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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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꽃별 반딧불이와 풀꽃 요정이 사는 네버랜드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0. 16:45

- 경기 양평군 지평면 풀꽃나라에서

들판에는 풀꽃이 피어나고
밤에는 반딧불이가 불을 밝히는 이곳에서,
그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에 귀 기울이고 바람과 노는
풀꽃나라의 고라니입니다.

 

#풀과 나무와 아이들이 주인인 세상
산봉우리에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비가 그친 후 창밖으로 보이는 숲과 들판이 더욱  싱그럽다. 도망치듯 일상을 훌쩍 떠나온 길이다. 벼가 쑥쑥 자란 푸른 논과 잎이 무성한 고추밭 콩밭이 펼쳐지는 시골길을 얼마나 달렸던 것일까. 아득히 보이던 기찻길과 나란히 달리다 헤어지다 하다가 문득 기찻길 아래 터널을 만났다. 마치 사람이 사는 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양, 그곳에서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비밀의 문을 열 듯 터널을 조심스레 들어갔다. 터널 저편에서 나무와 풀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한다.

집이 있고 논과 밭이 있는 여느 시골 풍경과는 달리 이곳은 탁 트인 들판에 풀과 나무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커다란 연못 너머로 작은 집이 한 채 있을 뿐, 드넓은 언덕은 가슴 높이까지 자란 개망초꽃들로 온통 뒤덮여 있다. 길섶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자랄 잡초가 언감생심 그 넓은 땅을 독차지하고 있다니……. 그곳은 잘 꾸며놓은 식물원이나 수목원도 아니고 원예나 조경을 하는 곳도 아니고 농사를 짓는 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들판에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아름드리 밤나무에 걸린 그네를 타기도 하고 나무에 귀를 대고 무언가 듣기도 한다. 개망초 꽃밭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보며 여자아이는 토끼, 남자 아이는 다람쥐, 조금 더 큰 아이는 청설모가 떠오른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자연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 앞에는 훤칠한 고라니 한 마리가 있다. 이곳에서 생태학교를 운영하는 풀꽃나라 대표 김동주(51)씨이다. 자신을 큰샘골 고라니로 소개하는 그의 눈에서 고라니의 순한 눈이 겹쳐 보인다.

#자연을 느끼고 온 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들
“얘들아, 우리 풀꽃나라 나무 임금님한테 인사하자, 안녕!”하고 선생님이 말하자 아이들도 덩달아 “안녕!”하며 밤나무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나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 우리 같이 들어볼까?” 모두들 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본다. 제법 진지한 아이들도 있지만 큰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재미있어 한다. “나무가 오늘 친구들 그네를 많이 태워줘서 힘들대요, 나무가 힘나게 우리 ‘사랑해’ 한번 해주자!” 아이들은 함께 나무를 만지면서 “사랑해”하며 마음을 전한다. 애벌레를 보며 몸으로 꿈틀꿈틀 기어가는 애벌레 흉내를 내고 매미소리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제각각 소리를 내서 화음을 만들어낸다.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고 온 몸으로 표현하는 동안 아이들 얼굴이 단박에 환해진다.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고 생태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자연을 그대로 느끼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감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생태교육이 아닐까요.”
김동주 대표는 기존의 생태체험이 학습적인 목적을 가지고 주로 놀이나 게임으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생명을 마음으로 느끼고 소통하고 존중하도록 하는 감성 생태교육으로 변화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감성 생태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감성이 회복되는 사례를 무수하게 접해왔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서 생태교육을 시작했을 때였어요. 인근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아이들이 이곳에 오면 꽃을 비틀어 꺾고 메뚜기를 뜯고 개구리를 짓이기고 아이들끼리도 서로 싸우기 일쑤였지요. 알고 보니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다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들이었어요.” 그렇게 공격적이고 적대적이던 아이들이 매주 두 번씩 숲에서 놀면서 놀라울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다른 생명들과 소통하면서 보잘 것 없다고 느꼈던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자신도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큰샘골 고라니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자신이 이 숲에서 치유를 받았지요.” 그는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경제학도였다. 공동체와 대안학교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일본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땅을 물색했다. 지금의 터를 보러 온 날, 계곡에 밤늦게까지 앉아 있었는데 결국 숲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그는 말한다. 한창 회사일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중 언제부턴가 온몸에 발진이 나고 가슴 통증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머리도 빠지기 시작했다. 병명도 알 수 없는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고 증상이 사라졌다.

그는 연못과 습지를 되살리고 논과 밭을 들판으로 만들었다. 동네 어른들은 밭을 묵힌다고 걱정이었지만 풀꽃이 피어나는 들판은 풀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밤에는 반딧불이가 찾아왔다. 고라니가 숲길을 오가고 족제비 두더지가 뛰어 다니는 그곳은 어릴 적 뛰어놀던 들판 그대로였다. 그는 이곳에서 어린 친구들과 함께 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에 귀 기울이고 바람과 노는 풀꽃나라의 고라니가 되었다.

“풀꽃나라에는 꽃별이 있는데, 꽃별은 콩풀과 부엉이가 병든 임금님을 위하여 은하수의 별을 따다 연못가에 심어서 피어난 꽃이란다.” 김대표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풀꽃나라에는 꿀밤나무가 풀꽃나라 임금님이고 풀꽃 요정과 시냇물 요정 등이 살고 있다. 큰 아이들은 멋쩍어하지만 작은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린다. 그는 요즘 치유를 위한 동화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해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작은 생명도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영원한 동심의 왕국, 풀꽃나라
어둑해지는 들판에 앉아 저 멀리 기찻길을 바라본다. 고래 모양의 산에 둘러싸이고 길게 이어진 기찻길에 둘러싸인 이곳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숨어있는 왕국 같다. 시아버님의 입원과 큰아이의 급작스런 폐 수술, 아이가 아파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던 기억들……, 그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벌어졌던 세상일들이 기찻길 너머로 아득해진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저녁 공기의 풋풋한 냄새와 새소리, 풀벌레소리, 개구리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진다.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 김대표와 함께 집을 나서자 어둠속에서 기차의 불빛이 길게 이어진다. 손전등을 붉은 천으로 감싸서 쥐고 어두운 산을 오른다. ‘정말 반딧불이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잠깐, 밤바다에서 먼 등대를 보듯이 어슴푸레한 불빛이 깜빡거리며 순간 이동을 한다.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손전등을 끄고 가만히 앉아있자 연한 연두색 불빛 수십 수백 개가 일제히 깜빡거리며 어두운 숲을 수놓는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이보다 더 환상적일까. 숲과 나무와 풀들도 깨어나는 듯 우우우 바람 소리를 낸다. 원시 자연의 깊은 숨결이 들리고 눈앞에는 수많은 요정들이 날아다닌다.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상처입고 흔들리는 마음들이 위안을 얻고 희망을 되찾는 곳, 피터 팬과 팅커벨 대신 고라니와 꽃별 반딧불이요정이 지키는 이곳은 영원한 동심의 섬 네버랜드인가. 반딧불이 한 마리가 지친 내 가슴에 들어왔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글 최경애 (수필가) / 사진 김선규 (생명다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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