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7/07/10 (8)
빛으로 그린 세상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남단 갯벌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구상, #강화의 갯벌을 만나다 하늘이 새파랗게 얼어 있다. 모처럼 맑은 휴일, 아이들 점심을 차려놓고 집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아줌마에서 길 위를 걷는 여행자가 된다. 매일 보는 동네도 여행자의 눈에는 그윽한 풍경이 된다. 강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강화도의 노을이 보고 싶었다. 강화터미널은 세월이 멈추어 선 듯한 느낌이다. 버스는 크고 신식이지만 버스 운행 간격이 보통 한두 시간이다. 노인들이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풍경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해안도로를 순환하..
- 충남 보은군 속리산에서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 - 나희덕의 중에서 지도도 없이 길을 나섰다. 법주사를 지나고 저수지를 지나는 내내 속리산의 가을빛은 푸근하고 따사로웠다. 탐방안내판을 보면서 문장대로 가는 길 대신 사람들 발길이 덜한 천황봉 길로 코스를 잡았다. 세심정을 지나 오른쪽 길로 오르는데 다리 건너편에서 단풍이 눈부신 돌계단길을 스님 한분이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물든 나뭇잎 몇 장이 빈 지게를 타고 있었다. 그 풍경에 이끌려 발길을 옮겼다. “스님, 이 길로 가도 천황봉이 나오나요?”, “네,..
경북 영주시 안남마을에서 나무들이 붉은 등불을 주렁주렁 달고 서있습니다. 일제히 불을 밝히고 즐비하게 늘어선 사과나무들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같아 황홀합니다. 유난했던 날씨로 많이 힘들었지만, 나무들은 한바탕 가을 축제를 벌입니다. 가을 들녘을 걸어갑니다. 벼이삭들이 누렇게 영글어가는 논배미를 지나갈 때면 구수한 벼 냄새가 풍겨옵니다. 사과나무 밭에는 나무들이 탐스런 열매를 달고 서있습니다. 그 곁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사과 익어가는 소리가 사그락 사그락 들릴 것만 같습니다. 자연의 풍요로움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때면 가을 들판으로 달려가곤 하지요. 하지만 지난여름의 유난했던 날씨 때문일까요. 태풍과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낸 아픔이 저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
- 경기 가평군 코스모피아 천문대에서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밤하늘의 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소년은 평생 별을 사랑하는 별지기가 되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세상에는 적막과 고요만이 가득하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만이 살아 숨을 쉰다. 싱싱하게 펄떡펄떡 거리는 별들, 저마다의 밝기와 저마다의 빛깔로 제각각 반짝이는 별들,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들이 떨어지는 그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온통 드넓은 하늘에 수많은 별뿐이다. 이토록 많은 별이 있었던가, 우주는 얼마나 드넓은 것인가, 이 우주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따금씩 떨어지는 별똥별까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 제주 한림읍 비양도에서 손에 잡힐 듯 그림처럼 떠 있는 섬, 남루한 일상이나 고단한 세상일은 모른다는 듯, 무심히 떠 있는 섬, 바다에 가로막혀 꿈결처럼 아련한 그 섬에 가고 싶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배는 바다로 나아간다. 짭짤한 바람이 온몸에 휘감긴다.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가는 배를 탔다. 고기잡이배만큼이나 작은 배이지만 휴가철이라 사람들은 제법 많은 편이었다. 제주에 살면서 비양도로 피서를 간다는 가족들도 많았다. 처음 가보는 비양도는 제주 사람들에게도 미지의 세계이고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 속의 섬이리라. 봉긋한 오름을 품은 섬이 조금씩 다가온다. 오름 위에 흰 등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늘 손짓하던 신비의 섬, 사람들이 마음으로 그리던 미지의 세계는 불과 15분 만에 모습을 ..
- 경기 양평군 지평면 풀꽃나라에서 들판에는 풀꽃이 피어나고 밤에는 반딧불이가 불을 밝히는 이곳에서, 그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에 귀 기울이고 바람과 노는 풀꽃나라의 고라니입니다. #풀과 나무와 아이들이 주인인 세상 산봉우리에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비가 그친 후 창밖으로 보이는 숲과 들판이 더욱 싱그럽다. 도망치듯 일상을 훌쩍 떠나온 길이다. 벼가 쑥쑥 자란 푸른 논과 잎이 무성한 고추밭 콩밭이 펼쳐지는 시골길을 얼마나 달렸던 것일까. 아득히 보이던 기찻길과 나란히 달리다 헤어지다 하다가 문득 기찻길 아래 터널을 만났다. 마치 사람이 사는 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양, 그곳에서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비밀의 문을 열 듯 터널을 조심스레 들어갔다. 터..
- 강원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에서 “뚝딱뚝딱” “토닥토닥” 작업실에서는 남자의 망치소리가 들려오고 집안에서는 음악 소리와 밥 짓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강원도 조그마한 산골에서 새집목수와 봉평댁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새집이 있는 풍경 계곡으로 가는 길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싱그러운 신록과 청량한 계곡을 찾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심정이겠지요. 모처럼의 휴일, 계곡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도 짙은 숲 향기와 계곡의 바람 냄새가 스며듭니다. 흥정계곡의 농원 한편에 있는 어느 집이었습니다. 난간위에도 근처의 나무 위에도 여러 가지 모양의 수많은 새집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 숲과 어우러지는 나무집, 그리고 독특한 모양의 수많은 새집들로, 그곳은 마치 동화 속 나라인 듯 했습..
- 경남 산청군 대포마을에서 “찰칵” 온 가족이 카메라를 보며 모처럼 웃는 순간, 마당에 핀 꽃보다 지리산의 신록보다 이 순간 가족의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밥상에서 만난 지리산의 봄 지리산의 봄은 더디게 찾아옵니다. 마을을 굽어보는 산등성이들은 이제야 봄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오래된 고목에도 갓난아기 같은 새싹들이 돋아납니다. 잦은 비와 뒤늦은 추위 끝에 느닷없이 다가왔던 도시의 봄과는 달리 천천히 음미하듯 이곳의 봄은 느리기만 합니다. 마을의 어느 골목 끝에서 한 집을 만납니다. 뒤늦게 핀 동백꽃이 툭툭 떨어진 마당 한편에는 아이들 자전거와 울긋불긋한 장난감들이 널려있습니다. 정재진(73)씨 댁입니다. “어여 오이소, 배고프지예..” 부엌에는 점심 준비가 한창입니다. 금방 뜯은 싱싱한 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