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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현장에서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피사체를 요리하며 셔터를 눌러왔건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뉴칼레도니아에서 나는 첫 순간부터 당혹스러웠다. 누군가 말했다. 죽기 전에 딱 한번의 여행이 허락된다면 남태평양의 천국, 뉴칼레도니아를 가고 싶다고. 하지만 난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적도도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기 전까지는. 뉴칼레도니아는 네게 생소한 곳이었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기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에 열광한 사람들이 그곳에 간다는 사실 하나로 온갖 부러움을 표시할 때도 그저 무덤덤하게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출장 가는 ..
“굿모닝 프라하~!!”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자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러운 고도다. 시내 곳곳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어 작은 골목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있다. 프라하에는 시대를 망라한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과학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유산이 있는 역사의 중심지이다. 체코에는 또한 카프카와 쿤데라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도 많이있다. 문화유산을 볼 때에도 드보르작과 스메타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곡가를 낳은 나라 체코에는 지금도 음악이 번창하여 체코인이라면 누구나 음악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지금도 수년전 여행한 동유럽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바로 프라하다. 성 비타성당. 아름답기로 ..
슬로바키아는 우리나라의 절반 면적에 인구는 500만이 넘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입니다. 알프스의 줄기인 타트라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서 전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750m 이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좀 긴 편인데 이곳의 집들의 지붕의 경사가 심한 편입니다. 슬로바키아는 우리의 기아차가 유럽시장 공략의 첨병이 될 동유럽공장 건설의 첫 삽을 뜬 나라이기도 합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비록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차분한 도시 분위기로 그 어느 곳보다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아직 한국사람중에 체코슬로바키아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와 로 완전 2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그것도 평화적으로...왜... 사유1. 1..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 된 도시의 하나로,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 과거 공산 시절과 새롭게 밀려든 자본주의의 공존과 대조를 천천히 음미하며 하루 이틀 쉬어가기에는 좋은 도시다. 불가리아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비옥한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알맞은 기후의 혜택을 받은 나라이다. 불가리아인의 조상은 원래 아시아 평원을 누리던 기마민족이었으나 이 비옥한 땅에 정착하면서 농업국으로의 터전을 굳혔다. 오랫동안 유럽 열강과 터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78년에야 러시아의 힘으로 독립을 얻었다. 그래서 불가리아와 러시아와의 관계는 특별히 친밀하고 러시아의 16번째 공화국 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고대에는 트라키아인(人)의 식민지였다. 29년 로마에게 점령된 후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
루마니아를 방문할때 머리속을 떠나지 않은 이미지가 하나 있다. 바로 루마니에의 절대 권력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몰락장면이다. 1989년 12월 25일. 절대권력을 꿈꾸다 부인과 함께 헬기를 타고 망명하던 차우셰스쿠는 헬기 조종사의 배신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곧장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총살형 집행에 지원한 군인이 수십명이 넘어 100여발의 총알이 박힌채 AP통신을 통해 전송된 차우셰스쿠의 시신 사진은 사회주의 붕괴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의미로 당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이 되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새벽 우리의 앙증맞은 티코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동안 머물렀던 영빈관 입구. 북한의 김일성과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던 차우셰스크는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감명..
지난 2002년 박관용 국회의장과 함께 동유럽을 순방할때 사진을 뒤적여봅니다. 첫 출장지인 독일 그중에도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유명한 하이텔베르그와 포츠담 선언으로 귀에 익은 상소시에성의 사진들이 옛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상수시 궁전은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시에 있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 별장인데,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말로 "근심없는(without cares)"이란 뜻이란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배경으로 네카강에서...이때만 해도 참 젊었다. ^ ^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최대강국, 하루 230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 인구 1억 5천(비공식 3억). 그러나 나이지리아 국민들은 가난하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민주주의 정착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차례 민간정부가 군부통치로 교체되는 악순환을 거듭해 오면서 정치는 안정되지 못하고 자원의 효율적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1980년초 1천불을 구가하던 일인당 국민소득이 현재 약 3백불에 불과한 빈곤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2000년에 독립 40주년을 맞은 나이지리아는 현재 희망과 도전이 교차되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맞고 있다. 장기간의 군부통치가 종식되고 1999년 5월 29일Obasanjo 대통령이 이끄는 민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사회 제반 분야의 발전을 위한 나..
사하라(sahra). 불모지를 뜻하는 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4분의 1을 차지한 광활한 이곳을 나이지리아에서 알제리까지 4시간의 비행을 통해 8천피트 상공에서 엿보았습니다. 광활한 사막에는 적막이 흐르는 듯 했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극한의 상황, 끝이 보이질 않는 모래언덕... 짧은 순간이지만 저곳을 걷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끝은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신기루를 쫒는 제모습을... 희망, 용기, 믿음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사막은 사라지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하라(sahra). 불모지를 뜻하는 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4분의 1을 차지한 광활한 이곳을 나이지리아에서 알제리까지 4시간의 비행을 통해 8천피트 상공에서 엿보았습니다. 광활한 사막에는 적막이 흐르는 듯 했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극한의 상황, 끝이 보이질 않는 모래언덕... 짧은 순간이지만 저곳을 걷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끝은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신기루를 쫒는 제모습을... 희망, 용기, 믿음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사막은 사라지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