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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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새콤달콤 추억 싣고 ‘칙칙폭폭’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07

- 충남 논산

 

이곳은 그야말로 봄이 한창입니다. 흰 꽃 사이로 벌들이 붕붕거리고 달콤새콤한 딸기향이 진동합니다. 잘 익은 딸기를 한입 베어 물면 봄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서로 먹여주면서 봄은 사랑이 되어 들어옵니다.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달려온 이곳에서, 우리 가족의 봄은 그렇게 딸기향으로 피어났습니다. 

# 기차는 봄빛으로 부풀고
“철커덩 철커덩” 소리를 내며 기차는 달립니다. 산과 들과 마을이 느릿느릿 스쳐 지나갑니다. 창밖은 아직 황량한 풍경이지만 금새 터질 듯 봄빛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부풀어 있는 건 기차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닐곱의 아줌마들이 의자를 맞대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 아빠와 나들이 나온 꼬마는 창에 착 달라붙어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복지사와 함께 온 장애우들, 외국인 여행객들 등……. 토요일 아침 7시 45분, 용산역을 출발하여 논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 5호 칸에는 사람들의 설레임이 그득합니다.

기차가 역에 멈출 때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기차 안이 술렁입니다. 그 어수선함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무궁화호 기차를 타본 지가 얼마만인지요. 게다가 이곳에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지민이, 오늘 딸기 몇 개 먹을 거야?” “백 개, 천 개 먹을 거예요!!” 아빠 김세호씨의 질문에 꼬마는 벌써부터 입맛을 다십니다. 이 열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논산 딸기를 직접 따서 먹을 수 있는 체험과 연계된 일명 “딸기트레인”입니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딸기밭에서 딸기 실컷 드시고, 딸기 인절미랑 잼도 만드시면서 추억도 많이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논산역에서 황기만 코레일 마케팅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기다리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딸기 농원으로 이동합니다.

# 새콤달콤한 딸기밭 풍경
농원에 도착하자 들판의 흙냄새가 풍겨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달달한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그 향기를 따라 들어간 비닐하우스에는 줄지어 심어진 딸기 잎들이 푸릇푸릇하고, 빨갛게 익은 딸기들이 그 아래 새초롬하게 달려 있습니다. 벌들이 붕붕거리고 달콤새콤한 딸기향이 진동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습니다. 농원주인이 마음껏 따먹으라고 비닐하우스 두 동을 열어주었습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씻을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먹음직스런 딸기를 골라 입에 넣습니다. 탱글탱글한 감촉과 달착지근한 즙이 입안에 가득 고입니다.

“딸기 얼마만큼 맛있어요?” 세상에서 딸기를 제일 좋아한다는 여섯 살 태민이에게 물었더니, 볼이 미어져라 먹으면서 대답 대신 귀여운 눈웃음만 흘립니다. 이곳에는 수경재배를 하기 때문에 허리춤 높이에서 딸기가 자랍니다. 서서 딸 수 있어서 편하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눈높이에 있는 열매를 따먹으면서 딸기가 자라는 모습도 보고 배울 수도 있습니다. 고사리 손으로 딸기를 따서 연방 제 입에 넣던 지민이가 엄마를 불러 입에 넣어줍니다. 싱싱하고 달콤한 딸기를 가족끼리 친구끼리 먹여주면서 모두들 흡족한 표정입니다. 태국에서 여행 온 네 명의 아가씨들도 만났습니다. 한국 딸기가 태국 딸기보다 훨씬 크고 맛있다는 그들은 열흘 일정으로 한국을 여행하면서 인터넷으로 이 체험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딸기로 만드는 이야기들
점심으로 잔치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딸기잼을 만듭니다. 자잘한 딸기의 꼭지를 따서 커다란 함지박에 쏟고는 손으로 마구 주물러 터뜨립니다. 함지박 안에 어린이 손, 어른 손, 남자 손, 여자 손이 모두 모였습니다. 보기만 해도 아까운 딸기를 짓이기고 뭉개고 으깨면서 무엇보다도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으깨어진 딸기에 설탕을 넣고 끓이는 동안 한쪽에서는 딸기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떡메를 칩니다. 딸기를 넣은 찹쌀덩어리가 화사한 분홍빛입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돌아가면서 서툰 솜씨로 떡메를 내리칩니다. 이제 후식은 달콤하고 쫄깃한 딸기 인절미입니다.

그 다음에는 림보와 제기차기 등 다양한 게임이 기다립니다. 이날의 우승 가족은 두 딸과 함께 온 이춘건씨네입니다. 아빠는 떡메치기에서부터 제기차기까지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월등한 실력을 뽐냈고 작은딸 인하(13)는 유연한 몸으로 림보 게임에서 1등을 해서 딸기와 딸기인절미 등 푸짐한 상품도 거머쥐었습니다. “모처럼 딸들과 나왔는데 딸기를 수확하는 재미도 있었고요, 게임도 즐거웠고요, 이렇게 상품까지 가져가니 정말 좋습니다.” 이춘건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함께 웃고 즐기면서 처음에는 서먹했던 가족들이 조금씩 친근해지기 시작합니다.

# 달콤한 사랑과 추억을 싣고
오후의 봄 햇살이 화사합니다. 군사박물관으로 이동해서 백제 천년의 역사와 군사문화도 공부하고 국궁 체험도 하고 난 뒤입니다. 탁 트인 공원에서 한가로이 걷거나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리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이렇듯 가족들 사이에 행복감이 번져갈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가 못지않은 솜씨로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한 황기만 팀장과 체험을 기획하고 또 물심양면으로 도운 권선상 논산역장이 있었습니다. 내 고장에 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진심이 전해져서일까요. 체험하는 내내 마음이 푸근했습니다.

“논산역이 만든 ‘농촌사랑F4' 프로젝트는요, 사계절 싱싱한 논산의 특산물을 농촌에서(Farm) 느끼고(Feel) 즐기고(Fun) 채우자(Fill)는 의미로요, 기차를 타고 오는 승객들을 위한 체험열차 프로그램입니다.” 3년 전 농촌 일손을 돕기 위한 사회봉사로 시작했다는 권역장은 열차를 매개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여 농촌에는 소득증대를, 도시민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착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체험을 모두 마치고 논산역에서 다시 기차를 탑니다. 권역장과 황팀장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점점 멀어져갑니다. 오후 4시 37분, 논산에서 용산으로 가는 무궁화호열차에는 그야말로 딸기향이 가득합니다. 집으로 가져가는 딸기꾸러미에서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잼을 만들면서 손에도 옷에도 향기가 남아 있지만, 무엇보다도 화창한 봄날에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만든 추억에 딸기향이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지요. 딸기처럼 달콤한 사랑과 추억을 가득 싣고 기차는 칙칙폭폭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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