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불안 (3)
빛으로 그린 세상
자가격리 8일째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방과 화장실 거실 일부가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다. ‘삼시세끼’ 받아먹으며 방구석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답답한 마음에 촛불을 켜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들으며 108배를 시작한다. 피아노의 장엄한 선율이 흐르고 절 횟수가 늘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물방울처럼 굵어진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다가 방석 위에 떨어진다. 1악장 알레그로가 폭풍이 몰아치듯 끝나가면서 100배를 넘어섰다. 방 안의 열기는 더해가고 숨결은 거칠어졌다. 2악장 아다지오가 시작되면서 촛불을 끄고 바로 앉는다. 속삭이는 듯한 2악장을 듣고 있으면 과거로 아득히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음표들 사이에 아름답게 흐르는 선율..
“조심하세요. 어두우니 선글라스를 벗으세요.” 기차가 멈춘 폐철로를 따라 팔당호를 감싸고 돌아가는 한강나루길에 터널을 만났다. 스피커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에 여유롭던 걸음이 머뭇거려진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서로를 껴안고 봄볕을 즐기던 산과 강이 일순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희미한 점멸등이 그 자리를 대신해 깜박이고 있다.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 공기마저 차고 무겁다. 곡선으로 이어진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아 더 길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는 다가오는 모든 것이 위협적이다. 언제 나타났는지 헬멧으로 무장한 한 무리의 자전거 행렬이 어둠을 가르며 순식간에 사라진다. 온몸이 긴장되고 마음마저 움츠러든다. 하루하루를 불안과 초조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
한 아이가 태어나 세상과 만나는 날, 이날은 한 생명이 온 우주와 만나는 날입니다. 엄마의 손을 처음 잡아 본 아이의 손. 너무 꽉 쥐어 핏기마저 없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불안했을까요.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게게 오로지 믿을 건 엄마밖에 없었겠지요. 엄마의 검지 손가락과 아이의 손바닥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핏줄처럼 서로 흐르고 있을 겁니다. 우리도 이렇게 엄마손을 꽉 쥐어 본 적이 있었겠지요. 어제도 그제도 그냥 의미없이 살아가는 나날속에 우리는 지금 무얼 잡고 살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