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항구에서 건져 올린 새해 희망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항구에서 건져 올린 새해 희망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8. 22:54

-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하늘이 푸르스름하다. 해 뜨기 한 시간 전, 길을 나섰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아직 검푸른 어둠 속에 잠겨있다. 거리도 잠에서 깨지 않은 듯, 밤새 휘청거렸던 횟집 간판의 불빛도 사람들의 술렁거림도 자취를 감추고 정적만 감돈다. 그렇게 하늘도 바다도 사람들도 모두 잠든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환한 불빛과 마주했다. 이곳은 언제부터 깨어있었던 것일까. 양옆으로 길게 펼쳐진 좌판과 그 사이로 북적이는 사람들, 물건을 사라고 목청을 높이고 시끌벅적 흥정하는 소리들……. 그곳에선 싱싱한 활기가 어둠을 비치는 환한 불빛처럼 주위에 퍼져 나갔다.

 

삼천포어시장이다. 항구로 가는 골목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활어 난전이 펼쳐진다. 끝없이 늘어선 빨간 고무대야에는 바닷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그 안에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이 이리저리 살아 꿈틀거린다.
“아주머니 이게 뭐에요?” “저뽈래기…….”
“네?” “저뽈래기...”
“??”
젖볼락, 보드라치, 졸복, 물메기 등 가리키는 생선마다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주시는데 경상도 특유의 거센 사투리도 그렇거니와 하나같이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어서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다.
주로 깨끗한 남해에서만 산다는 생선들의 낯선 모양새도 재미있다.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좁은 대야에서도 물고기들은 쉼 없이 헤엄친다. 팔딱거리는 건 물고기뿐만이 아니다. 바지락과 굴을 까고 회를 뜨는 아주머니들의 손이 펄펄 날아다니는 듯하다. 해산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난전에서 대개는 연탄불 하나씩을 앞에 놓고 있지만 불을 쬐는 손은 거의 없다. 출렁이는 대야 가득 생선들이 살아 펄떡거리고 그보다도 더 분주한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시장에 자리를 잡지 못한 몇몇 아주머니들은 항구 입구에서 장사를 한다. 그들은 천막도 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있다. 앞에 놓인 고무대야에는 어른 팔뚝만한 물메기들이 눈을 끔뻑거린다. 겨울철 가장 별미라는 물메기탕을 끓이기 위해 장을 나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걸쭉한 사투리를 주고받으며 흥정을 한다. 물메기 세 마리에 만원. 곧이어 손수레에 싣고 나온 양동이 안으로 물메기 세 마리가 풍덩 들어간다. 물건을 판 아주머니도, 식구들의 겨울 밥상을 위해 싱싱한 생선을 사는 아주머니도 모두 흡족한 표정들이다.
“몇 시에 나오세요?”
“새로 세 시에도 나오고, 네 시에도 나오고…….”
하루 장사를 준비하려면 그쯤에는 나와야하고 손님들도 새벽 여섯시쯤에 더 많단다. 올해 연세가 예순다섯인 백씨 아주머니는 장에 나오기 시작한 지 십년쯤 되었다고 한다. 삼남매가 모두 서울, 부산, 울산에 나가서 잘살고 있다며 아주머니는 슬며시 자식자랑을 내비친다. 시장판 십년 차에 아직 변변한 자리도 확보하지 못했지만 아이들 셋 키워 도시로 내보내고 이제는 자식 의지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잠도 설치고 이른 새벽부터 추위에 떨었을 아주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 환한 얼굴이 내 마음에도 ‘찰칵’ 찍힌다.

동쪽 하늘이 부옇게 밝아온다. 그렇게 점점 붉어지더니 바다 저편 노산공원 위로 해가 불쑥 솟아오른다. 구름도 없이 맑은 하늘에 떠오른 불덩어리가 항구를 온통 붉게 물들인다. 바다에도 붉은 햇살이 아른거리고 갈매기를 잔뜩 달고 항구로 돌아오는 배에도, 항구에 빼곡하게 정박해있는 고기잡이배에도 아침 햇살이 퍼져나간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남다르다. 추위와 어둠 속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해는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느낌이라면, 환히 불빛을 밝히고 활기찬 하루를 시작한 지 서너 시간 후에나 떠오르는 이곳의 해는 늦잠꾸러기 같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배 하나가 서서히 부두로 들어온다. ‘용진호’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아주머니는 먼저 내려 밧줄을 묶고 아저씨는 가까이 있는 배들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단속을 한다.

