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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 위에 피어난 희망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2. 16:11

-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



울창한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걷는다. 맑은 아침 햇살이 내리비치는 길가에는 하얀 개망초 꽃이 소복하게 피어있고, 철 지난 유채꽃 위로 흰나비가 팔랑거린다. 조깅을 하며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서 활기찬 아침 기운이 느껴진다. 상쾌한 오솔길 풍경. 하지만 쉼 없이 들려오는 차 소리는 이 곳이 서울 도심의 한복판임을 실감케 한다.



하늘공원과 강변북로 사이의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1Km 남짓 되는 거리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드물지요. 허리가 아파서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이 곳에 와서 뜁니다.”
김명동(47)씨는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푹신한 흙의 감촉이 특히 좋다고 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선 한결같이 여유가 묻어나온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자연 공간이 있다는 것도 드물지만 발아래 쓰레기더미가 묻혀있다는 사실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을 향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이름도 아름다운 꽃섬 난지도의 거대한 쓰레기산을 떠올린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뱉어내는 온갖 쓰레기들을 꾸역꾸역 받아내었던 난지도. 급격하게 휘몰아치던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과 더불어 개발과 풍요의 배설물들을 수용했던 난지도의 오염은 우리의 부끄러운 뒷모습이기도 했다. 1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난지도는 높이 100여 미터 가까이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 산 두 개로 변했고, 악취를 내며 썩어가던 쓰레기 더미 위에 이제 흙이 덮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풀이 자라고 나비가 팔랑거린다.



공원에 오르자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하늘공원은 이색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다. 어른 키 높이만큼 자란 푸른 억새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억새 사이로 쌍쌍의 다정한 연인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난지도 제2매립지에 들어 선 하늘공원은 난지도 중에서 가장 척박한 땅이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위에 차단막을 깔고 흙을 덮었기 때문에 물이 고이지 않고 빠져나가 늘 건조하다.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억새와 띠가 하늘공원에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억새밭을 지나자 온 들판에 하얀 개망초 꽃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수도 없이 피어있다. 아무 곳에서나 피어올라 방긋 웃는 개망초를 보면 나는 어릴 적 그렇게 먹고 싶던 계란후라이 생각이 난다. 바람을 허리에 감고 흔들리는 개망초를 보며 왠지 모를 그리움에 한동안 가슴이 울렁거렸다. 엉겅퀴, 제비꽃, 씀바귀와 같은 자생종과 더불어 번식력이 강한 토끼풀, 개망초같은 귀화식물도 많은 것도 하늘 공원이 쓰레기 매립지 안정화공사의 결과로 형성된 인공적인 땅이기 때문이리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데 인기척에 놀란 꿩 두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른다. 꽃에는 벌과 나비가 잉잉거리고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었다. 키 작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곤충과 거미들도 보금자리를 만든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다람쥐, 오리도 많고 족제비도 종종 눈에 띈다고 한다. 더럽혀지고 버림받은 땅 위에서 서서히 살아나는 생명의 몸짓, 그것은 무참하게 짓밟힌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였다.



아직 하늘 공원은 98미터의 거대한 쓰레기더미를 치유할 수 없는 상처처럼 끌어안고 있다. 그 속에선 검은 물이 흥건하고 메탄가스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1미터만 땅을 파내려가도 쓰레기 무덤이 나오는 하늘공원은 어찌 보면 과욕과 허영의 부끄러운 산물들을 푸름으로 애써 감추고 싶은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건 아니었을까. 공원 곳곳에 있는 가스포집공을 통해 메탄가스를 처리해내고 쓰레기 썩는 물을 끊임없이 정화시켜야하는 하늘공원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하는 중상 환자인 것이다.



공원을 내려오면서 수풀 속에서 토끼풀을 먹던 토끼 한 마리를 만났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풀어놓은 집토끼들이라고 한다. 푸른 초원에서 깡총거리는 토끼들이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들개나 족제비들을 피해 잘 적응해서 살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쓰레기더미 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나 그 곳에 사람들이 풀어놓은 토끼를 보며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것은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고 버림 받았던 땅 난지도에게 사람들이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인 것일까.



하늘공원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까닭이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쓰레기 산에서 피어난 꽃,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화해이고 푸른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난초와 지초의 향기가 가득했던 꽃섬 난지도로 다시 태어날 그 날을 기약하며, 악취와 쓰레기만이 남아있던 죽음의 땅에 지금 짙푸른 여름이 한창이다.



찾아가는 길
하늘과 맞닿은 초원 하늘공원에 가려면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온다. 곧바로 가다가 큰 도로가 나오면 오른쪽이 하늘공원이다. 공원 정상은 튼튼한 두 다리로 하늘계단을 오르거나 천연가스로 달리는 버스로만 갈 수 있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면 월드컵공원관리사업소(02-300-5500~5502)로 문의하거나 홈페이지 worldcuppark.seoul.go.kr을 방문하면 된다.  
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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