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가슴 속에 심어진 푸른씨앗 본문

자료실/그린웨이

가슴 속에 심어진 푸른씨앗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4. 07:58

- ‘2007 숲체험 여름학교를 다녀와서

 

여름 숲은 초록빛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있는 금강송에도, 바람에 몸을 흔드는 키 큰 풀들에도 한여름의 무성한 기운이 느껴진다.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를수록 이글거리던 태양도 초록에 가려 빛을 잃고, 초록은 더욱더 깊어만 간다. 계곡 물소리와 매미소리만 들리던 한적한 숲속, 그런데 난데없는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게 울려 퍼진다.  ‘숲체험여름학교’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오대산 자락의 숲속수련장이다.

“와! 신기하다. 선생님 나뭇가지에서 생강맛이 나요”
숲속교실에서는 산림과학원 조재형 박사의 ‘숲과 나무’ 수업이 한창이다. 학생들이 채집된 여러 가지 나뭇잎과 나뭇가지 등을 만지고 냄새를 맡고 또 맛을 보고 있다.
“숲을 알려면 나무와 친해져야 해요. 만져보고 느끼면서 나무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요.”
조박사의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학생들의 눈망울이 반짝인다.
“우엑, 아이구 써라.”
소태나무를 씹은 한 학생은 인상을 찌푸리며 울상이다. 그 모습을 보며 모두들 한바탕 웃음보따리를 터뜨린다. 푸른 숲만큼이나 싱그러운 웃음이 가득 번져 나간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는 오대산에서 시작된 남대천이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고 소나무 숲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곳이다. ‘어성전(漁城田)’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물이 깊고 맑아서 고기가 많고, 산자락이 성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초록뿐이다. 그야말로 최적의 자연 속 교실인 이곳에서는 물과 대기, 토양, 나무, 생태 등을 주제로 숲과 친해지고 숲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체험교육이 이루어진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신나는 운동회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만 해도 자기소개를 하며 서로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단체줄넘기를 하고 공을 굴리면서 어느새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가는 듯 했다.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뛰면서 한바탕 땀을 흘린 뒤, 시원한 계곡물에서 첨벙거리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순수한 동심이 그대로 엿보인다. 저녁 장기자랑 시간에는 자기 안에 숨어있던 젊음과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모두 친구가 되어간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숨막혀하던 그들이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없이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눅눅한 텐트안에서 함께 자면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밤마다 벌레가 달려드는 화장실에서 함께 소리지르면서 그들은 그렇게 숲 속에서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이른 아침,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학생들이 숲 속을 산책하고 있다. 천천히 걸으며 제법 숲속의 기운을 느끼는 눈치이다. 버섯이 보이고 나무에 낀 이끼가 보이고 나뭇잎 사이에 숨은 벌레가 보인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발견이다. 숲은 지루하고, 캠핑은 불편하고, 모든 벌레는 그저 싫고 무섭기만 했던 여학생들이 이제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잠에서 깬다. 나무에 귀를 대고 마음으로 숲을 느끼고 나뭇잎 뒤에 숨어있는 벌레를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그들은 온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1988년에 시작해서 20년째 변함없이 이어져온 그린캠프를 지켜보면서 나는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자꾸 떠오른다. 노인이 심은 작은 도토리가 거대한 숲을 이루듯 그린캠프를 통해 학생들의 가슴에 하나씩 심어진 작은 씨앗들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그들이 어디에 있던 숲을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 마음들이 숲을 이루어 사회를 움직일 것이라는 그런 생각에서이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장은 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도토리를 심던 노인의 마음으로 이어져온 그린캠프는 지난해까지 총28회의 캠프를 통해 2976개의 씨앗을 심은 셈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린캠프 운영진과 교수진 그리고 자원봉사 대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숲은 더 큰 학교입니다.’
아름드리 금강송에 붙어있는 현수막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린다. 이제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살아가면서 문득 오대산의 맑은 공기와 어성전의 숲과 계곡을 떠올리고, 함께 했던 친구와 선생님들을 그리워하면서, 주변의 작은 풀들과 곤충들도 애정으로 바라보면서, 학생들의 가슴 속에 심어진 씨앗은 싹이 트고 푸르게 푸르게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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