 땅으로 봄 마중 가던 날, 하늘이 꾸무럭 거리며 잔뜩 흐려있다. 겨우내 마른 대지에 한바탕 빗줄기가 쏟아지자 매화가 분분히 흩날리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산수유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린다. 비로소 겨울의 남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다. 산수유의 기지개에 모든 나무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충남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소 밭갈이와 소달구지가 무형 문화재 만큼이나 보기 드물어진 요즘, 아직도 소달구지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어촌 마을이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웅도. 이곳에서는 썰물이 되면 먼 갯벌에서 조개 등을 캐어 소달구지에 가득 싣고 온다. 세계가 하루 생활권으로 접어든 21세기에, 기계 대신 느릿느릿한 소달구지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소달구지 어촌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고 정겹다. 웅도는 충남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의 바다인 가로림만 동쪽에 들어 앉아있다. 웅도는 하루에 두 번씩 6시간마다 육지가 됐다가 다시 섬이 되는 곳이다. 갯벌위로 놓여있는 폭 3m, 길이 2백50m의 시멘트길이 썰물 때마다 웅도를 육지로 이어준다.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는 경기도 화성의 제부도..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 한반도 남쪽 끝자락은 벌써 봄이 한창이다. 양지바른 논두렁에서 아낙들이 아기 손만큼 올라온 냉이를 캐고 있다. 봄볕이 고루 퍼진 들녘에는 시금치와 마늘 등 풋것들이 이미 움을 틔우고 있다. 질긴 겨울의 꼬리를 자르고 봄이 한껏 기지개를 피는 남녘의 해안 구석구석은 그야말로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하는 남해대교를 지나 남쪽으로 갈수록 봄빛은 더욱 파래진다. 풋내가 가득한 봄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섬 끝 벼랑 구빗길, 그아래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그림 같은 다도해를 품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아래를 굽어보면 벼랑에 마을이 하나 걸려 있다. 남해군 남면 가천 마을이다. 바닷가 산비탈에 붙은 동네가 마치 절벽에 붙은 제비집 같다. 파도가 바로 들이칠 것 ..
- 경기 양평 수미마을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요 며칠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더니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거리에 나무들도 때늦은 단풍을 남김없이 떠나보내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데……. 성큼 찾아온 추위에 마음만 분주해집니다. 이른 아침, 양평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가로수 빈 나뭇가지 사이로 쨍한 하늘이 비치고 황량한 겨울 들판이 펼쳐집니다. 조금은 쓸쓸한 풍경이지만 마을은 막바지 가을걷이와 겨울맞이로 분주합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노부부가 마른 콩 줄기를 늘어놓고 콩 타작을 하고 밭에서는 배추를 뽑느라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겨울준비를 위한 김장 체험이 한창인 양평의 수미마을입니다. #추억까지 버무린 김장 김치 마을 체험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가족들과 함께 배추밭으로 향..
- 강원 춘천 남이섬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자전거를 타는 가족의 얼굴이 은행잎처럼 화사합니다. 버려진 나무토막과 유리병이 뚝닥뚝닥 예술 작품이 되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토끼와 청설모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 땅에 떨어진 낙엽조차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신하는 이곳에서 가족이 함께 나누는 추억은 그대로 동화가 되고 가을 노래가 됩니다. #가을 풍경 속으로 계절이 언제 이렇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딜 둘러보아도 곱게 물든 단풍이 햇살에 눈부십니다. 허둥거리며 하루하루를 살다가 문득 바라본 창밖에는 거리에도 들판에도 가을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휴일 아침, 모처럼 막내아이를 데리고 남이섬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운데다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요. 주차장부터 인파가 넘치지만 줄지..
