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40년 그 한결같은 마음으로...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40년 그 한결같은 마음으로...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8. 23:12

-거제시 일운면 공곶이농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는 남해의 푸른 바람과 싱싱한 햇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록적인 추위가 몰아닥치기도 했고 가뭄에 목이 타기도 했지요. 그럴수록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40년이 지난 후, 황량했던 언덕은 겨울에도 짙푸른 숲이 되었습니다. 붉은 동백과 수줍은 매화가 얼굴을 내밀고 새가 날아듭니다.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노부부, 그들이야말로 이곳을 지키는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달큼하다. 봄 향기일까. 한반도 끝자락에 있는 거제의 바람에는 엷은 소금냄새와 희미한 꽃냄새가 스며있다. 예구마을에 차를 세웠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한 떼의 갈매기들이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물비늘을 한가로이 바라본다. 몇 번이나 통화를 한 후에나 공곶이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좁은 오솔길을 오르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아래로 짙푸른 종려나무와 동백나무들이 빼곡하다.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가는 길에 동백나무들이 터널을 이루었다. 누군가 쌓아놓은 돌계단과 하늘을 가득 메운 초록 터널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터널을 벗어나면 무엇이 펼쳐질까. 내려가는 길 내내 촘촘히 겹쳐진 잎들 사이로 동백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돌계단에는 붉은 꽃잎이 낭자하다. 터널을 나오자 느닷없이 나타난 풍경에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남해의 푸른 바다, 동글동글한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과 깎아지른 바위 절벽,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내도의 그림 같은 경치……,  몽돌로 쌓은 돌담 안에는 야자수같이 생긴 종려나무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빚어내고, 팔손이 동백나무 유자나무 등 온갖 상록수들이 윤기 나는 푸른빛을 자랑한다. 천혜의 자연 풍광과 함께 이곳을 더욱 싱그럽게 만드는 누군가의 손길이 점점 궁금해졌다.

 

종려나무 숲 한쪽에서 일하시던 강명식(80) 할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맞는다. 온화한 인상에 크지 않은 체구이지만 오랜 노동으로 단련된 다부진 힘이 느껴진다. 40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할아버지는 부인 지상악(76) 할머니와 함께 척박한 산비탈을 일일이 돌을 쌓아 계단식 밭을 만들었다. 돌투성이 땅을 호미와 낫과 곡괭이로 일구어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다. 농장에는 종려나무, 조팝나무, 팔손이나무들이 자라났고 5남1녀 아이들도 이곳에서 나무들과 함께 자랐다.
“새벽에 눈뜨면 나가서 하루 종일 나무 가꾸다가 해가 지면 집에 들어오지. 오죽하면 우리 애들이 ‘아버지 나무만 사랑하지 말고 우리도 사랑해주세요’ 했겠어...”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기도를 하고 농원에서 나무를 돌보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매일의 일상은 40년 동안 변함이 없다.
“아침에 일 나갈 땐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지’하고 계획한 적은 없어. 그냥 나가서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일을 해,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참 적절한 시기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는 애써 의지를 가지고 계획하지 않는다. 나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대로 보고 느낄 뿐이다. 자신을 비우고 나무를 온전히 느끼는 마음, 나무가 필요로 할 때 정성껏 돌보는 마음, 그러면서도 눈앞의 성과를 바라지 않고 오래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이야말로 진정 나무를 심고 가꾸는 마음이리라. 
 

 

