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빛나고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빛나고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0. 16:52

- 경기 가평군 코스모피아 천문대에서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밤하늘의 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소년은
평생 별을 사랑하는
별지기가 되었습니다.

 

어둠이 내린 세상에는 적막과 고요만이 가득하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만이 살아 숨을 쉰다. 싱싱하게 펄떡펄떡 거리는 별들, 저마다의 밝기와 저마다의 빛깔로 제각각 반짝이는 별들,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들이 떨어지는 그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온통 드넓은 하늘에 수많은 별뿐이다. 이토록 많은 별이 있었던가, 우주는 얼마나 드넓은 것인가, 이 우주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따금씩 떨어지는 별똥별까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던 가평의 밤하늘을 나는 잊지 못한다.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친 어느 저녁, 어스름해지는 주변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반짝이는 별은 지나가는 비행기의 불빛이었다. 저 멀리 흐릿한 별 하나가 무표정하게 내려다 볼 뿐……. 요즘 도시에서는 별 보기가 어려워진지 오래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도시의 하늘에서는 별들도 시들어가는 모양이다. 시들한 도시의 일상, 그리고 시들어가는 내 꿈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해졌다. 꿈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이다. 아니, 어쩌면 잃어버린 게 아니라 꿈을 꾸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 박혀있는 밤하늘 가득 싱싱하게 펄떡거리던 그 별들이 못내 그리워졌다.

모처럼 날이 갤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가평으로 떠났다. 포도밭을 지나 한적한 산골로 접어들자 널찍한 운동장에 나지막한 건물이 보인다. 한편에는 꽃밭과 텃밭이 있고 탁 트인 전경에는 깊은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건물위의 천문 돔만 없으면 산골의 아늑한 시골분교 같기도 하고 외갓집 같기도 한 코스모피아 천문대는 여전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주변의 빛이 차단되고 울창한 숲이 삼림욕장이 되어주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가진 이곳은 97년 5월에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사설천문대이다. 마침 캠프를 온 한 무리의 학생들이 북적거리고 별지기들도 별을 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어둠이 내릴수록 활기가 넘치는 이곳이다.

“망원경을 룩백머신(look back machine)이라고 하지요. 북극성은 지구에서 700만 광년 떨어져있는데, 우리가 망원경으로 북극성을 보는 것은 700만 년 전의 모습을 보는 거예요.”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강의를 듣는다. 우리가 별을 본다는 것이 수백만 년 전의 과거를 보는 특별한 경험이라니.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의 특징과 각각의 위성을 설명하고 중간 중간에 퀴즈를 내서 행성 사진을 선물로 준다. 제법 진지한 학생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 이곳 별지기의 얼굴이 어느새 별처럼 반짝인다. 강의실 뒤쪽에 그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이세영(58) 코스모피아 천문대장이다.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별처럼
“어릴 적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해서 아마추어 천문생활을 한지도 벌써 25 년이 되었네요. 그래도 날이 맑으면 오늘 밤하늘은 어떨까, 어느 별이 보일까 하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이 뛰지요…….” 그는 경영을 전공하고 유학을 다녀온 유수한 인재로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주말이면 아버지가 물려주신 이 가평 땅에 나무를 심으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 시작했다. 온 하늘을 수놓는 별을 보면서 어릴 적 꿈이 다시 되살아났다. 북두칠성과 은하수를 보면서 가슴 두근거리던 기억, 마분지로 망원경을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별부스러기’ 라는 직장인 천문 동호회에서 아마추어 천문생활을 시작했다. 인터넷도 안 될 때 그냥 별이 좋아서 우여곡절 끝에 동호회를 찾아온 사람들끼리 의기투합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홍천으로 진천으로 지리산으로 별을 보러 다녔다. 가평 땅도 동호회에서 별을 보던 장소 중 하나였다. 그렇게 지상의 풍경과 사람들과의 추억이 수많은 별에 대한 기억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던 중,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털어서 캠프시설을 갖춘 천문대를 만들었다. 별을 잊고 사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직접 별을 보여주면서 꿈을 키워주고, 어른들에게는 별에 대한 추억을 불러 일으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별은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게 좋아요.”
잔잔하게 웃는 그에게서 별을 쫒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밤하늘의 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소년은 겨울 새벽, 오리온자리와 유성우를 보며 황홀했던 기억과 별과 얽힌 지상의 아름다운 추억과 또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사연들을 품으면서 평생 하늘의 별을 보며 살아가는 별지기가 되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무엇보다 돌아가실 때 비로소 아들을 인정해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는 화려한 사회적인 성공이나 출세 대신 깊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어릴 적 꿈과 열정을 고스란히 안은 채 늘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은 별처럼 살아간다.

#별을 가슴에 품다
어둠은 더욱 깊어졌건만 우려했던 대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구름 사이로 달과 직녀성, 시리우스 별들을 보여주느라 별지기들이 다시 분주해진다. 2년 전쯤에 이곳에 가족과 함께 캠프를 왔었다. 밤하늘의 별 뿐만 아니라 별자리 강의와 천체투영실도 의미 있었고 이튿날 삼림욕장을 산책하는 재미도 특별했다. 무엇보다 텃밭에서 직접 가꾼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주었던 아주머니와 별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애쓰던 별지기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았다. ‘어떤 열정이 이 젊은 사람들을 산속에 갇혀 주말도 없이 지내게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지어진 지 십 년이 넘다보니 시설이나 장비 면에서 최근에 설립된 다른 천문대보다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천문대를 운영하는 어려움도 짐작이 간다. 사실 천문대 방문을 계획하면서 아직도 하고 있을까라는 우려도 했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시설은 조금 더 낡았지만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도, 별을 보며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학생들의 눈빛도 여전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광활한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주려는 별지기들의 열의는 변함이 없었다. 꿈과 열정을 가슴에 품었기에 이들은 화려한 조명이나 불빛에 현혹되지 않고 깊은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일까. 코스모피아 천문대와 이곳을 지키는 별지기들은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저 별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가평의 밤하늘을 지킬 것이다.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며 운동장에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깊은 어둠 속에서 주변의 산세가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둠은 생각보다 익숙하고 편안했다. 몇 년 전 이곳에서 보았던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벅찬 감격이 있었기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별이 늘 그 자리에 있다는 믿음은 있다. 도시의 흐릿한 하늘에도 구름이 걷히고 어둠이 깊어지면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겠지. 바래고 시들어진 내 꿈도 내 가슴 속 어딘가에 반짝반짝 빛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환해진다.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별 하나가 가물거리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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