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7/07/03 (16)
빛으로 그린 세상
금요일 저녁, 내일이면 주말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신나서인지, 흥분해서 축구를 하다가 바지가 터졌다. 교복 바지 엉덩이 부분이 크게 열렸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신나게 축구를 했다. 땀에 흠뻑 젖었는데, 이상하게 아랫도리가 시원해서 나중에 알아차렸지만 이미 많은 친구들이 그 모습을 봤을 생각을 하니 너무 민망했다. 후드를 벗어서 허리에 감싸고 바지의 터진 부분을 가려서 위기는 모면했지만, 민망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토요일에 책을 읽는데도 계속 그 전날의 일이 생각나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서, 나는 모처럼 카메라를 집어 들고 밤에 사진 산책을 나갔다. 산책은 밤에도 많이 나가보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인공 조명이 호수공원을 환히 비추고 있었고, 많은 사..
언젠가 잡지에서 서울 한복판에 자동차들이 지나가면서 그 불빛들이 남긴 궤적이 만들어낸 멋진 사진을 본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나도 그런 멋진 ‘궤적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 밤에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캄캄한 밤인데도 라이트를 켜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쌩쌩 지나가는 자전거 불빛이 남기고 가는 그 궤적들을 사진으로 담아 내면 정말 멋진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해서 ‘조리개를 열어 놓는다’ 까지 밖에 몰랐던 나는 내가 원하던 캄캄한 호수공원의 야경 안에 빛의 궤적들이 그린 멋진 그림을 얻지는 못했다. 자전거가 너무 빨리 지나간 탓인가? 아니면 불빛이 너무 약해서 그런가? 다양한 의문점이 들었고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이리저리 다른 시도를 해봤..
준우야 아빠가 지난봄에 선물한 카메라(니콘 D3100) 맘에 드니? 비싼 카메라는 아니지만 사진을 시작하는 너에게 좋은 동반자가 될 거야. 아빠가 사진을 처음 접한 이후 직업으로 20여년을 지내는 동안 많은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카메라는 정을 가장 많이 나눈 카메라(니콘 FM2)였던 것 같아. 물론 지금 쓰고 있는 최첨단 디지털 카메라에는 성능과 편리함에서 비교할 수 가 없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손때가 묻은 당시의 필름카메라가 아직도 제일 좋은 카메라로 기억돼. 물론 그 카메라와 함께 ‘가평상공의 UFO출현’ ‘목숨 건 도강’등 전국을 들썩일 정도의 특종도 많이 했지. ^ ^ 아빠가 처음 사진기를 접한 건 아빠의 아버지 카메라였어. 교사이셨던 할아버지는 성격이 꼼꼼한 분이시라 카메라를..
밤새 배가 아파서 설사를 하며 잠을 뒤척였다. 전날 밤에 먹은 치킨이 뱃속에서 부활해서 뛰어다니며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팠다. 새벽에 눈을 뜬 후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갔다. 창밖을 바라보니 환상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뽀얀 안개가 바닥에 깔려서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멋진 풍경 사진들 중에서 안개가 껴있는 풍경은 훨씬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이 찬스다. 배가 아팠지만, 멋진 사진을 위해서 이정도 복통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를 챙긴 후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잠이 덜 깬 아빠와 호수공원에 도착하였다. 안개가 낀 모습이 적나라게 드러나는 아파트 위에서 바라보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지만, 안개 속에서 ..
평소 길을 걷다가 발목이 간질거려서 내려다 보면 조그마한 풀들과 꽃들이 그 범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겨우 내 발목까지 밖에 미치지 않는 풀들이나 꽃들을 별로 심중하게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라, 못 보던 풀이네”, “예쁜 꽃이네”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었다. 가끔 귀엽거나, 사연이 있는 것 같은 꽃을 보면 사진으로 담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연신 고개를 떨구고, 허리를 굽혀도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에잉, 한낱 조그마한 꽃 따위. 원래 별로인데 사진으로 담으려 해도 오죽하겠어” 라며 포기를 해버렸다. 오늘도 산책을 하던 중 어김없이 귀여운 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어차피 사진으로 담아도 예쁘게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아빠가 갑자기 “그..
“무조건 다 나오게, 무조건 넓게…”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부터 무조건 넓게 보고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었다. 욕심을 부리면서 더 많은 것을 한가지 사진에다가 담으려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조건 다양한 색이 나오고, 많은 사물들이 나와야 예쁜 사진이다’라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원래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는 성격 탓일까? 항상 시험공부 할 때도 보면 나는 큰 그림을 보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 공부를 하곤 했다. 책을 펼치고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쭈우욱 훑고 큰 틀을 이해한 후 “공부 다했다!”고 외친 후에 바로 책을 덮었다. 세계사같이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과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디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