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빛으로 그린 세상/세상보기 (6)
빛으로 그린 세상
밤 10시, 서울 을지로 한복판.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코로나 시대 같았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풍경이다. 얼굴 마주 보며 먹는 음식, 술 한 잔….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들이 새삼 감동으로 와 닿는다. 아버지 세대들이 고단한 하루의 삶을 풀어냈던 그 자리를 지금은 스마트폰 세대들이 대신하고 있다. 잔과 잔이 부딪치며 웃음소리가 커져 간다. 누군가 건배제안을 하면 다 같이 잔을 부딪치며 합창이라도 할 것 같다. 어느덧 나도, 이 후끈한 분위기 속에 스며들어 근심 잊고 시원한 생맥주 사이를 유영하는 한 마리 노가리가 되었다. ■ 촬영노트 일명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1970년대 주머니 가벼운 인쇄노동자, 건축자재 공구상들의 하루 피로를 달래 줬던 곳이었다, 당시 맥주 500㏄에 ..
수국, 수련, 원추리… 서울역 고가공원에 여름 꽃들이 활짝 피었다. 하늘에는 비를 잔뜩 머금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땅에는 장난감 같은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고가공원에서 제일 높은 수국전망대에 오르자 소담스러운 수국들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토양성분으로 색이 변하는 수국들이 발밑을 오가는 버스들처럼 붉고 파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자 고가공원 여름 꽃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고 생기를 되찾는다. 도로에서 공원으로 변신하여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는 서울역 고가공원에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촬영노트 ‘서울로 7017’은 서울역을 중심으로 동서부를 이어주는 고가도로였으나 안전등급d를 받고 철거 위기에 놓였다. 여러 논의 끝에 철거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공중공..
기다림이 컸던 만큼 모처럼 내리는 비가 반갑다. 목말랐던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들고 시들했던 풀과 나무들도 생기를 되찾는다. 재잘거리던 새들은 집으로 돌아갔는지 북적이던 공원길이 고요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이는 대로 유유자적 연못 위를 노니는 소금쟁이 두 마리. 작은 원이 큰 원이 돼 끝임없이 번져가는 물결을 보니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내 마음속 같다.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으니 언제 소금쟁이처럼 근심 따위 툭툭 털어버리고 가벼워질 수 있을지...
봄은 고양이를 닮았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날카롭게 시나브로 다가온다. 코로나 확진으로 집콕 생활 일주일째, 무감각해진 시간 속에 허우적거리는 틈으로 따사한 햇살 한 줌이 거실에 스며든다. 나른한 눈으로 졸고 있던 고양이. 어느새 자기보다 커진 그림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 노려본다. 입춘은 지났지만 발코니 밖은 아직 꽁꽁 얼어 있다.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는 듯하지만, 고양이처럼 봄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날카롭게 우리 곁에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지족해협 죽방렴 위로 노을이 지면서 하늘과 바다가 붉게 타오릅니다. 고기를 가득 실은 작은 배가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이건만, 코로나로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서인지 세밑에 마주하는 일몰은 남다릅니다. 올 한 해 동안 겪었던 온갖 근심과 걱정과 고생일랑 모두 지는 해와 함께 저 바닷속으로 가라앉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성을 다해 빌어 봅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