벌써 오십년도 더 됐나봐, 아침에 결혼식을 하고 하릴없이 산책을 나왔는데 거기가 바로 공곶이였어. 거기서 바다를 바라보는 데 가슴이 확 뚫리면서 마음이 뭉클해지는 거야, 그때 결심했지, 이 땅이야말로 내가 살 곳이라고...”
고향이 경남 진주인 할아버지가 거제 공곶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예구마을에 살던 할머니와 결혼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때의 강렬한 느낌은 평생 할아버지의 삶을 이끌었다.
“고생은 말도 못하게 했제, 내 고향이지만 나는 여기 안 들어오고 싶었는데, 아 이 양반이 워낙 확고해서 헐수없이 따라왔지 뭐...”
지상악 할머니가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준다. 주름지고 갈라진 할머니의 손에는 고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결혼한 지 12년 후 어렵사리 이곳에 땅을 장만했다. 처음에는 귤나무를 심었다. 5년 만에 첫 결실을 앞두고 기록적인 한파로 귤나무가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이듬해 유자나무를 심었지만 그것도 가뭄으로 모두 말라죽었다. 그 다음에는 종려나무와 온갖 꽃과 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식용으로 팔리던 종려나무 잎도 몇 년 전부터는 플라스틱에 밀려났다.
온갖 어려움에도 할아버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땅을 지켜내겠다는 신념과 확신이 있었기에 부인을 설득할 수 있었다. 40년 세월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심고 또 가꾸었다. 양 손에는 삽과 괭이가 떠날 날이 없었고 등에는 늘 지게가 매달려 있었다.
“그때 심었던 어린 묘목이 이렇게 아름드리 나무가 된 걸 보면 40년이라는 세월이 참 길다는 게 실감이 나..”
강할아버지가 농가 앞마당에서 서있는 우람한 동백나무를 바라본다. 겨우내 추위도 견뎌내고 진초록 잎새 사이로 얼굴을 내민 크고 작은 꽃봉오리들이 남해의 푸른 바람과 싱그러운 햇살을 머금고 있다. 돌투성이 산비탈은 이제 사시사철 푸르고 봄이면 동백, 매화, 수선화가 앞 다투어 피어나는 지금의 공곶이농원이 되었다.

 

동백꽃 아래서 포즈를 취하는 노부부가 다정해보인다.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냐는 질문에 경상도 사내인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평생 처음 듣는 말에 할머니 얼굴이 동백꽃이 되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할아버지는 ‘부부가 함께 하루하루 건강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하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늘 기도한다고 한다.
공곶이가 거제 8경으로 손꼽히고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그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없다. 무인판매대에서 수선화 열 뿌리에 천원, 천리향 한 그루에 2천 원씩 팔지만, 상자에 있는 돈을 세어보지도 않는다. 필요로 하는 곳에 꽃과 나무를 기증하기도 한다. 부부는 공곶이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오래도록 손을 흔드는 노부부를 뒤로 하고 동백터널을 오른다. 붉은 꽃잎과 이따금씩 새어드는 햇살이 돌계단 위에 어우러진다. 그 돌계단 아래로 무수히 뻗어 나갔을 뿌리를 생각한다. 메마른 산비탈에 버티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증거이고, 뿌리가 깊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고 오랜 세월 한결같을 수 있는 마음이리라. 내게 뿌리는 살아가는 의미로 신념으로 다가왔다. 늘 흔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 좇는 나의 빈약한 뿌리가 부끄러워진다.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노부부, 그들이야말로 이곳을 지키는 뿌리 깊은 나무였다. 

글 최경애 (수필가) / 사진 김선규 (생명다큐사진작가)


 

아름다운 나무로 우뚝 서다
- 유한킴벌리 창립 40주년에 즈음하여 -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비단 로고나 광고 때문만은 아니지요. 그 기업은 오랜 세월 동안 버려진 불모지에 나무를 심어 왔습니다. 척박한 산비탈에, 메마른 뒷산에, 마을과 학교에 나무를 심고 또 가꾸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거나 눈앞의 성과를 바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에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기업이 사회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사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불모지는 울창한 숲이 되었습니다. 나무를 심었던 신혼부부의 마음에도 숲 캠프에 참가했던 아이들의 마음에도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기업문화에서도 나무는 새싹을 틔웠습니다. 평생학습과 일자리 창출, 가족친화형 프로그램은 기업문화의 좋은 모델이 되었고 청년들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 그리고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로 이 기업을 꼽았습니다.
거제의 노부부를 바라보며 올해 40주년을 맞는 유한킴벌리를 생각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늘 푸른 나무,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려 메마른 땅을 푸른 숲으로 일구어내는 유한킴벌리, 당신은 진정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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