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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수놓은 찔레꽃… 엄마 미소같은 ‘하얀 향기’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6. 5. 07:31

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깃든 침묵 때문일 것이다. 늘 그랬듯이 지리산은 말없이 지친 마음을 보듬어 준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목인 경남 산청 중산리 산자락에 대숲이 눈에 들어온다. 한 줄기 바람이

대숲을 스치자 댓잎 쏠리는 소리가 청아하다. 눈을 감고 복잡한 일상들을 하나씩 바람에 날려 보낸다.

쏴아 하는 댓잎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감미로운 향기가 코끝에 스며든다. 찔레꽃 향이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대숲 끝자락에서 찔레꽃을 따고 있는 전문희(58) 씨를 만났다. 차를 만들기 위해 꽃과 새순을 따고 있다.

“찔레꽃 향기는 내 어머니 체취 같아요.”

찔레꽃이 필 때면 유독 어머니가 그리워진다는 전 씨는 하얗게 피어난 꽃을 보면 산자락 어디를 가도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의 사모곡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어머니의 말기 암 진단은 전 씨의 삶을 180도로 바꿔놓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서울 생활을 버리고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온 전 씨는 암에 좋다는 삼백초 등 약초를 캐서

 


가마솥에 달여 드렸다. 그녀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어머니는 3년을 더 사시다 임종을 맞으셨다.

그때부터 그녀는 약초에 눈을 떠 지리산에서 산야초차를 만들어 왔다.

“오월이 다 가는 게 아쉬워요.”

찔레꽃을 보면 어머니의 미소를 보는 것 같아 부지런히 산자락을 돌아다닌다.

무리 지어 핀 찔레꽃이 하나둘 져 가는 걸 보면 너무도 아쉽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무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으로 시작하는

애잔한 가사가 머릿속에 맴돈다. 요즘 부쩍 약해지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한동안 연락도 못 드렸는데 주말에 찾아뵙고 안아드려야겠다. 길섶의 찔레꽃이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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