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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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내 가슴에 별이 뜨고

빛으로 그린 세상 2017.07.08 19:30

자연에 순결한 영혼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드넓은 갯벌에 자줏빛으로 물들은 칠면초 군락,
미스터리 서클 같은 동글동글한 모양의 갈대밭,
그리고 이따금씩 하늘을 날아오르는 철새들까지....
순천만의 노을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해가 산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햇살은 더욱 황홀해지고 물길은 붉게 빛난다. 매서운 찬바람이 온 몸을 휘감지만,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호로 물들어 간다. 자연에 순결한 영혼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순천만의 노을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천만의 바다와 갯벌을 보며, 내 자신이 자꾸만 초라해지는 건 왜일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내 마음이 척박한가 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바라보는 일몰은 남다르기 마련이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올 새해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엄동설한의 추위보다도 마음이 더 춥다. 팍팍해진 세상살이에 황폐한 마음은 순순한 감동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다시 떠오를 해에 거는 희망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밤이 지속될 것 같은 두려움을 더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가 지고 난 뒤 사람들은 하나, 둘 돌아가고 몇몇 사람들만 남았다. 하늘은 사방이 다 붉어지면서 점점 어스름해진다. 어둑어둑해지는 갯벌에는 길게 이어지는 갯고랑만이 검붉게 반짝인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조명이 꺼진 무대에 어둠과 고독만이 찾아오듯 순천만의 풍경은 외롭고 고요해진다. 딱히 어떤 색깔로 지칭할 수 없는 그윽하면서도 형형색색의 하늘빛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내려오는 길에도 자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해 이루어진다던가. 정호승 시인은 그래서 ‘꽃과 노을이 꽃과 노을의 색깔을 내기 위해서는 빛이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라고 했다. 황홀한 노을빛을 보여주고 서서히 어두워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빛의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다시 갈대밭을 가로질러 대대포구로 향한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칼바람이 살을 에고, 갈대들이 ‘우우우’ 울음소리를 낸다. 어둠 속에서 거대하게 누워있는 갯벌도 낮은 바람소리를 낸다. 낮 동안 수많은 모습을 풍경을 보여주었던 순천만에서는 빛이 고통을 삼키고 갈대도 바람에 흔들리며 저마다 울음소리를 낸다. 무수한 생명들을 품어주는 갯벌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순천만은 오랜 세월 고통을 삭여왔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현실을 피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어 낼 때 그 고통의 무게만큼 내 삶도 아름다운 색깔을 지닐 수 있는 걸까. 요즘 들어 나는 진정 절실하게 살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살이가 엄동설한의 추위보다도 더 시리게 몸속 깊이 파고드는 이때에도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며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세상 탓, 남 탓을 하며 늘 피해자인척 하지 않았던가. 못 이룬 꿈을 좇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하늘의 별만 바라보던 나날들은 또 얼마던가…….

어둠이 내려앉은 순천만의 밤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인다. 갯벌의 물웅덩이에도 똑같은 별이 살아 떠있다. 어쩌면 꿈은 물웅덩이의 별 같은 거라고, 질척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고통을 견뎌낼 때 푸르게 반짝이는 거라고, 그 별이 내게 말을 건다. 날은 더 추워졌지만 왠지 마음이 뜨거워진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나고 날이 추워질수록 옆 사람의 체온이 따스해지기 마련이다. 갈대숲 너머로 마을의 불빛이 따스하다. 사람들의 불빛이 별빛만큼이나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서로 부대끼고 체온을 나눌 세상이 그리워진다. 별은 하늘에만 뜨는 것이 아니었다.


글. 최경애(수필가)  사진. 김선규(생명다큐 사진작가)

 

찾아가는 길
드넓은 갯벌에 갈대밭과 철새가 어우러지는 순천만으로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서순천IC에서 내린다. 국도 2호선을 타고 순천시내와 청암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순천만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순천만생태공원 061-749-3006 홈페이지 www.suncheonba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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