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콘크리트도 자연을 닮아가는 선유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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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도 자연을 닮아가는 선유도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4. 08:03

- 서울시 선유도 공원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부수다 만 콘크리트 담벼락을 울창하게 덮은 담쟁이 잎도 하나 둘씩 붉게 물들어가고, 옛 구조물의 흔적위에 만들어진 정원에도 구절초와 벌개미취 등 가을꽃이 화사하다. 정수장 건물의 흔적들, 남아있는 기둥과 벽이 이곳에 자라나는 풀과 나무와 함께 풍경을 만들어내는 이곳 선유도 공원에는 지금 가을 향기가 은은하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 이름조차 예쁜 선유도공원을 찾아갔다. 한강변의 무성한 수풀 사이로 코스모스가 한가로이 하늘거린다. 북쪽 강변과 남쪽 강변으로는 콘크리트 빌딩숲이 어지럽지만 선유교 건너 보이는 푸른 섬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이르니 나무 발판 한 가운데에 미루나무 서너 그루가 불쑥 올라와 있다. 전망대가 2~3층 높이인데 나무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배려한 마음이 엿보인다.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미루나무이지만, 그 덕분에 조각구름이 걸려있을 미루나무 꼭대기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푸른 잔디밭과 아기자기한 연못, 나무와 숲과 어우러지는 화사한 벤치를 상상했던 내게 선유도 공원이 보여주는 풍경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낡아가는 건물의 잔해가 마치 폐허를 연상시켰지만, 허물다 만 콘크리트 벽은 울타리가 되고 수로는 산책로가 되고 침전지는 사각의 정원이 되었다. 녹슨 기계는 야외 전시물로 놀이기구로 다시 태어났다. 빼곡하게 심어진 풀과 나무들이 이 정원의 주인공이라면 건물의 잔해들은 다소곳한 배경이 되어 주인공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선유도는 한강 일대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했다고 한다. 제방을 쌓고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암석을 채취하느라 선유봉은 사라지고, 1970년대에는 한강정수장이 설치되어 수돗물을 공급했었다. 그런 선유도가 정수장이 이전되면서 2002년 선유도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낡은 건축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게 아니라 과거의 정수장 시설을 일부 남겨둔 채  ‘정수장’의 기억을 간직한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시간의 정원’ 안내판에는 옛 정수장 시절의 사진과 지금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곳은 여러 주제 정원 중에서도 정수장의 구조물을 가장 온전하게 보전하여 재활용한 곳이기도 하다. 수로에는 아직 물이 흐르지만 일부는 산책로가 되어 한강과 공원을 내려볼 수 있으며, 지하 침전지는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진 사각의 정원이 되었다. 정원 사이를 산책을 하는 연인들의 뒷모습이 다정하다. 낡은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고, 칙칙한 색깔과 바랜 느낌의 시멘트 벽 위로 무성한 담쟁이 넝쿨이 더욱 싱그럽다.

 

선유도 공원의 또 다른 특징은 물을 주제로 한다는 것이다. 한강의 섬이며, 한때 한강 정수장이기도 했던 선유도 공원에서는 물에 기대어 살아가는 다양한 식물을 주제로 한 정원이 물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3개의 물탱크에서 나온 물은 온실과 수질 정화원을 흘러서 잠시 환경물놀이터에 머무른 다음, 갈대가 자라는 수로를 지나 수생식물원과 시간의 정원으로 흐른다. 시간의 정원에서 수로와 벽천을 타고 흐른 물은 다시 물탱크로 돌아가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공원에 하나, 둘이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30 그루의 담쟁이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한강역사관 앞 정원에도 은은한 조명이 들어온다. ‘녹색기둥의 정원’이다. 정수장 건물의 상판을 들어내고 남은 기둥 30개에 담쟁이덩굴이 가득 뒤덮여 있다. 부수다 만 기둥을 감싸 안으며 자라나는 담쟁이는 봄이면 새싹으로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그리고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으로 기둥에 옷을 입힐 터이다. 그렇게 자연은 인공과 화해하며 콘크리트조차 자연의 일부로 숨쉬게 한다.

 

아기자기한 미루나무 숲길도 자작나무 숲도 좋았지만, 공원을 나서면서도 낡은 정수장 건물의 잔해와 풀과 나무가 어우러지던 풍경이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무슨 대단한 역사도 아니고 산업시대의 끄트머리에 버려진 정수장이라는 선유도의 과거를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끌어안는 다는 것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건 만은, 과거는 포클레인으로 갈아엎고 때로는 미화시키면서 오로지 희망찬 내일만을 바라보고 사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낮에는 어수선하게 느껴졌던 강변의 빌딩들도 밤이 되자 여러 개의 불빛이 되어 아름답게 반짝인다.

 

찾아가는 길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인 선유도 공원은 양화대교 중간에 있다. 지하철 2호선 당산역 1번 출구로 나와 10분정도 걷거나,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8번 출구로 나와 5714번 버스를 타고 선유도 공원 정문에서 내리면 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hangang.seoul.go.kr을 방문하거나, 공원관리소(02-3780-0590~2)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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