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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슬로바키아는 우리나라의 절반 면적에 인구는 500만이 넘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입니다. 알프스의 줄기인 타트라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서 전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750m 이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좀 긴 편인데 이곳의 집들의 지붕의 경사가 심한 편입니다. 슬로바키아는 우리의 기아차가 유럽시장 공략의 첨병이 될 동유럽공장 건설의 첫 삽을 뜬 나라이기도 합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비록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차분한 도시 분위기로 그 어느 곳보다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아직 한국사람중에 체코슬로바키아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와 로 완전 2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그것도 평화적으로...왜... 사유1. 1..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 된 도시의 하나로,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 과거 공산 시절과 새롭게 밀려든 자본주의의 공존과 대조를 천천히 음미하며 하루 이틀 쉬어가기에는 좋은 도시다. 불가리아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비옥한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알맞은 기후의 혜택을 받은 나라이다. 불가리아인의 조상은 원래 아시아 평원을 누리던 기마민족이었으나 이 비옥한 땅에 정착하면서 농업국으로의 터전을 굳혔다. 오랫동안 유럽 열강과 터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78년에야 러시아의 힘으로 독립을 얻었다. 그래서 불가리아와 러시아와의 관계는 특별히 친밀하고 러시아의 16번째 공화국 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고대에는 트라키아인(人)의 식민지였다. 29년 로마에게 점령된 후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
루마니아를 방문할때 머리속을 떠나지 않은 이미지가 하나 있다. 바로 루마니에의 절대 권력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몰락장면이다. 1989년 12월 25일. 절대권력을 꿈꾸다 부인과 함께 헬기를 타고 망명하던 차우셰스쿠는 헬기 조종사의 배신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곧장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총살형 집행에 지원한 군인이 수십명이 넘어 100여발의 총알이 박힌채 AP통신을 통해 전송된 차우셰스쿠의 시신 사진은 사회주의 붕괴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의미로 당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이 되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새벽 우리의 앙증맞은 티코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동안 머물렀던 영빈관 입구. 북한의 김일성과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던 차우셰스크는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감명..
지난 2002년 박관용 국회의장과 함께 동유럽을 순방할때 사진을 뒤적여봅니다. 첫 출장지인 독일 그중에도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유명한 하이텔베르그와 포츠담 선언으로 귀에 익은 상소시에성의 사진들이 옛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상수시 궁전은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시에 있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 별장인데,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말로 "근심없는(without cares)"이란 뜻이란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배경으로 네카강에서...이때만 해도 참 젊었다. ^ ^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최대강국, 하루 230만 배럴의 원유 생산량, 인구 1억 5천(비공식 3억). 그러나 나이지리아 국민들은 가난하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민주주의 정착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차례 민간정부가 군부통치로 교체되는 악순환을 거듭해 오면서 정치는 안정되지 못하고 자원의 효율적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1980년초 1천불을 구가하던 일인당 국민소득이 현재 약 3백불에 불과한 빈곤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2000년에 독립 40주년을 맞은 나이지리아는 현재 희망과 도전이 교차되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맞고 있다. 장기간의 군부통치가 종식되고 1999년 5월 29일Obasanjo 대통령이 이끄는 민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사회 제반 분야의 발전을 위한 나..
사하라(sahra). 불모지를 뜻하는 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4분의 1을 차지한 광활한 이곳을 나이지리아에서 알제리까지 4시간의 비행을 통해 8천피트 상공에서 엿보았습니다. 광활한 사막에는 적막이 흐르는 듯 했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극한의 상황, 끝이 보이질 않는 모래언덕... 짧은 순간이지만 저곳을 걷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끝은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신기루를 쫒는 제모습을... 희망, 용기, 믿음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사막은 사라지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하라(sahra). 불모지를 뜻하는 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4분의 1을 차지한 광활한 이곳을 나이지리아에서 알제리까지 4시간의 비행을 통해 8천피트 상공에서 엿보았습니다. 광활한 사막에는 적막이 흐르는 듯 했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극한의 상황, 끝이 보이질 않는 모래언덕... 짧은 순간이지만 저곳을 걷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끝은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신기루를 쫒는 제모습을... 희망, 용기, 믿음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사막은 사라지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의 양대(兩大) 선진국’으로 꼽히던 필리핀은 60년대 한국이 따라잡아야 할 경쟁상대였다. 하지만 이번 필리핀 사태로 다시 살펴본 필리핀의 속살은 곯아 터질때로 곯은 모습이었다. 한 달 소득이 23달러(약 2만2000원)가 안 되는 극빈층이 총인구(8500만명)의 35%에 달하고 있다. 1986년 피플파워를 통해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이는 전통적 엘리트들의 전면 복귀를 낳는 계기가 됐을 뿐 거리를 행진하던 민중들의 목소리는 이후 수립된 민주주의 정권에서 담아내지 못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빈곤층은 더욱 확대됐다. 수도인 마닐라 시내 곳곳에 고무신도 못 신은 어린이들이 외국인을 보는 순간 손바닥을 벌리며 돈을 달라고 쫓아왔고 다른 ..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차 한잔을 마시는 동안 현해탄을 건너고 있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이름과 달리 잔잔한 현해탄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길 틈도 없이 어느새 기내에는 오카야마(岡山) 공항에 착륙하기 위한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1시간 30분. 참으로 가깝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일본 서남부의 중앙에 위치한 오카야마현은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간직한 곳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누루고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대신 화해외교를 택했다. 양국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 일행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12차례 일본을 찾았다. 오카야마현 우시마도는 조선통신사들이 여독을 풀던 기항지였다. 당시 우시마도 사람들은 조선통신사 일행을 환대하며 이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