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후원 오전의 햇살이 뜨겁다. 여름이 부쩍 빨라진 탓인지,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도심의 빌딩과 아스팔트가 이글거린다. 인위적인 냉방이 아니고는 이 더위를 어찌할 수 없는 도심의 한가운데. 그런 이곳에 울창한 녹음이 하늘을 가리고 상쾌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곳이 있다면 믿어질까. 게다가 고궁의 고풍스러운 멋과 자연을 벗 삼아 즐기던 선조들의 여유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자유 관람이 허용되는 목요일, 창덕궁을 찾았다.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에 들어서자 번잡한 도심에서 불과 몇 걸음 만에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하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수령 600년 이상의 회화나무가 그렇고, 고궁이 주는 고아함과 한적함이 그러하다. 이곳에서 생활..
- 서울 용산가족공원 신록이 눈부신 5월의 공원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초봄의 여린 새순이 갓난아기를 닮았다면 싱그러운 5월의 신록은 공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꼭 닮았다. 아직 어리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그들은 모두 싱싱하고 활기차다. 가족과 함께 또는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푸른 잔디밭에서 맘껏 뛰노는 모습은 연초록 신록과 오리가 노니는 연못과 함께 용산가족공원의 또 다른 풍경이다. 마침 소풍 철이라 평일에 찾아간 용산가족공원은 유치원 어린이들 차지였다. 연못 난간에 둘러서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 30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대형벤치 위에서 단체 사진을 찍느라 제각각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삼삼오오 짝지어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처럼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 서울 중구 남산 성큼 봄이 다가왔건만, 도시는 아직 회색 겨울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숲은 스산하기조차 하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화사한 옷차림에서 봄을 느낄 뿐, 줄지어선 빌딩도 늘어선 자동차도 계절을 잊은 듯 무표정한 모습이다. 장충동 국립극장 쪽으로 접어들자, 순식간에 숲이 펼쳐진다. 답답하고 혼탁했던 공기도 한결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남산으로 오르는 한적한 길가에는 뜩 물이 오른 개나리 가지마다 꽃봉오리들이 부풀어 오르고, 참나무 숲 아래 쌓인 낙엽 사이로 풀들이 푸릇푸릇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하는 노부부나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에게서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자연은 그런 것일까. 삭막한 도시에서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남쪽 산자락은 온통 소나무 숲이다.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