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전통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그곳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전통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그곳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03

- 전북 전주 한옥마을

 

마른 나뭇가지위에 매화꽃이 붉게 피어납니다. 한 송이 한 송이씩 부채 위에서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고물고물 한지를 찢어 붙이는 손길마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피어납니다. 느긋하게 걷다가 곳곳에서 체험을 만나고, 구구절절한 판소리 한 대목에 취하고, 뜨끈한 구들장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이곳에는 전통의 멋과 아름다움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골목을 기웃거리다
지도 한 장을 들고 낯선 거리를 두리번거립니다.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이 즐비하고 나지막한 담장이 도란도란 이어집니다. 길은 다시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날렵한 처마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마다 문풍지를 발라놓은 곁문과 툇마루, 햇볕 잘 드는 안마당과 항아리 가득한 장독대 등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안 풍경이 정겹습니다. 지붕 위로는 저 멀리 고층빌딩이 우뚝우뚝 솟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에 700여 채의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모여 있는 전주한옥마을입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전동성당과 경기전부터 둘러봅니다. 전동성당은 순교자 터에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유럽의 어느 도시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풍광이 한옥마을과 묘하게 어우러집니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인한 경기전 앞에는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장기를 두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전통문화체험시설이 많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보려고 우왕좌왕하다가, 잠시 지도를 접어 둡니다. 느긋하게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6백 살 먹은 할아버지 은행나무에 봄물이 오르는 소리도 들어보고, 어느 뒷골목에서 한지 공예, 천연염색 등 저마다 전통문화를 가꾸고 지키며 살아가는 장인들도 만납니다.

#전통문화를 손으로 느끼다
길을 가다가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미선공예사 엄재수씨는 무형문화재이신 아버지의 가업을 전수하여 합죽선 같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장인입니다. 그곳에서 부채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먹물을 불어 나뭇가지를 그려낸 부채에 붉은색과 노란색 한지를 손으로 찢어서 꽃잎을 만들어 붙이면 매화 나뭇가지에 붉은 꽃이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한지를 손으로 찢어서 모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결과 무늬가 아름다운 한지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꽃봉오리와 떨어진 꽃잎까지 붙인 아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부채를 들고 행복한 표정입니다.

목판서화체험관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인쇄 문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지의 고장인 전주에서 더불어 발달한 것이 바로 출판문화라는 설명입니다. 한쪽에서는 엽서만들기 체험이 한창입니다. 엽서 종이에 그림을 목판으로 찍고 원하는 색깔을 칠한 다음, 봉투까지 예쁘게 접으면 완성입니다. 부산에서 온 직장인 김아림(25)씨는 전주한옥마을이 네 번째라고 합니다. 한 번 오면 돌아갈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오게 된다는, 그를 사로잡는 한옥마을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아이는 전통문양인 삼족오와 돌림연화문을 붙여서 연필꽂이를 만들고는 신이 났습니다.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 문학관도 인상적입니다. 작가의 육필 원고와 유품 등이 전시된 그곳에서는 고단한 삶의 흔적과 치열한 작가정신이 느껴져 사뭇 숙연해집니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 작가는 <혼불>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옥마을 일대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평생 <혼불>을 써내려가다가 쉰 살의 나이에 그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요. 최명희서체 따라쓰기 체험을 하면서 잠시 그의 삶을 생각합니다. 모국어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지키겠다는 자신만의 ‘혼불’이 있었기에 그녀는 막막하고 쓸쓸한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겠지요.

#판소리, 마음을 적시다
“아이고 마누라아아, 아이고 마누라아아아~” 심청가가 그렇게 슬픈 내용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마침 전통문화센터에서 해설이 있는 판소리공연이 있었습니다. 곽씨 부인이 어린 심청을 두고 죽어갈 때 애절한 심봉사의 마음이 눈앞에서 온몸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소리로 펼쳐집니다. 기막힌 심정에 대한 묘사도 구구절절하지만 몸 깊은 곳에서 이토록 다양한 색깔을 가진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젊은 소리꾼의 열창이 끝나고도 귓가에는 심봉사의 애끓는 소리가 맴돕니다. 떡 벌어지게 안주 한상을 받아서 전주막걸리를 마실 때에도 골목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심봉사의 소리는 계속 따라 다닙니다.

“끼이익~” “엄마, 대문도 판소리를 하네!” 막걸리를 한 잔 얻어먹은 아이는 대문 열리는 소리도 판소리로 들리는 모양입니다. 모두들 판소리가 귀에 익었는지 소리를 흉내 내며 숙소로 정한 풍남헌으로 들어갑니다. 한옥마을 여행의 백미는 한옥에서의 하룻밤이라고 하지요. 대들보며 툇마루며 반질반질 손때가 묻은 오래된 나무의 느낌이 깊고 그윽합니다. 방에 들어서자 은근한 냄새가 풍겨옵니다. 장판방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내 같기도 하고 묵은 나무 냄새 같기도 합니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있으려니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받으며 더없이 평온해집니다.

#한옥에서의 하룻밤
창호문 밖으로 바람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2대째 전통 부채를 만들던 장인과 심청가 눈대목을 열창하던 젊은 소리꾼이 바람결에 떠오릅니다. 합죽선 부채를 하나 만들려면 무려 백여덟 번의 작업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판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목청이 트이도록 수십 번씩 피를 토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야 하지요. 17년간 <혼불>을 써내려가면서 작가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들은 참 닮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 묵은 장맛처럼 길고 긴 발효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더욱 깊어진다는 것이지요.
 
돌아보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쫒아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전주한옥마을에서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습니다. 또한 전통 문화를 가꾸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곳에는 전통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문풍지 너머로 바람이 들려주는 판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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