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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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세월을 엮다, 복을 담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8. 22:57

- 경기 안성시 죽산면 구메농사마을에서

겨울이면 하루도 쉬지 않고 복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조리 만드는 일에 하루를 쏟는다.
이곳에서 시간은 극도로 단순해진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복조리 개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마을로 시집와서 처음 조리 만드는 것을 배웠던 할머니들은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그랬고 그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그랬듯이
반백년의 세월이 넘도록 겨울이면 복조리를 만든다.
곱던 새색시 손은 주름지고 거칠어졌지만 그 손은 지금도 여전히 복을 엮는다.

 

겨울 풍경은 어디나 황량하다. 텅 빈 들판에는 말라 비틀어진 풀들만 남아 있고 인적이 뜸한 마을 골목에는 찬바람이 불어온다. 어느 건물 앞에 털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방문을 열자 축축한 대나무 냄새와 따스한 온기가 훅 풍겨온다.
“어이구, 추운데 어여 들어와.”
작업장에는 예닐곱 명의 아주머니들과 아저씨 한 분이 빙 둘러 앉아 조리를 만들고 있다. 저마다 앞에는 잘게 쪼갠 대나무가 한 뭉치씩 놓여 있고 옆에는 만들어 놓은 조리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마을 공동 작업장이다.

“죽으면 썩을 몸뚱아리 아끼면 뭐하나, 꿈적거릴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제.”
나이도 제일 많고 조리도 제일 많이 만드신다는 변재숙(80) 할머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조리를 만들기 시작하셨다는 할머니는 조리 만드는 법을 설명하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대나무를 엮는다.
 “3월에 산에 가서 대나무를 베 놔야돼, 그래야 낭창낭창하면서도 잘 부러지지 않거든, 나무가 너무 억세면 손꾸락 아파서 만들 수가 없어.”
한 해 농사가 끝나고 김장까지 마치면 그해 조리농사가 시작된다. 베어놓은 대나무를 4등분으로 잘라서 말려놓았다가 하룻밤 불려서 물이 빠지면 그 나무로 겨우내 조리를 만든다.

#조리를 만든다는 것은
“한창 때는 하루에 50개도 만들고 했는데 지금은 힘이 들어서 그렇게 많이 못만들어...”
복조리를 엮고 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나무껍질처럼 까슬까슬하다. 손가락 끝은 갈라지고 굳어 있다. 자식 키우고 살림하면서 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이면 조리를 만들어왔을 오십여 년 세월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복조리 농사 덕에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세간도 장만했다. 지금은 약값도 내고 손자들 용돈도 쥐어준다.

자식들 모두 키워 도시로 내보내고 혼자 사시는 변할머니는 작업장에 누구보다 먼저 나오신다. 힘드신데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편히 쉬라고 자식들이 성화지만 할머니는 도시에서는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신단다. 지게 지고 뒷산을 누비며 산죽을 베어 오던 영감님 대신 산죽을 베고 쪼개서 물에 불리는 일도 할머니 몫이다. 하지만 이렇게 둘러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조리를 만드는 순간은 외롭지 않다. 솜씨 좋은 며느리를 온 동네에 자랑하던 시어머니도, 든든한 기둥이었던 영감님도 세상에 없고 조리 팔아 키운 자식들도 멀리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의 곁에는 조리가 있다. 조리는 할머니에게 약값이고 손자들 세뱃돈이지만 또한 할머니가 살아가는 의미이기도 하다.

#손으로 만든다는 것은
놀고 있는 손이 부끄러웠다. 열여덟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오십년 넘게 조리를 만들어 온 장수한(75) 할머니 곁에서 만드는 법을 배웠다. 먼저 쪼개놓은 대나무 줄기 다섯 개를 가로로 늘어놓고 발로 고정시킨다. 그 다음 씨실에 날실을 엮듯 대나무 줄기를 엮어나간다. 네모난 모양이 되면 양끝을 잡아서 오므려 묶으면 완성이다. 대나무는 보기보다 거칠고 뻣뻣했다. 무릎을 세우고 발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앉아 있기가 불편하고 자꾸 발이 움직였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으니 목도 아프고 옆구리도 결린다. 옆에서 보기에는 수월해보였는데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복조리 값은 한 쌍에 이천 원. 산에 올라가 손수 조리대를 잘라 쪼개서 물에 불리는 수고까지 합치면 너무 싼값이다.

