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속리산에게 길을 묻다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속리산에게 길을 묻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0. 17:03

- 충남 보은군 속리산에서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
- 나희덕의 <속리산에서> 중에서

 

지도도 없이 길을 나섰다. 법주사를 지나고 저수지를 지나는 내내 속리산의 가을빛은 푸근하고 따사로웠다. 탐방안내판을 보면서 문장대로 가는 길 대신 사람들 발길이 덜한 천황봉 길로 코스를 잡았다. 세심정을 지나 오른쪽 길로 오르는데 다리 건너편에서 단풍이 눈부신 돌계단길을 스님 한분이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물든 나뭇잎 몇 장이 빈 지게를 타고 있었다. 그 풍경에 이끌려 발길을 옮겼다.
“스님, 이 길로 가도 천황봉이 나오나요?”, “네, 나오긴 합니다만…….”
안내판 지도에서 굵은 선으로 표시된 길이 아닌 샛길로 가는 것이 걱정은 되었지만 오전 햇살이 비치는 오솔길은 신비로웠다.

#길은 다시 길을 만나고
동네 공원에서도 늘 같은 길로만 산책할 정도로 꽤나 고지식하고 소심한 나였다. 가다가 힘들면 다시 내려온다는 생각으로 낙엽을 밟으며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도 지그시 밟았다. 어차피 정상에 오르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깊어가는 속리산의 가을 풍경을 마음속에 담고 싶을 뿐이었다. 가느다란 오솔길이 이어지고, 서어나무 단풍나무 졸참나무의 울긋불긋한 잎들과 키 작은 산죽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내내 펼쳐진다. 그 풍경이 햇살에 따라 때로는 눈부시게 화사하고 때로는 더할 수 없이 그윽하다. 바위위에 앉아 싸온 김밥을 나눠 먹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정겹다. 예기치 않았던 길이 주는 이외의 즐거움은 쏠쏠했다.

길을 가면서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살다보면 갈림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내가 원했던 길은 정상으로 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었을까. 희생적이고 순종적인 어머니처럼 살지는 않겠다던, 능력 있고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 살겠다던 계획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아이를 돌봐주시던 시어머님의 허리통증으로 인해 일단 유보되었다.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잠시 쉬는 것이지 이 길이 내 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예기치 않은 그 길에도 눈부신 봄날이 있고 아름다운 가을날도 있었을 테지만 길섶의 풀꽃이나 곱게 물든 단풍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을 뿐.

아무래도 정상까지는 무리였다. 상환암을 거쳐 석문까지 오른 다음 다시 내려오는 길에 집 한 채를 보았다. 비로산장이었다. 입구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45년 전 산장을 지을 때 심은 나무라고 한다. 우람한 바위를 앞에 두고 속리산 봉우리들을 뒤로 한 산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풍스러웠다. 자그마한 방마다 벽에 걸린 이름난 명사의 글씨나 산수화는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랬지만 풍류와 정취는 그대로였다. 산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약초막걸리에 능이버섯, 더덕, 취나물, 감자전, 호박전, 도토리묵까지 정갈하고 깊은 맛이었다. 산동백잎에 찹쌀풀을 발라 튀긴 것은 맛과 향기가 독특하면서도 뛰어났다.

#그 길에서 만난 비로산장
“어떻게 이곳에 산장을 짓게 되셨어요?”
“나도 여기에서 이렇게 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하지 못했지. 그때는 모든 일에 실패하고 죽고 싶어서 무작정 산에 올라왔었는데…….”
산장주인 김태환선생에게서 은은한 묵향이 풍겨온다. 아흔의 고령에도 아침이면 신문을 빠짐없이 보고 백범일지를 즐겨 읽는다는 그가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내려간다. 그 글씨가 힘차게 꿈틀거리는 듯하다. 그의 곁에는 큰딸 김정란씨가 있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를 대신해 따님이 설명을 덧붙인다. 그가 40대 초반이었을 때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고뇌하다가 설핏 잠이 들었는데 금강골을 내려오던 노스님 세분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커다란 지팡이로 땅을 세 번 구르더니 ”너는 여기에 행자각을 세우라“하였다. 그는 산장을 짓기로 결심하고 이름을 ‘비로산장’이라 지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이야기 같지만 그 당시만 해도 밤이 되면 속리산 호랑이가 으르렁거렸다.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밤이면 문틈으로 두견새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은 누워서 뚫린 천장 너머로 하늘의 별을 세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길은 다시 이어졌지만 앞이 막막한 가장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요.” 정착하던 첫해 늦가을이었다. 외상으로 들여온 상품을 팔아서 외상을 갚아야 하는데 마침 고등학교 다니는 큰아이가 왔다. 학비를 주고 나니 빚을 갚을 방도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다. 젊은 부부가 하루 묵어간다고 찾아왔다. 돈을 벌 욕심으로 신이 난 부부는 저녁상을 정성껏 차리고 손님들을 접대했다. 그런데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소식이 없었다. 문을 열어보니 남녀가 쭉 뻗어 있었고 곁에는 유서와 약봉지가 뒹굴었다. 그는 허둥지둥 몇 번을 넘어지면서 산을 내려가 경찰과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주전자의 물을 입으로 따라 넣었더니 ‘꿀룩꿀룩’ 소리가 나면서 조금씩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불러서 남자와 여자를 들것에 실어 차례로 산 아래로 날랐다. 다행히 그들은 살아났고 다시 산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돈도 벌지 못하고 고생했지만 그래도 사람 목숨을 살렸잖아. 그래서 앞으로 이 산장이 발전하고 재수대통하겠다고 생각했지.”

#속리산에게 배우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마음은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길을 잃은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차비까지 주어 보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신혼부부가 자식을 데리고 다시 오고 그 자식들이 장성해서 이곳을 찾아온다.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오래된 방명록이 그동안 사람들과 쌓았던 소중한 인연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장 곳곳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서예작품과 그림들도 산장지기의 예술적 품격을 보여준다. 방문객이 선물한 것들도 있고 산장지기의 솜씨인 것도 있다. 산장지기가 방문객들에게 직접 글씨를 써주기도 한다. 넉넉한 인심과 맛깔난 음식솜씨로 사람들을 맞이하던 안주인 이상금 여사가 올해 돌아가신 후 지금은 큰딸이 아버지를 돌보며 산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음씀씀이도 솜씨도 어머니를 꼭 닮았다.

비로산장을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온다. 계곡에는 집채만 한 바위들이 유난히 많은데 그 바위 위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풀이나 잡목이 아닌 수십 년 된 나무가 바위와 얽혀 서있는 모습이 강인한 생명력이니 경이로운 광경이기 하기에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우연히 바위 위로 날아온 씨앗이 수십 년에 걸쳐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아무 불평도 없이 고운 단풍을 달고 서있는 모습이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만난 예기치 않은 길이 험난했을 터였다. 그래도 45년 동안 속리산에 뿌리를 내리면서 붓글씨를 쓰고 조각을 하고 글을 쓰며 자신의 인생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산장지기, 그의 스승은 바로 속리산과 이 나무들이었으리라.

인생이란 길을 가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버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큰아이는 이제 내년이면 스무 살 청년이 된다. 내가 걸어온 그 길은 성공을 향한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아이들 손잡고 도란도란 걷는 오솔길이었음 뒤돌아본다. 저무는 햇살에 산그림자가 깊어져간다. 길 앞에는 산을 내려가는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흩날린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글 최경애 (수필가) / 사진 김선규 (생명다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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