“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지끔이 마 물메기철인데 그전보다는 잘 안잡힌다 아입니껴."
“어제 몇 시에 일 나가셨는데요?”
“저녁 여섯시예.”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 한가운데서 밤을 지새우며 작업했을 그에게서 피로함보다 먼저 선량함과 정직함이 느껴진다. 박해린(58)· 이두선씨 부부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부부가 함께 배를 타고 고기를 잡은 지 삼십 년째라고 한다.
그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1남 4녀가 모두 서울에 나가 있는데, 자식들 모두 편안하고 가정에 하는 일 잘 되고 뭐 그런거지예...”
통영 사량도에서 살고 있는 부부는 매년 새해 첫날에 사량도 주민들과 함께 고동산에서 해맞이제사를 지낸다. 그날만큼은 모든 일을 접고 한해의 무사와 태평을 간절하게 비는 뱃사람들의 심정이리라. 그리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빈다고 했다. 오로지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편안하고 잘되길 바라는 한결같은 염원, 그런 모든 부모들의 염원이 있기에 자식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항구 풍경은 어시장만큼이나 분주하다. 방금 정박한 배에서 어부들은 갓 잡아온 물고기들을 고무대야나 플라스틱 박스에 부지런히 담아낸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물고기가 담긴 박스를 손수레에 싣고 경매가 이루어질 부두에 정렬해놓는다. 쉴 새 없이 배는 들어오고 나가고, 손수레들이 왔다 갔다 하고, 수산물 트럭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이윽고 진행자가 경매 시작을 알리면 그 반대편에 열을 지어선 입찰자들이 알 수 없는 손짓을 주고받는다.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 줄지어 선 빨간 대야에 호스로 연신 바닷물을 뿌리는 사람들, 주위를 에워싼 구경꾼……,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물고기들은 살아 펄떡거리고 사람들은 바삐 돌아가는 항구 풍경에는 사람을 흔들어 깨우는 이상한 힘이 있다.
요 며칠, 식구들이 모두 나간 아침이면 담요를 덮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려서 눈을 떠보면 정오가 훌쩍 지나 있었다. 저녁에 TV를 보다가도 꾸뻑꾸뻑 졸았다. 이상하게도 잠이라는 수렁에 한쪽 발목을 잡힌 채 바깥일도 집안 살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나를 옭매고 있던 일상의 걱정들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어쩌면 나는 그렇게 눈을 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어시장과 부두의 팔딱거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번쩍 눈이 떠졌다. 춥다고 잔뜩 웅크렸던 시간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마다 껍질 속으로 움츠려들던 순간들을 삼천포의 파릇한 풍경 속으로 날려 보냈다. 무기력하고 게으른 시간들이여, 이제 안녕……. 좌판에는 연탄불 위에 냄비가 하나씩 올라 있다.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 아주머니들의 팍팍한 손이 애처롭다. 모진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살아낸다는 것, 억센 품으로 새끼 품어서 키워낸다는 것, 그렇게 매순간 팔딱거리며 살아내는 삶은 얼마나 숭고한가.
“삼천포 바다는예, 대한민국에서 물살이 제일 쎄다 아입니껴!”
늑도의 어느 횟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삼천포에서 나고 자란 지인이 내게 말했다. 물살이 워낙 세서 이곳에서 잡히는 고기는 살이 더 쫄깃하고 맛있다고. 여기 물고기들은 참 살기가 고달프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했다. 산다는 건 그런 걸까, 거센 물살에서 끊임없이 팔딱거리다보면 어느덧 삶의 깊은 맛을 지니게 되는. 삼천포 대교의 불빛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는 착각이 들었다. 깊고 푸른 삼천포  바다에서 거센 물살을 헤치며 그렇게 팔딱거리는 꿈을 꾸었다.

삼천포 어시장은 싱싱한 생명력이 살아 넘치는 활어전문 재래시장이다. 원래 이름은 삼천포서부시장.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곳에는 매일 새벽 싱싱한 활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럭, 광어, 졸복, 물메기 등등 밤새 잡은 생선들은 경매장으로 옮겨지는데 경매시장이 서면 전국 각지에서 물려든 활어차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물메기는 겨울철 가장 눈에 띄는 삼천포어시장의 마스코트. 냄비에 물과 무, 그리고 손질한 물메기 넣고, 팔팔 끓여 마늘, 소금, 대파, 고추를 팍팍 넣고 끓여주면 겨울철의 별미인 물메기탕 완성이 완성된다.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며 무기질과 비타민이 많아 숙취해소에도 좋다.

연락처: 삼천포 서부상가번영회 055-833-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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