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새집 목수와 봉평댁 이야기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새집 목수와 봉평댁 이야기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0. 16:42

- 강원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에서

“뚝딱뚝딱” “토닥토닥”
작업실에서는 남자의 망치소리가 들려오고
집안에서는 음악 소리와 밥 짓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강원도 조그마한 산골에서
새집목수와 봉평댁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새집이 있는 풍경
계곡으로 가는 길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싱그러운 신록과 청량한 계곡을 찾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심정이겠지요. 모처럼의 휴일, 계곡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도 짙은 숲 향기와 계곡의 바람 냄새가 스며듭니다. 흥정계곡의 농원 한편에 있는 어느 집이었습니다. 난간위에도 근처의 나무 위에도 여러 가지 모양의 수많은 새집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 숲과 어우러지는 나무집, 그리고 독특한 모양의 수많은 새집들로, 그곳은 마치 동화 속 나라인 듯 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새집전시회를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푸른 숲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집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습니다.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디자인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새집을 만들었을 어느 젊은 예술가를 막연히 떠올리기도 했었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기척을 해보니 환갑을 훌쩍 넘긴 점잖은 아저씨 한 분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작업실에서 나와 반깁니다. 전시회의 주인공이었던 이대우(66)씨입니다.

그의 안내로 들어간 집안에도 거실 벽을 꽉 채운 책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새집들이 가득 놓여 있습니다. 나뭇가지로 자연스럽게 멋을 낸 새집, 마당이 있는 새집, 이층 새집, 방패연을 닮은 새집, 주전자 모양 새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해보입니다. 새집만이 아닙니다. 새집 모양의 시계, 크리스마스 나무 시계 등 예술작품부터 선반, 책꽂이, 의자에 이르는 생활용품까지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습니다.

#새집을 만든다는 것은
“원래 목공일에 관심이 많아서 계곡에서 주워 온 나무나 나뭇가지로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긴 판자와 자투리 나무들이 선반이 되고 책꽂이가 되고 의자가 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흥정계곡에 정착한 13년 동안 천여 개의 독특한 새집을 만든 베테랑이지만 그의 목수일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집 주변에 모여드는 온갖 종류의 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겨울이면 먹이를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새들도 종종 눈에 띄었고요. 그래서 그는 새집과 먹이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워 온 나무들과 물에 씻긴 냇가의 나뭇가지들은 좋은 재료가 되었습니다.

“새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이렇게 사방이 뚫려있는 건 새 먹이집이고 구멍이 작게 난 건 새 살림집이지요.”
새집 목수로 불러주는 게 제일 좋다는 이대우씨가 새집을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딱따구리들이 주로 그의 새집을 이용하는 입주자들입니다. 박새나 곤줄박이들은 봄이면 짚이나 깃털로 인공 새집에 둥지를 꾸미고 알을 낳습니다. 그 새들이 해충을 잡아먹으니까 흥정 계곡의 나무와 숲도 더욱 건강해지겠지요. 새집에 새들이 찾아들 때 가장 반갑고, 겨울이면 먹이를 찾아 헤매던 새들이 먹이집 지붕 아래로 모여들 때 마냥 즐겁다는 그는 흥정계곡의 새들과 소통하면서 자연과 더욱 가까워져갔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숨은 재주 같은 것이 하나씩 있지요. 도심에서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그 재능은 영원히 묻히는 건 아닐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늦은 나이에 시골에 살면서 숨은 재능을 찾은 셈이지요...”   
새집을 만드는 솜씨가 나날이 능숙해지면서 점점 디자인은 독특하고 기발해졌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것들이 하나씩 세상 밖으로 나오듯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샘솟고, 평범하던 새집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예술품으로 진화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뚝딱뚝딱 새집을 만들 때 더없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의 숨은 재주는 삶을 반짝반짝 빛내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도시내기, 자연으로 돌아가다
그의 아내가 주방에서 차를 내옵니다. 세련된 서울 말씨에 인상이 서글서글한 부인 서경옥(63)씨입니다. 철학, 인문학, 법학에서 생태학, 숲 관련 에세이까지 거실을 꽉 메운 책들, 그림 등의 많은 예술품들, 그리고 자연스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이들 부부를 보며 슬슬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살았습니다. 남자는 유력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일류 중고등학교와 일류대학 법대를 나오고, 서울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는 일류 여고와 일류 여대 불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60년대의 “엄친아”와 “엄친딸”이었지요. 대기업에서 사내 커플로 만난 그들은 결혼을 하고 외동딸을 두었습니다. 남자는 외신기자에서 기업의 전문경영인에 이르기까지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일을 했고 여자는 딸을 키우며 알콩달콩 살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학창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대학을 다닐 때에는 아이스하키 선수를 할 정도로 열정이 많았습니다. 여자도 음악 감상을 하고 가야금 병창을 배우는 등 예술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도시생활의 탈출구는 여행이었습니다. 딸을 데리고 틈만 나면 등산과 오지 트레킹, 캠핑을 하면서 자연의 품에 안겼습니다. 강원도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흥정계곡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오십대 중반의 나이였습니다. 아직은 더 일 할 나이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연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은 이미 가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흥정계곡의 농원 한편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시골의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 두려운 적도 있었고, 여름철 홍수에 계곡물이 무섭게 불어 급히 대피하기도 했습니다. 황량하기만 한 겨울의 지루함도 허리춤까지 쌓인 눈을 치우는 것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매일 새소리에 눈을 뜨고 창밖에는 울창한 숲과 넘쳐흐르는 계곡이 펼쳐지는 이곳을 그들은 사랑합니다. 아침이면 작업실에서는 남자의 망치소리가 들려오고 거실에서는 음악 소리 사이로 토닥토닥 밥 짓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강원도 조그마한 산골에서 그들은 새집목수와 봉평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부부와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도 동화 속 나라인 듯 아득합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그들이 도시에서 누리던 부와 지위를 버리고 숲에서 조그맣게 살아가는 이야기이지요. 할아버지는 매일 새집을 만들고 할머니는 음악을 들으며 수를 놓습니다. 부부가 함께 산책을 하고, 이웃과 어울리면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갑니다. 왕자와 공주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의 동화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준다면, 새집목수와 봉평댁이 만드는 동화는 인생의 후반을 준비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꿈을 심어줍니다. 그동안 누렸던 성취를 잃어야하는 두려움이나 아직도 못 이룬 성공에 대한 아쉬움 대신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 작은 행복을 일구며 살고 싶다는 꿈이지요.

싱그러운 신록이 펼쳐진 계곡 물가에 분홍색 물철쭉이 피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계곡 물에 발을 담급니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그 꽃들이 계곡물 위에도 내 마음에도 어른어른 피어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