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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생각나는 보릿고개… “힘내라” 청보리들의 응원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5. 25. 08:56

사그락 사그락∼

까칠까칠한 수염을 하늘로 치켜세운 청보리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몸을 비벼댄다.

익어가는 보리밭 위로 화들짝 놀란 비둘기들이 푸드덕 날아가고 키다리 미루나무도 바람에 몸을 뒤척인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등지고 캠핑장 앞에 조성된 ‘난지 한강공원’의 청보리밭이다.

“이맘때면 어머니 생각이 문득문득 나요.” 추억에 잠긴 듯 두 손으로 보리를 쓰다듬고 있던 윤모(69) 씨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했지만 보리가 영그는 이맘때면 특히 먹을 것이 없었다.

보따리 채소장사를 하시는 어머니는 채소가 안 팔리는 날에는 밤늦게 오셨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면 늦은 밤에 오신 어머니는 꽁보리밥을 지어주셨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자신의 어머니 같아 집에 오는 길에는 늘 보따리가 들려 있곤 했다.

망종이 지나고 부지깽이라도 들고 거들어야 할 농번기에는 보리밭에서 하루 종일 낫질을 해야 했다.

까칠한 보리를 베다 보면 어린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일하기 싫어 도망치면

 


형이 자신의 몫까지 묵묵히 해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형이 보릿대를 불에 그슬려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서 주던

졸깃한 보리 알맹이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보리에 대해 안 좋은 기억뿐이라면서도 윤 씨의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추운 겨울 싹을 틔우는 보리처럼 가족이 있어 힘겨운 시절을 살 수 있었으리라. 다시 바람이 분다.

우리는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추억할까? 바람에 몸을 맡긴 청보리들이 차례로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우리 모두에게 ‘힘내라’는 듯 파도타기 응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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