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갯벌, 그 어머니 품속 같은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갯벌, 그 어머니 품속 같은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0. 21:55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남단 갯벌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구상, <꽃자리>

 

#강화의 갯벌을 만나다
하늘이 새파랗게 얼어 있다. 모처럼 맑은 휴일, 아이들 점심을 차려놓고 집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아줌마에서 길 위를 걷는 여행자가 된다.
매일 보는 동네도 여행자의 눈에는 그윽한 풍경이 된다. 강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강화도의 노을이 보고 싶었다. 강화터미널은 세월이 멈추어 선 듯한 느낌이다. 버스는 크고 신식이지만 버스 운행 간격이 보통 한두 시간이다. 노인들이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풍경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해안도로를 순환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한편에는 황량한 겨울 들판이 펼쳐진다. 가로수 빈 나뭇가지 사이로 쨍한 하늘이 비치고 논두렁에는 검불을 모아서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창문을 열어 냄새를 한껏 들이마신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검불 태우는 푸근한 냄새가 실려 온다. 냄새만큼 강렬하게 감상을 유발시키는 게 또 있을까. 시골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향수로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마도 내 유전자 어딘가에 고향에 대한 추억이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고기잡이배들이 떠있고 건너편에는 김포 땅이 바짝 다가서 있다. 강화도가 섬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물이 빠진 바다에는 갯벌이 드러나 있다. 특히 황산도의 갯벌이 인상적이다. 여러 개의 갯골이 움푹 파여서 울룩불룩한 근육 같은 개흙이 진한 먹빛을 하고 누워있다. 버스 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적막한 바다를 바라보는데 무언가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갯벌에 까만 점들과 또 하얀 점들……. 그리고 보니 빈 들판에 있던 까만 점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다. 겨울 풍경은 쓸쓸하고 황량해보이지만 갯벌과 바다 속에서 그리고 땅 속에서 생명들은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순환버스가 길상면의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 다시 해안도로로 나올 때까지 강화도 남쪽 해안에는 너른 갯벌이 계속 이어진다. 강화도를 가로질러 석모도로 가는 배를 타거나 교동도에 갈 때에는 보지 못했던 강화도의 또 다른 모습, 그것은 바로 갯벌이었다. 누런 갈대밭 너머 짙은 회색빛이 끝없이 이어지고, 고기잡이배들이 그 위에 얹혀 있다. 구불구불 갯골이 이어지고 드문드문 붉은 칠면초 군락이 펼쳐지는, 시커멓고 거칠거칠하고 투박한 풍경들이 한없이 보기 좋았다.

#강화 갯벌을 지키는 사람들
갯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강화갯벌센터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강화갯벌은 세계5대 갯벌 중의 하나에요, 여차리-동막리-동검리를 잇는 강화남단 갯벌은 강화갯벌 전체 면적의 약 25%로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요.”
문인아(45) 사무국장은 넉넉하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갯벌의 생태적인 가치를 알리고 강화갯벌을 지키기 위하여 강화군과 환경단체가 2005년에 강화갯벌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 강화시민연대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강화 갯벌의 특징과 다양한 갯벌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계단 벽면에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전시해놓은 갯벌생물 모형은 그 모양과 질감이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전시실과 갯벌 탐방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생태교육 프로그램도 대상과 내용에 따라 다양하다. 특히 센터 곳곳에는 저어새 모형이 유난히 눈에 띈다. 주걱을 닮은 부리모양이 독특한 저어새는 전 세계에 20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귀한 새로 강화도 주변의 무인도에서 번식을 하며 강화 갯벌에서 주로 활동을 한다. “저어새는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찾아오지요. 강화도는 저어새의 고향입니다.” 한 달에 두 번씩 갯벌 생태교육을 받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그린 그림에도 저어새는 그들의 친근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갯벌 저 멀리에서부터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쨍’하는 소리가 날 것 같던 새파란 하늘도 오후 햇살에 한층 부드러워져 있다. 문국장과 함께 갯벌로 나갔다. 방문객들이 갯벌 생물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돌을 쌓아 만든 갯벌탐방로가 놓여있다. 겨울이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고라니 발자국도 보이고 또 알 수 없는 무수한 흔적들이 갯벌 위에 찍혀 있다. 하얗게 얼음이 얼어 있는 곳도 보인다. 강화 갯벌은 한강의 물이 흘러 들어오는 강하구 갯벌로 바닷물과 민물이 섞기는 ‘기수’라고 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물이 얼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생태적 가치 때문에 강화 갯벌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매일 갯벌을 바라보지만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젊었을 때에는 바다를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갯벌이 더 좋아지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질척질척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무수한 생명을 품고 키우는 갯벌을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갯벌을 바라보는 문국장의 눈이 그윽하다. 전남 장흥에서 자라 바다와 갯벌이 친근한 그는 무엇보다도 갯벌이 좋아서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김순래 센터장을 도와 센터의 살림을 도맡아한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활동비를 받으며 강화군으로 회의하러 가랴 심포지움에서 발표하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동분서주하지만 그래도 다른 환경단체와는 달리 강화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여건이 좋은 편이라며 활짝 웃는다.

#생명을 품고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
나무로 지은 갯벌센터 건물이 해가 기울어가는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다른 갯벌 센터에 비해 화려하지도 않고 규모도 작지만 전시실이나 교육프로그램이 알차고 올망졸망 살아 있는 느낌이다. 옥외탐방로나 구석구석까지 살림 잘하는 집안처럼 어디 하나 소홀한 곳이 없다. 모여드는 아이들과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갯벌의 소중함에 대한 마음 한 자락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센터식구들과 특히,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문국장의 세심한 손길 때문이리라. 오래된 부부가 닮아가듯이 갯벌을 사랑하고 지키는 그들은 무수한 생명을 품고 키우는 갯벌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리라.

센터의 어머니들이 또 있다. 강화의 자연을 사랑하는 세 아이의 엄마 홍미옥샘, 섬마을에서 자라서 갯벌에 오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는 이경임샘 등등, 집에서는 아이들 키우는 엄마이지만 이곳에서는 ‘저어새들’이라는 모임으로 갯벌의 소중함을 알리고 갯벌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이다. 방문객들과 아이들에게 구수하게 갯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들은 아줌마이기에 더욱 친근하고 편안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 꽃자리>라는 소책자의 제목처럼 그들은 아줌마라는 자리를 꽃자리로 가꾸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갯벌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붉은 하늘에는 해가 기울어간다. 마을에는 여기저기서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고 들판에는 불 때는 냄새가 스멀스멀 밀려든다. 이제는 모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 새들도 동물도 사람도 제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 같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창밖에는 어둠속에서 불빛이 하나 둘 반짝인다. 그 불빛 아래 거칠고 팍팍한 손으로 저녁을 지으며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강화의 투박한 갯벌과 겨울 들판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향수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나보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진다. 아이들이 돌아올 집을 위하여 나는 다시 엄마가 되고 아줌마가 된다. 반갑고 고맙고 기쁜 나의 꽃자리가…….

 

글 최경애 (수필가) / 사진 김선규 (생명다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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