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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선율… 푸른 눈의 신사가 주는 ‘작은 위로’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5. 25. 09:04

‘끼기기깅∼.’

힘겹게 산을 오른 선율이 계곡물 흐르듯 가슴속에 스며든다. 검은 코트를 입은 푸른 눈의 신사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인사동 한복판 문화의 거리다. 활력을 잃은 거리에서 사람들은 무심하게 제 길을 가고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만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름은 샤샤,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했다. 서로 영어가 서툴러 몇 가지만 묻고 눈인사를 나누며 헤어졌지만

수줍게 미소 짓던 그의 맑은 눈빛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3개월 만에 찾은 인사동에서 그를 다시 보니 두툼했던 코트가 얇게 바뀐 것 외에는 처음 본 모습 그대로이다.

반갑기도 하고 혹시 고국에 못 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바이올린 선율은 여전히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곡이 끝나갈 무렵 한 중년 신사가 맞은편에서 그의 연주를 듣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더니 연주가 끝나자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고 머리 숙여 인사를 한다.

 


연주자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돈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저분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매 주말 인사동을 찾는 김창우(61) 씨는 가끔 그를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연주를 몇 곡 듣는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서 연주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명상을 하듯 흐르는 그의 연주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아베마리아’에 이어 ‘You raise me up’이 흘러나온다.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 나는 고요히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려요.’ 바이올린 선율에 실린 가사가 떠오른다.

거리를 배회하던 선율이 길 가던 사람들의 어깨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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