- 경기 하남 밤줍기 체험 환하게 웃는 식구들마다 묵직한 밤자루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산속에서 보물을 찾듯 알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특별한 덤입니다. 저절로 벌어져서 저절로 떨어지는 알밤을 주우며 가을의 의미도 되새겨 봅니다. 지금 이곳에는 가족과 함께 나누는 풍성한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 갑니다. #“밤봤다!” 고개를 잔뜩 숙이고 무언가를 찾느라 열심입니다. 낙엽을 헤치고 풀잎 사이를 뒤지다가 문득 땅에 떨어져 있는 싱싱한 알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밤봤다!” 자기도 모르게 환호가 터집니다. 윤기 나는 고동색 알밤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밤을 주워 자루에 담으면 또 다른 밤이 눈에 띱니다. 나무 아래에도 낙엽 속에도 벌어진 밤송이 안에도 알밤이 반짝거립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 충남 대전시 장동 계족산 황톳길 황토흙이 묻은 맨발을 번쩍 들고 네 식구가 활짝 웃습니다. 신발에서 벗어난 발바닥들도 함께 웃는 것만 같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마음도 편하고 자유롭다는 부부는 아이들 손을 꼭 잡고 맨발로 걸어갑니다. 그들이 발바닥으로 꾹꾹 누른 발자국마다 가족의 행복이 솔솔 묻어납니다. #맨발이 더 자연스러운 곳 조심스레 발을 내딛습니다. 신발에 갇혀 잠자고 있던 감각이 일제히 깨어나는 듯 온 신경이 발아래로 쏠립니다. 서늘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생생합니다. 적당히 다져진 황토와 낙엽이 발바닥에 닿는 느낌은 그야말로 낯설고 신기합니다. 맨발로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요. 등산길에 부드러운 흙길을 잠깐 걷고 싶어도 용기가 필요하고, 고작해야 주변 공원에서 맨발지압로를 걷는 정도..
- 경기 양평 조현리 모꼬지마을 햇살이 따가울수록 물속의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납니다. 맨손으로 송어를 잡고,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뗏목에 올라탔습니다. 뗏목이 흔들거릴 때마다 아이들 마음도 흔들흔들 즐겁습니다. 원 없이 실컷 노는 아이들, 그들에게 여름은 소중한 선물입니다. # “와, 감자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습니다. 무성한 나무 위에도 푸른 들판에도 한여름의 땡볕이 내리쪼입니다. 그 볕을 받으며 논에는 벼가 자라고 밭에는 옥수수며 고추가 영글어갑니다. 오늘도 무지 더울 것 같습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닙니다. 저건 강아지, 저건 공룡..., 구름이 이리저리 모양을 바꿉니다.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도 느릿느릿 하늘을 떠다니는 것만 ..
- 경기 화성 백미리 갯벌체험 # 갯벌마차를 타고 이른 아침, 물이 빠진 바다에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희뿌연 하늘과 맞닿은 회색빛 갯벌이 길게 지평선을 이룹니다. 하늘 위에는 갈매기들이 날아가고 사방에는 싱싱한 갯내음이 자욱합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왔을까요. 전국적으로 이름난 체험마을인데도 마을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 옆에는 싱그러운 벼가 자라고 마을 담벼락마다 그려진 바다 그림이 정겹습니다. 그리고 낮은 언덕을 돌아가자 숨어 있던 바다가 단번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푸릇푸릇한 논이 있고, 산과 들이 있고, 너른 갯벌을 품은 바다가 있는 백미리 마을입니다. 마을 체험장 입구에는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로 활기가 넘칩니다.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
- 경기 양평 유명산 숲학교 풀이름, 나무 이름 하나 제대로 외운 게 없습니다. 생강나무의 매콤한 맛과 물씬한 흙냄새와 새로 나는 전나무 잎의 보들보들한 감촉만이 생생할 뿐……. 나뭇잎을 훑으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오는 숲의 품에서 그저 편안하고 즐거웠던 기억만 가득 남아 있을 뿐이지요. #숲으로 들어가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야말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봄의 신록이 연두색이라면 6월의 신록은 어떤 색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드러우면서도 풋풋하고 선명하면서도 싱그러운 초록빛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푸름 속에서 청량한 물소리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계곡 가에서 아이들이 제법 익숙한 솜씨로 물수제비를 뜨기도 하고 물속의 바위를 들추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도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