내 것과 할머니 것을 함께 묶어서 한 쌍을 만들었다. 내 것은 대나무 줄기 하나가 안팎이 바뀌어서 더 어설퍼 보인다. 그렇게 삐뚤빼뚤한 조리와 물 찬 제비 같은 조리가 짝꿍이 되었다. 수북이 쌓인 조리들이 똑같은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억세고 굵은 대나무 줄기가 섞이기도 하고 연하고 부드러운 줄기가 들어 있기도 하다. 손자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만든 조리, 먼저 간 영감이 떠올라 가슴이 싸할 때 만든 조리, 재미난 이야기 듣느라 웃으며 만든 조리, 찐 고구마를 나눠먹으며 고구마 냄새가 밴 조리……, 기계로 찍어내는 대량생산과는 달리 사람의 손길이 묻어 있는 조리는 만드는 사람과 만드는 순간에 따라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표정으로 살아난다.

#정을 나눈다는 것은
머리하러 읍내에 다녀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붕어빵을 사들고 왔다.
“머리하니까 새색시 같네, 시집가도 되겠어.”
잠시 일손을 놓고 아직도 따뜻한 붕어빵을 나눠 먹으며 아주머니들이 입담을 펼친다.
“나는 넘들 이렇게 많이 만들 동안 머리한다고 괜한 돈만 쓰고 왔네.”
“아이고, 괘안타, 나도 낼 일도 못하고 돈 쓰고 와야혀, 잔치가야 한다니께”
“아, 그럼, 배터지게 먹고 와, 젖은 건 먹고 마른 건 여기로 싸오고...”
또 한 번 웃음이 터진다.

매일 눈 뜨면 만나는 얼굴이다.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영감 흉도 보고 자식 걱정, 손주 자랑에 서로의 속사정도 훤하다. 무엇보다도 일하는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하지만 이곳에는 묘한 긴장이 흐른다. 아이들 공부 시샘은 저리 갈 정도이다.
“쉬면 뭐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많이 맹글텐데...”
일요일에도 일하시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이다. 형제보다 남편보다 더 가까운 둘도 없는 사이지만 이 관계를 더욱 팽팽하게 하는 건 적절한 경쟁이다.

아주머니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복조리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 이곳에 둘러앉아 하루 종일 복조리를 만들다 보면 어느덧 겨울의 짧은 해는 산 너머로 돌아선다. 아주머니 몇 분이 자신들이 만든 조리를 챙겨 일어선다. 나도 일어서려는데 장할머니가 화사하게 웃으며 조리를 건네주신다.
“애기 엄마도 이거 가져가서 걸어놓고 새해 복 많이 받어.”
종일 작업장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들 공연히 말시키고 붕어빵이며 강냉이며 찹쌀 도너츠며 넙죽넙죽 받아 먹었는데 선뜻 주시는 조리를 받으려니 마음이 찡하다.

돌아오는 길에, 손에 들린 복조리를 바라본다. 기교도 없고 색깔도 밋밋하다. 그저 대나무를 쪼개서 엮었을 뿐, 투박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햇살이 비치던 작업장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나누어 먹던 찐 고구마 냄새가 배어 있고 복조리를 건네주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조리를 짓던 할머니들의 정직하고, 단순하고, 감사하는 마음들이 그 안에 올올히 박혀 있었다. 복조리를 가슴에 안고 괜시리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복조리에 담긴 복이 내게도 들어온 모양이다.
조리질을 하면 쌀이 일어나듯 복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정월 초하루에 파는 조리를 복조리라고 불렀다. 남보다 일찍 집에서 사야 복이 더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사람들은 복조리 장수를 새해 첫손님으로 맞이하기도 했다. 집집마다 이렇게 사들인 복조리를 벽에 매달고 한해의 복을 빌었다.

글. 최경애(수필가)  사진. 김선규(생명다큐 사진작가)


*** 구메농사마을은 복조리를 만드는 전통이 400년째 내려오는 복조리 마을이다. 예로부터 산에 대나무가 많아 농사를 마친 겨울이면 주민들이 모여서 복조리를 만들어 왔다. 주민들 대부분 사십년 이상 복조리를 만들어온 ‘장인’들이다. 복조리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으며 다양한 농촌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농촌체험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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