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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재미가 솔솔, 情이 모락모락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7. 12:23

- 경기도 양평군 보릿고개마을

 

땅도 개울도 하늘도 꽁꽁 얼어 있습니다. 텅 빈 들판에는 드문드문 눈이 쌓여있고 나지막한 돌담이 이어지는 한적한 마을 골목에는 찬바람만 불어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올망졸망한 아이들 털신이 한가득입니다. 그 곳에서는 도시의 아이들과 시골 할아버지가 만들어 내는 훈훈한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옛날 할아버지 젊었을 적에
아이들이 종알거리는 소리와 떡 반죽 냄새가 마을회관 안을 가득 메웁니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커다란 쟁반을 앞에 두고 빙 둘러앉아 떡을 빚느라 열심입니다.
“여러분, 개떡이 왜 개떡인 줄 알아요? 옛날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에는 먹을 게 없어서 보릿겨로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겨떡’ ‘겨떡’하다가 ‘개떡’이 된 거에요.”
마이크를 단 할아버지 선생님이 개떡의 유래를 설명합니다. 옛날에는 보릿겨로 떡반죽을 했지만 지금은 쌀가루 반죽에 보리, 단호박 등을 넣어서 만든다고 알려주는 할아버지 선생님은 6대째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김지용(61) 체험마을 위원장입니다.

떡을 빚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경기도 광명시 자치센터에서 단체로 온 동네 친구들입니다. 조별로 모여 앉아 떡을 만들던 아이들이 슬슬 장난을 시작합니다. 엄마 얼굴도 만들고 하트, 별도 만들고 글씨도 빚고 물고기도 만듭니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떡반죽을 마음껏 주무르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해집니다. 어떤 아이는 똥 모양도 만들어 놓았네요. 아이들이 빚어놓은 각양각색의 떡들이 커다란 쟁반을 채웁니다.

“보다시피 마을이 산자락이라 땅이 척박해요. 옛날에는 화전을 일구며 근근하게 살았지요. 보릿고개도 숱하게 넘겼고요. 살기가 어려워 마을을 떠난 집도 여럿 있었어요.” 김 위원장의 설명입니다. “그러다가 궁리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체험마을이었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패스트푸드가 범람하는 요즘, 굶주리던 시절 먹던 꽁보리밥과 개떡이 오히려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다는 역발상에서 ‘보릿고개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변변한 특산물은 없지만 보리밟기, 감자 캐기, 복숭아 따기 등 다양한 농사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되었습니다. 2004년 체험마을을 시작한 지 7년째, 지금은 사계절 내내 가족 단위나 모임 단위로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신나는 놀이 선생님
다음에는 짚으로 달걀 꾸러미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합니다. 요즘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계란판을 쓰지만 옛날에는 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달걀을 담아서 장에 가지고 나갔지요. 아이들은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지푸라기의 감촉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짚을 손에 쥐고 도우미 할아버지들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따라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날달걀 대신 삶은 달걀을 주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삐뚤삐뚤한 꾸러미에 들어앉은 달걀들이 온통 깨져 있습니다. “할아버지, 저도 해주세요..” 익숙한 솜씨로 짚을 엮는 이희남(69) 할아버지 곁으로 아이들이 몰립니다. “저도요,”, “저도요.”

졸라대는 아이들이 귀여운지 이희남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습니다. 할아버지 선생님들은 모두 마을 주민들입니다. 할아버지들은 진행을 맡고 할머니들은 부엌을 맡습니다. 체험마을을 시작하면서 한적하고 고요하던 마을은 활기가 넘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할 일이 생겨서 신이 납니다. 농사일은 아이들의 농촌 체험이 되고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은 체험마을의 먹을거리가 됩니다. 체험마을을 운영하면서 나오는 수입을 나누기 때문에 자식에게 용돈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노인들만 사는 시골에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내 자식 같고 손자 같아서 더욱 더 반갑습니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꽁꽁 언 개울에서 얼음썰매를 탑니다. 처음 타보는 썰매가 신기한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앉는 것부터 쉽지가 않습니다. 어정쩡하게 앉아서 썰매를 타기는 하는데 생각만큼 쌩쌩 나가지는 않습니다. 보다 못한 도우미 할아버지들이 썰매를 끌어줍니다. 한편에서는 얼음판 위에서 전통 팽이를 칩니다. 할아버지들이 팽이를 채로 때리면 팽이가 살아나는데 아이들이 치면 금방 고개를 떨구고 죽어버립니다. 컴퓨터 게임이나 놀이공원의 속도감이 익숙한 도시의 아이들에게 추운 겨울 얼음판 위에서 썰매를 타고 팽이를 치는 게 그다지 재밌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탁 트인 시골 들판에서 할아버지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또 아름답게 보이는 건 도시의 엄마들이 갖는 공통된 심정이겠지요.

#도시에서 온 아이들과 시골 할아버지가 나누는 정
“야, 니 똥 나왔다. 니 똥 먹어!” 마을회관에는 순식간에 웃음보가 터집니다. 썰매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마을회관에 다시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제기차기도 배우는 동안 오전에 만들어 놓은 떡이 쪄서 나왔던 거지요, 똥 모양을 빚어놓은 아이에게 친구가 하는 말입니다. “야, 너 똥 맛있어?”, “그렇게 궁금하면 너도 내 똥 먹어볼래?” 다시 한 번 왁자지껄한 웃음이 회관 가득 울려 퍼집니다. 떡을 먹는 동안에 할아버지 선생님이 마을회관에 전시되어 있는 짚공예품을 하나씩 설명해줍니다. 여치집, 작은 지게, 새집, 나무로 만든 솟대 등 우리 전통의 농촌 문화를 진지하게 설명해주자 아이들 눈망울도 초롱해집니다.

겨울의 짧은 해는 종종걸음을 치고 어느새 헤어질 시간입니다. 체험을 마친 아이들이 삶은 달걀 꾸러미를 들고 개떡과 강정을 가방에 담아서 버스를 탑니다. 할아버지 선생님과 도우미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배웅합니다. “자식 키워 모두 도시로 내보내고 손자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손자 같은 아이들이 매일 놀러와 줘서 반갑고 호주머니에 용돈이 생겨서 또 반갑지요.” 그새 정이 들었는지 이희남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서운한 빛이 가득합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도시 아이들과 시골 할아버지들이 한 폭의 정겨운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잊혀져가는 농촌 생활 문화를 건강한 먹을거리와 흥미로운 놀이로 즐기는 아이들과, 그들이 있어서 하루하루가 더욱 활기 넘치는 할아버지들이 나누는 정은 꽁꽁 언 날씨를 녹일 만큼 훈훈하고 따스합니다. 점점 멀어져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들은 오랫동안 손을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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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를 아시나요. 50~60년대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보리가 패기 전까지 먹을 양식이 떨어져 산나물이나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던 겨울에서 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말이지요.

양평보릿고개마을은 어려웠던 시절에 즐겨 먹던 개떡과 꽁보리밥 등 전통 건강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 계절에 따라 다양한 농사 체험과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사계절 농촌체험마을입니다. 
프로그램
체험 내용
슬로푸드 체험
두부 만들기, 개떡 만들기, 인절미 만들기, 강정 만들기, 콩국수 만들기 등등
농사 체험
모내기, 산나물 뜯기, 매실 따기, 복숭아 따기, 콩 타작, 배 따기, 고구마 캐기 등등
공예 체험
솟대 만들기, 계란꾸러미 만들기, 여치집 만들기, 천연 염색 등등
전통놀이 체험
썰매타기, 논두렁축구, 물놀이, 물고기 잡기 등등


특히, 마을 주민 모두가 체험 과정에 참여해서 설명해주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시골 할아버지와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으며 어른들도 옛날 고향의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문의 : 양평 보릿고개마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1리 141-2
홈페이지 http://borigoge.invil.org
전화: 031-774-7786, 010-4400-7786

추천 맛집
보릿고개마을에서 제공하는 점심메뉴는 산나물비빔밥에 된장국입니다. 양푼에 밥이랑 나물을 골고루 담아서 고추장을 넣고 쓱싹쓱싹 비벼먹는 데 그 맛이 일품입니다. 마을 뒷산에서 캐온 산나물에서는 깊은 맛이 우러나고 직접 키운 미나리, 콩나물이 향긋하고 아삭아삭합니다.
그 밖에도 양평에는 50년 전통의 <옥천냉면 황해식당>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육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물냉면이나 양념이 감칠맛 나는 비빔냉면에다가 큼지막한 돼지고기 완자를 곁들여 먹는 그 맛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지요. 여행길에 양평을 지나면 꼭 들르는 20년 단골집입니다. (본점 031-772-9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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